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내 안의 나, 천 개의 그림

신타나 2025. 2. 22. 13:58

내 안의 나, 천 개의 그림


표정과 목소리 톤 등을 통해서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이며, 말과 행동을 통해서는 글자 그대로 말이 뜻하는 바를 새기고 그의 행동을 보는 것이다.
다만 내가 상대방에 대하여 보고 들은 판단이 곧 그 사람인 게 아니라, 그에 대해 판단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내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 있을 수는 없다. 내 안에 들어 있는 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판단한 수많은 그림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이미지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내가, 바로 내 안에 있는 나인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름 아닌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이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과 모습은,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를 서로 구별하기 위한 표식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오는 것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 자신이 하나의 우주이다. 자신 안에 수많은 다른 사람을 담고 있는.
따라서 현실에 있는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대상은, 다름 아닌 나를 위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다른 존재는 나를 위해서, 나는 다른 존재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음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에 비유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스케치 대상인 것이다. 고로 스케치한 그림은 내가 그린 그림이지, 그것이 곧 상대방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곧 상대방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다. 상대방은 움직이는 스케치 대상일 뿐이며, 나는 매 순간 모든 대상을 스케치하는, 그리고 스케치한 그림을 모아 간직하는 화가일 뿐이다. 스케치한 그림이 바로 대상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화가인 것이다. 화가의 스케치에 비유하여 설명하였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대상의 특징을 정확히 그려낸 스케치일 수도 있다. 그 내용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무리 똑같이 그렸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착각과는 달리 밖에 있는 대상과 안에 있는 그림은 서로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자 함이다. 즉 사람을 비롯한 밖에 있는 대상과 내 안에 있는 상은 서로 다르다. 밖에 있는 대상은 수시로 변하나, 저마다 자신 안에 있는 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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