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무아와 선악과

신타나 2026. 2. 2. 00:26

무아와 선악과


나라는 게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에 선신이 있고 악신이 있으며, 여호와가 있고 사탄이 있게 된다. 나라는 게 있으며 또한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게 좋은 것은 선이고 좋지 않은 것은 악이라는 판단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 속에는 '나'라는 게 항상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나'를 중심으로 모든 판단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내가 없다면 우리 생각이 어떻게 바뀔까? 우리 생각 속에 나라는 게 없음(무아)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건 사탄이 아닌 바로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무아를 깨닫게 되면 선신과 악신 또한 없음을 알게 될 것이며, 우리는 지금 유일한 신(여호와)과 함께 보물찾기나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음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시련도 고통도 우리가 기꺼이 동의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것이지, 신이 무슨 벌을 주거나 상을 주는 게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모두를 사랑하는 신이 왜 우리에게 벌을 주겠는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구하러 간다는, 기독교 바이블에 나오는 얘기를 떠올려 보라. 길을 잘못 든 사람이 있다면 이를 구해주는 게 곧 신의 사랑이지, 이를 벌한다는 얘기는 길 잃은 양을 붙잡아와 잘못했다고 몽둥이로 두들겨 팬다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이처럼 신의 사랑을 왜곡하는 줄도 모르고 왜곡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기독교 목회자들이, 이처럼 있지도 않은 죄에 대한 면죄부를 팔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천국과 지옥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심을 자극하여, 마음이 선하거나 나이가 든 신도들에게서 더 많은 십일조를 짜내고 있음이다.

그러나 내가 없음을 깨닫는다면 즉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를 체득하게 된다면, 우리는 선악과라는 과일에서 얻은 분별하는 지혜를 스스로 버리게 될 것이다. 선악이란 없음을 머지 않아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 나라는 존재가 더는 세상의 중심에 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토록 완강했던 판단 기준이 점차 희미해지게 될 것이다. 나라는 게 없어짐으로써 나를 중심으로 세워졌던 수많은 기준이 점차 허물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우스운 사실은, 유대교 경전이자 기독교 경전인 창세기가 쓰여진 시점부터 지금까지 선악을 알게 해주는 선악과를 따 먹은 게 원죄라고 하면서도,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버릴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종교 지도자들이 선과 악의 분별을 더욱 강조하고 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원죄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꼴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게 원죄라면, 이제라도 선악과에서 나온 분별하는 지혜를 스스로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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