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함이 없는 함'이라는 말

신타나몽해 2021. 11. 20. 01:43

'함이 없는 함'이라는 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함이 없는 함' 즉 '행위자 없는 행위'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행위를 했다거나 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는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기억상실증 환자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행위자가 '육체적 나'가 아닌 '영적 나'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 수는 있음이다. 비록 행위는 몸으로서의 내가 했어도, 행위자는 몸이 아닌 영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행위자를 '영적 나'로 상정한다면 '함이 없는 함'이 가능하겠지만, '육체적 나'를 고집한다면 이는 불가능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육체적으로 내가 나를 모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로 '함이 없는 함'이라는 말은, 모든 행위는 '육체적 나'가 아닌 '영적 나'가 행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육체적 나'란 이 세상에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영적 나'만이 궁극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육체적 나'란 꿈속에서와같이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환영이거나 허상일 뿐이다. 잠깐 동안은 실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죽거나 사라지는 영원하지 않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육체적 나'는 행위를 하는 행위자가 될 수 없다.

이는 마치 로봇이 무슨 일을 행했어도 그를 행위자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육체란 마음을 통해 영혼의 지시를 받는 로봇에 불과하다. 다만 영혼은 우리 몸과 마음에게 강요하지 않으므로, 영혼의 지시를 마음이 왜곡하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함이 없는 함'이 가능해지려면 우리 안에 있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모든 행위가 육적인 내가 아닌, 영적인 내가 행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이 세상에는 '무형의 영적 나'와 '유형의 육체적 로봇'이 존재하는 것임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육체적 나'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아 왔다 해도, 지금부터라도 '육체적 나'가 아닌 '육체적 로봇'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동물과 식물이 생명체가 아니라, 생명체처럼 보이는 로봇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 몸을 비롯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로봇에 불과하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무아 또는 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무아 無我 또는 공 空이라기보다는 비아 非我 또는 무 無가 보다 정확하다고 할 것이다. 내가 없는 게 아니라 '육체적 나'란 일시적으로 존재하지만, '영적 나'는 영원히 존재하며 또한, 유형의 물상이 있다가 사라진 뒤 공간이 남는 게 아니라, 공간도 함께 사라져 무 無가 되기 때문이다.

아예 없는 상태인 무에서 텅 빈 공간인 우주가 생겨났으며, 그러한 우주의 한 장소에 우리 몸이 탄생한 것이다. 텅 빈 상태인 공 空에서 생겨나거나 탄생한 게 아니며 또한, 지구를 비롯한 우주가 사라진다고 가정했을 때, 존재했던 공간은 그대로 남아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깨달음의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없음의 있음  (0) 2021.11.30
무형의 실상  (0) 2021.11.23
인간이 사고의 틀을 갖고 있다는 칸트의 이론에 대한 비판  (1) 2021.11.20
본질과 실존  (0) 2021.11.18
지금 여기  (0) 202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