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무아란 무엇일까?

신타나초 2020. 3. 14. 23:45

무아란 무엇일까?
 
 
무아란 무조건 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제한된 나', '한정된 나'가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무아를 말 그대로 받아들여 내가 없다, 라고 이해한다면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요?  말이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이번엔 아무 말없이 달리기만 하고 있다면 달리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요?  달리기가 달리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여기서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러면 달리기가 달리기를 하고 있다, 라고 표현하는 지금 이것은 무엇인가요? 또 표현이 표현하고 있다, 라고 대답할 건가요? 아니잖아요. 말하는 주체, 달리는 주체, 표현하는 주체, 이 모든 걸 뭉뚱그려 우리는 '나'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다시 무아로 돌아갑니다. 무아란 범어 梵語 즉 산스크리트어로 안아트만 (아나트만 Anātman)이라는 단어를 중국어로 무아(無我)라고 번역한 것이므로, 원래는 아트만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내가 없다'가 아니라 '아트만이 없다'가 석가여래가 말한 내용인데 우리는 중국의 번역에만 매달려 내가 없다는 게 맞느니 안 맞느니 하며 오랜 세월 동안 논쟁해온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지금 알아야 할 것은 인도 힌두교에서 말하는 아트만의 뜻입니다. 그것도 2천5백 년이 지난 현재의 힌두교에서 말하는 아트만이 아니라, 석가여래 생존 당시의 아트만에 대한 힌두교 (또는 힌두교의 전신인 브라만교)에서의 정의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학술적으로 2천5백 년 전 아트만이 가지는 뜻이 밝혀진 게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짐작으로는 석가모니 당시 아트만의 뜻은 지금처럼 범아일여라는 진화된 사상이 아니라 범(梵) 즉 브라만에 종속된 작은 존재이자, 신분 계급과 남녀라는 성별 등등에 의해 제한되는 나를 아(我) 즉 아트만이라고 이름하였을 것이며 석가모니는 이러한 아트만을 부정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지금처럼 범아일여로 진화된 힌두교 사상이 당시에도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이를 부정하고 아트만이 없다, 라는 주장을 했다면 나는 석가모니의 주장이 틀렸다고 단연코 말하겠습니다. '범아일여'란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 곧 부처다' 또는 요즘 영성계에서 말하는 '내가 신이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추측으로는 힌두교에서 석가모니의 아나트만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교리 내지 철학을 수정•보완한 게 현재의 범아일여 사상이라고 보며, 앞에서도 밝혔지만 '범아일여'란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한 불교 사상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아트만을 나라고 번역하고 아나트만을 무아로 번역한 것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석가모니 생존 당시의 아트만(나)과 2천5백 년이나 지난 지금의 아트만(나)을 같은 아트만 즉 나로 본 게 우리의 커다란 착각이자 실수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중생이 곧 부처다' 또는 '범아일여', '나는 신이다'라는 사실이 믿음을 넘어 앎이 되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2천5백 년 전의 무아라는 사상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이 무아 사상을 이미 실천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2천 년 이전 또는 중세 유럽에서와 같은, 신 앞에서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그런 나가 아닙니다. 제한되거나 한정된 나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몸으로까지는 체득 못 했다 할지라도 적어도 머리로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습니다.
 
물론 더 많은 분들은 여전히 나는 중생이지 부처가 아니다, 브라만과 아트만은 다르다, 나는 신이 아니다, 라는 자신이 신봉하고 있는 종교에서 주장하는 바를 부정하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신과 똑같은 능력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장엄하고 뛰어나며 유일한 존재입니다. 왜 유일할까요? 우리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듯이 그렇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유일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밝혔습니다만 우리는 아직도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유아독존의 '존귀할 존(尊)' 자를 '있을 존(存)' 자로 자기 멋대로 바꾸어 해석하곤 합니다. 이는 그냥 내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장엄하고 존귀하며 유일한 내가 홀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우리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과 도반, 책, 유튜브 영상 등등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깨우쳐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