깨달음의 서 346

겸손과 무아 無我

겸손과 무아 無我겸손(겸허)의 극치가 바로 무아이다. 무아란 다른 사람 앞에서 무아인 게 아니라, 바로 신 앞에서 무아인 것이다. 신 앞에서 나라는 게 없는 것일 뿐, 다른 사람 앞에서는 나라는 게 없을 수 없다. 물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뽐내지 않는 것을 무아라고 표현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것 역시 무아에 다다르기 직전의 겸손일 뿐이다. 한마디로 사람 앞에서는 겸손이고 신 앞에서는 무아인 것이다. 신 앞에서 나를 내세우지 말자. 신 앞에서는 정말로 겸손하자. 나라는 게 아예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신 앞에서는 말이다.

깨달음의 서 2026.03.14

공 空에 대하여

공 空에 대하여불교에서 말하는 공에 대하여 얘기하고자 한다. 공이라는 게 한자의 뜻으로는 텅 빔을 뜻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란 단순히 한자의 뜻과는 다르다. 그래서 불교 경전을 연구하고 있는 불교학자나 승려들도 이를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석가모니의 말씀인 공을 제대로 깨닫기가 어렵다.나 자신도 깨달음이 올 때마다 공이 무엇인지를 수시로 글로써 정리하기도 했지만, 지금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 이를 글로 적는다.그동안에는 공이라는 게 무아와 비슷하게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이 "내가 없다" 또는 "나라고 할 게 없다"라는 무아의 뜻보다는, "내 것이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의 개념으로 다가온다.내 안에 있는 의식과 평생을 함께하는 몸..

깨달음의 서 2026.03.11

무상 고 무아 無常 苦 無我

무상 고 무아 無常 苦 無我 / 김신타부처(붓다)는 불멸이고 중생은 단멸이지만우리는 저마다 중생인 동시에 붓다이기에중생인 개성적인 몸은 죽어 없어질지라도붓다이자 참나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영원개성적인 몸은 단멸하기에 무아이자 무상무상한 에고를 나로 여기며 집착하기에 고중생은 무아일지라도 붓다는 영원한 참나

깨달음의 서 2026.03.07

나는 있지만 내 것은 없다

나는 있지만 내 것은 없다내가 없는 게 아니라, 내 것이 없음이다. 무아일지라도 나라는 건 분명 존재하지만, 몸과 마음과 영혼은 나라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전체(=신)에 속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나는 있지만,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늘 함께하는 몸과 마음 그리고, 개성 또는 에고라 불리는 것조차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게 신 즉 전체의 소유이지만 한편으로 그것들은 나와는 달리, 영원하지 않은 무상한 것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란 무엇일까? 몸·마음도 아니고 영혼도 아니며, 개성도 아니고 에고도 아닌 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라는 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그저 텅 빈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곳에서 텅 ..

깨달음의 서 2026.03.05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고 말하지 말라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고 말하지 말라원효 스님이 밤중에 갈증 나던 참에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난 뒤, 이튿날 아침 밤중에 마신 물이 해골 물임을 알고는 구토가 나왔으며, 해서 일체가 마음의 작용임을 깨달았다는 게 '일체유심조'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마음만 있었던 게 아니라, 해골에 고인 물이 있었고 그걸 마신 몸이 있었으며, 썩은 물은 몸에 좋지 않다는 지식적 앎 또한 있었다. 다만 마음이 어둠 속에서도 갈증을 덜어줄 물을 찾았고, 이튿날 아침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는 구토를 일으킨 것도 마음의 작용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도 해골 물을 마시는 일이 없었다면 아무런 작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즉 모든 걸 마음이 만들어 내는 건 맞지만, 마음이라는 것도 외부적 상황에 ..

깨달음의 서 2026.03.04

유일신

유일신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원맨쇼를 하고 있다. 그래서 유일신이며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이다. 다른 신이나 사탄 악마 등 다른 존재가 있으며, 그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유일한 존재인 게 아니라, 유형과 무형의 온 우주를 통틀어 절대적으로 유일하기에 유일신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 아닌 건 아무것도 없기에 유일신인 것이다.저마다 달리 보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를 비롯한 모든 유형무형의 존재가, 동식물이건 무생물이건 막론하고 모든 게 바로 신의 현현이다. 우리는 저마다 신의 현현일 뿐임에도, 신과 분리된 존재(단독자)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그러나 신과 분리된 건 하나도 없다. 하나의 신이 우리 각자로 분리되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깨달음의 서 2026.03.02

그리스도와 참나 또는 붓다

그리스도와 참나 또는 붓다내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게 아니듯, 글씨를 쓰는 것도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신이 쓰는 것이다. 고로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신이 잘 쓰는 것이요, 잘 쓰지 못하는 것도 신이 그러한 것이다. 신 앞에서 나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신 앞에서 없어지는 건 '본연의 나'(참나, 붓다)가 아니라, 인간적인 나 즉 중생인 내가 없어지는 것일 뿐이다. 본연의 나 즉 참나 또는 붓다는 사라질 수 없는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신성을 뜻하는 단어인 것과 마찬가지로, 참나 또는 붓다도 신성을 뜻하는 단어이다.

깨달음의 서 2026.02.27

우리 몸이 허상일까?

우리 몸이 허상일까?우리가 살아가는 현상 세계에서 몸을 통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몸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신이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따라서 현상 세계에서 없애야 할 것은, '몸'이라는 물질적 대상이 아닌, '몸이 나'라는 잘못된 관념이다. "나는 몸이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실상이 아닌 것은 '몸'이라는 물질이 아니라, '몸이 곧 나'라는 잘못된 관념이라는 말이다.우리와 평생을 함께하는 몸을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는 게 허상일 뿐 몸 자체가 허상인 건 아님에도, 깨달은 여러 선각자들도 이 점에서 착각을 하곤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몸뚱이가 사실은 없는 것이며, 자기가 늘 오르내리는 산이 사실은 없는 것이라는 헛소리를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몸뚱이가 내가 아니..

깨달음의 서 2026.02.26

개체적 나란 없다

개체적 나란 없다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나 = 개체적 자아"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체적 나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오직 전체 또는 절대로서의 하나만이 존재합니다. 전체적인 하나! 그게 바로 신이자 나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神) 즉 나는 현상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현상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이미 하나가 아닌 둘이 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으며 다만 신의 아바타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둘이 아닌 하나인 존재, 즉 신이기 때문에 현상계에서는 아바타(분신이거나 캐릭터)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에 이 몸과 마음을 나로 착각하게 되나, 몸과 마음..

깨달음의 서 2026.02.24

고요히 있으라

고요히 있으라유대교와 기독교 바이블 '시편'과 '내 안의 나'라는 영성 책에 나오는,"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라는 구절에서 '고요히 있으라'라는 말이 다름 아닌, '분별하거나 판단하지 말라'라는 뜻임이 샤워하는 도중 문득 느껴졌다.우리는 두렵기 때문에 두려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무언가를 분별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자 애를 쓴다. 평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이유도, 무언가 부족한 듯한 대처 방법을 보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고요하지 못하고 오만가지 생각으로 분주하다.그러나 우리의 이성(또는 지성)에 의한 대처가 그리 신통치 않은 것임을 깨닫고는, 말없이 지켜보는 내면의 신에게 고개 돌릴 때 우리 마음은 고요해지고 전지전능한 신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깨달음의 서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