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받아들임의 힘

신타나 2026. 2. 11. 00:11

받아들임의 힘


위파사나 즉 알아차림 때문에 감각, 감정 또는 생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받아들임 때문에 그 모든 게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알아차리는 순간 받아들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알아차림 또는 위파사나가 아닌 받아들임이라는 말이다. 받아들이지 않는 한 모든 건 지속된다. 그래서 영성책인 '신과 나눈 이야기'에는 "저항하면 지속되고 받아들이면 사라진다."라는 구절이 있다.

다만 받아들이는 방법 중에 하나가 곧 알아차림 즉 위파사나인 것이다. 받아들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절망 속에서 절망조차 포기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깨닫고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음에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그 절망조차 놓아버리는 것이다. 붓다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가 바로 이러했다. 오랜 망설임과 번민 끝에 궁궐을 몰래 빠져나와 사문이 된 이후에도, 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사마타와 위파사나를 가르치는 두 스승 밑에서 고행을 했지만, 더구나 스승이 깨달았다고 인가했음에도 스스로 깨달았음 직한 느낌이 들지 않은 그의 절망이 얼마나 컸을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래서 그는 길에서 정신을 잃은 것이다. 육체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원인 때문에 졸도했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이튿날 아침, 마침 그 길을 지나던 사람의 도움으로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 속에 빠지지 않고 그 절망조차 포기했다. 모든 희망을 잃은 사람의 특징인, 마지막 절망을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그 마음마저 놓아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의 위대함이다.

절벽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린 두 손 중 하나(희망)를 놓아버린 다음, 남은 한 손(절망)마저 놓으라는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다. 절벽 위에서 나뭇가지를 겨우 잡고 있는 신체적인 손을 놓으라는 게 결코 아니다. 희망을 잃은 다음 저절로 손에 잡히는, 그 절망조차 내려놓으라는 뜻인 것이다. 이때가 바로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며, 또한 깨달음이 일어나기 직전 단계이기도 하다. 부디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절망조차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그래서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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