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고요히 있으라

신타나 2026. 2. 16. 00:07

고요히 있으라


유대교와 기독교 바이블 '시편'과 '내 안의 나'라는 영성 책에 나오는,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라는 구절에서 '고요히 있으라'라는 말이 다름 아닌, '분별하거나 판단하지 말라'라는 뜻임이 샤워하는 도중 문득 느껴졌다.
우리는 두렵기 때문에 두려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무언가를 분별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자 애를 쓴다. 평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이유도, 무언가 부족한 듯한 대처 방법을 보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고요하지 못하고 오만가지 생각으로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또는 지성)에 의한 대처가 그리 신통치 않은 것임을 깨닫고는, 말없이 지켜보는 내면의 신에게 고개 돌릴 때 우리 마음은 고요해지고 전지전능한 신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음이다.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비로소 내면에서 울리는, 조용하지만 큰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에 나오는 오래전 인물인 모세가 그랬고 100여 년 전쯤에 "내 안의 나"라는 책을 쓴 '조셉 베너'가 그랬으며, 최근으로는 "신과 나눈 이야기" 시리즈를 펴낸 '닐 월시'가 그랬다. 이들 모두가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며,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울리는 신의 말씀은, 모세나 조셉 베너. 닐 월시 같은 특별한 사람에게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매우 평범한 일이다. 평범한 우리에게는 신이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신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하지 않는 가운데, 내면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옴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내면의 신(또는 참나)을 믿고 기다리는 힘을 기르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 대개의 우리는 모세나 조셉 배너, 닐 월시처럼 믿고 기다리지 못한다. 애굽을 탈출한 같은 민족 사람들이 저마다 우상을 숭배하고 서로 다툴 때,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세 자신의 이성적 판단 대신 산에 올라가 신에게 답을 달라고 기도한 것과, 신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책으로 펴내는 게 두려웠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라는 영적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예시한 세 사람은, 창조주 신을 끝까지 믿었고 신의 목소리를 기다렸던 것이다. 보통의 우리들처럼 중간에 포기하고는, 자기 스스로 분별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고 말이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라는 바이블에 나오는 구절이 바로 이를 뜻한다. 필요에 의해서 잠시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신의 능력과 신의 사랑을 끝내 믿는 자에게 좋은 결과가 주어진다는 내용인 것이다.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고 창조주 신의 능력과 사랑도 믿지 못하는 가운데, 두려움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삶을 살지 말고 부디 믿음의 삶을 살게 되기를...

신의 사랑을 믿고 내면에서 조용히 들리는 신의 목소리를 따를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등 모든 게 내가 아니라, 다름 아닌 신이 행하는 것임을 깨닫는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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