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 9

개망초꽃

개망초꽃 / 신타 남원역사 한켠에 피어있는 꽃인지 잎인지 모를 황금빛 사진 찍어 SNS에 물어보니 모감주나무꽃이란다 능소화와 함께 하지 무렵 개화하고 열매로 염주 알을 만든다는 인터넷에 모인 사람들 덕분에 망초와 개망초 무슨 화두나 되는 양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 드디어 타파해보기로 했다 2미터까지도 자라는 망초에 비해 절반쯤 작은 키의 개망초지만 꽃은 망초꽃의 두 배쯤 크다 유월부터 길가에 흔한 개망초꽃 '개' 자가 붙은 이름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개나리, 개별꽃, 개망초꽃 계란꽃이라고도 한다 처음 본 모감주나무꽃 너무도 흔해서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개망초꽃 모두가 내 우주에 들어온 빛이다

신작 詩 2022.06.27

수수께끼

수수께끼 / 신타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닭은 혼자서도 알을 낳지만 달걀은 스스로 부화할 수 없다 빛이 먼저일까 어둠이 먼저일까 빛은 어둠을 만들고 없앨 수 있지만 어둠은 빛을 만들 수도 없앨 수도 없다 무한과 유한 중에 무엇이 먼저일까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으므로 무한이 먼저임은 당연한 논리 없음과 있음 중에 무엇이 먼저일까 있음이란 곧 유한을 나타내며 없음이 곧 무한 아니던가 없음(無)이라는 닭이 있음(有)이라는 달걀을 낳는다

詩-깨달음 2022.06.24

깨고 싶지 않은 꿈

깨고 싶지 않은 꿈 / 신타 잠자리에서 오전 내내 휴대폰 붙들고 있던 어느 날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떠올랐다 남들 앞에서 뽐내고 싶었다 잘난 낯 한 번쯤 내세우고 싶어 지금 죽는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어리석게도 나이 들어서도 나이 들어서도 무얼 더 뽐내고 내세우려 하는 걸까 부러운 모습 내가 이미 가진 것임을 빛나는 그가 바로 나 자신임을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하다 종교 경전이 진리인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진리라고 믿는 것이듯 잘남도 못남도 밖이 아니라 내 안의 믿음 남에게 내세우지 않아도 누구나 잘났음을 문득 깨닫는다 삶과 죽음조차 깨고 싶지 않은 꿈일 뿐

詩-깨달음 2022.06.18

반시 反詩

반시 反詩 / 신타 모든 게 내 것인데 무얼 부러워하리오 부둥켜안을 게 무엇이오 두려워할 게 어디 있단 말이오 내게도 주고 남에게도 주며 내게만 주지도 말고 남에게만 주지도 마오 나와 남이 하나이니 아타불이 범아일여 있음과 없음이 하나이니 색즉시공 공즉시색 내가 있는 곳에 부족이 썰물 되고 내가 사라진 곳에 충만이 밀물 된다오 나란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불어오는 바람이라오

신작 詩 2022.06.16

자산어보(玆山魚譜)

자산어보(玆山魚譜) / 신타 영화 '자산어보'를 보았다 누가 쓴 건지 확실히 몰라 검색해보니 정약용의 형님 정약전이 쓴 책이다 신유사옥 때 흑산도로 유배 간 정약전 거기서 고기잡이 청년 창대를 만나 물고기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세상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 혹여나 왕을 부정하는 자신의 서학(西學) 사상 묻어날까 동생 약용과는 달리 사상서를 쓰지 않는다 영화는 실존 인물 창대를 새롭게 그린다 서자(庶子)에서 양반으로 신분을 세탁해 과거에도 급제하고 벼슬아치가 되지만 스승의 동생이 쓴 목민심서에 나오는 대로 백성을 보살피는 정약전의 제자 장창대 백성의 고통에 눈 감을 수 없었던 그 흙탕물에 홀로 남은 버들치처럼 백골징포 황구첨정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벼슬자리에서 기꺼이 쫓겨난다 영화의 끝 무렵, 나는 눈..

신작 詩 2022.06.15

무아

무아 / 신타 붓다도 임종 시에 자귀의 自歸依를 전했다 무아 無我란 내가 없는 게 아니라 남과 대비되는 내가 없다는 뜻이련만 동갑네 카페 모임에서 마당 넓은 집을 보고 고급 승용차를 보고 친구와 비교하는 내가 있다 깨우치지 못한 게 무얼까 무엇이 덜 채워진 것일까 아직도 무엇이 남은 걸까 여전히 무아를 깨닫지 못함이다 사는 모습이 부끄러운 돌아서서 남과 비교하는 그런 내가 없는 곳에 모든 게 있음을 깨우치지 못한

詩-깨달음 2022.06.15

장날

장날 / 신타 오가는 사람들 물건을 파는 사람들 누구나 눈물겨운 삶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가르침 여전히 생생하지만 모두를 사랑할 때 모든 걸 사랑할 수 있을 때 나는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음이다 어차피 나를 안다는 건 내가 아닌 남에게 달린 일 밖을 통하여 안을 볼 수 있다 장터를 지나며 곁을 스치는 사람들 그 안에서 나를 바라본다

신작 詩 2022.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