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191

우리는 능력 자체이다

우리는 능력 자체이다 우리는 인식 기능 자체 또는 인식 능력이지 인식 능력에 의해 인식된 내용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식 능력 그 자체는 그냥 지나치는 채 인식된 내용을 기억 속에서 재인식하곤 합니다. 그러나 기억된 인식 내용은 관념에 지나지 않으며 실체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우리는 인식된 내용인 관념을 흔히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허상이며 환상일 뿐입니다. 허상이거나 환상이 아닌 실체로서의 나는 기억된 내용이 아니라 기억 능력 자체입니다. 인식되고 기억된 내용이 아니라, 인식과 기억 등 능력 자체라는 말입니다. 또한 현상계에 있는 우리의 몸뚱아리를 비롯한 물자체는 학교에서 쓰는 교육 기자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신인 우리 자신에 대한 기억을 되찾기 위한 보조수단인 것입니다. ..

깨달음의 서 2022.01.04

절망조차 포기한다는 것

절망조차 포기한다는 것 우리는 젊어서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고 부와 명예의 증대를 추구하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맨 나중엔 정신적 평안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정신적 평안을 얻는 길은, 추구가 아니라 오히려 추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적 용어를 빌리자면 내려놓거나 내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거나 또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는 길은, 다름 아닌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했을 때입니다. 즉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자신을 내려놓거나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도 마지막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추구하거나 신에게 내맡기는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포기마저도 포기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추구하..

깨달음의 서 2022.01.04

인식과 기억에 대하여

인식과 기억에 대하여 오감을 통하여 감각된 것이 이해를 거쳐 지각된 다음 인식되고 기억되는데, 기억에는 이미지(像)적 기억과 관념적 기억 그리고 습관적 (또는 신체적) 기억이 있다. 형상이 있는 사물은 이미지로, 무형의 형이상학적 대상은 관념으로 뇌세포 속에 기억되며, 그리고 반복 동작은 신체적 습관으로 몸 전체의 세포 속에 기억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복 동작에 의한 신체적. 습관적 기억은 두뇌를 거쳐 인식된 다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이해에서 인식이 생략된 채 신체적 기억으로 바로 넘어가는 시스템이므로 여기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인식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겠다. 따라서 신체적. 습관적 기억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인식이란 대개 감각되는 즉시 인식되지만, 사물이 불분명하거나 사전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오감을..

깨달음의 서 2022.01.04

인간인 우리는 기억 자체다

인간인 우리는 기억 자체다 우리는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이거나 기억된 내용이 아니라 기억 자체다. 즉 기억이라는 능력 또는 에너지가 우리 자신인 것이다. 기억에서부터 모든 작용이 시작된다. 감각·생각·감정·느낌·의지·영감 등 모든 게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경험 즉 기억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나 능력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억된 내용이 우리 자신일 수는 없다. 치매란 어떤 일이 일어난 직후부터 일정 기간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상실이다. 이렇듯 치매 환자는 기억 내용에 대한 일시적인 장애 상태일 뿐 기억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치매 환자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기억된 내용이 아니라 기억 능력 자체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我相도 기억된 자신의 ..

깨달음의 서 2022.01.04

실상과 환상

실상과 환상 만유인력과 같은 물리 법칙이나 화학 법칙 또는 생물학 법칙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환상의 법칙일 뿐이다. 임사체험자들이 경험한 사후 세계에서는 지구상에서와 같은 물리. 화학. 생물학 법칙 등이 없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를 알 수 있다. 고로 지구상에서의 모든 법칙은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법칙일 뿐이므로, 지구라는 유형의 물질 세계가 아닌 무형의 영적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법칙에 의한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는 중력의 법칙은 물론이고 빛에 관한 모든 물리학적 법칙도 없으며, 또한 몸이라는 게 없으므로 모든 생물학적 법칙도 필요가 없다. 고로 환상인 지구상에서의 삶을 떠받치기 위한 모든 법칙 역시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 삶이 환상이라는 얘기는, 우리가 지..

깨달음의 서 2022.01.04

실체가 없는 게 곧 실체다

실체가 없는 게 곧 실체다 석가모니 생존 당시의 브라만교 교리처럼 아트만이 존재한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없을 수는 없다. 브라만교에서 주장하는 아트만이 없다는 게 석가모니가 설파한 무아 無我 즉 '아나트만'일 뿐, 내가 없다는 가르침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열반 직전에 남겼다는 '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自燈明 法燈明 自歸依 法歸依)'에서 '자등명'과 '자귀의'가 뜻하는 바를 깊이 숙고해 볼 일이다. '나'라는 존재가 항상하지 않을 뿐, 나 자신이 없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실체가 없는 실체이며, 실체가 없는 그게 바로 '나'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실체가 없는 게 곧 나이며, 나란 실체가 없음이다. 내가 어떠한 실체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한계를 지..

깨달음의 서 2022.01.03

무상 無常하기에 영원하다

무상 無常하기에 영원하다 불교 수행자나 불교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우리 몸뚱이를 비롯한 모든 게 연기된 것이며, 인연 화합에 의해 생겨난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며 영원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연기와 인연 화합이 영원히 지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상하므로 영원하지 않다는 논리는 참이 아니게 될 것이다. 무상한 채로 영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또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 순간도 같은 게 있을 수는 없지만, 같지 않은 모습인 채로 영원히 이어질 수 있음이다. 매년 내리는 수많은 눈송이가 모두 다른 모양인 것처럼 말이다. 고로 무상하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다는 논리를 더 이상 내세우지 말 일이다. 무상하기에 즉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은 게 아니..

깨달음의 서 2022.01.03

가능성

가능성 사과 씨앗은 사과와 같은 게 아니라, 사과가 될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다만 가능성이란, 반드시 결과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어느 하나의 씨앗이 도중에 썩거나 시들더라도, 다른 씨앗은 큰 나무로 자라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씨앗이 비록 수많은 개체로 나누어져 있다 해도, 모든 사과 씨앗은 하나의 형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과 씨앗은 서로 분리된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사람들처럼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고 말하지 않으며, 사과 씨앗은 자신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안다. 자신이라는 게 자기 하나뿐이 아니라, 사과의 형질을 가진 씨앗이 모두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이다. 그리고 이는 사과 씨앗에만 해당하는 진실이 아니라, 우리..

깨달음의 서 2022.01.03

추구하지 않음을 추구한다는 것

추구하지 않음을 추구한다는 것 추구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음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마치 지구가 한시도 멈춤 없이 회전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구심을 되도록 재빨리 알아차리고 이를 내려놓아야 한다. 가급적 빨리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시기도 앞당겨진다. 추구심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추구심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냈다고 해서, 지구의 회전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우리가 무엇에 대해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추구심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닌 것과 같다. 추구심은 우리 마음속에 태양처..

깨달음의 서 2022.01.03

나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분명 살아있지만, 또한 나는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신이 분명 살아있지만 신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일찍이 니체는 이를 두고 「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주 어느 한구석에서 반짝이는 금빛 의자에 앉아있는 신은 없다는 의미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은 사실 없다. 우주 한 모퉁이든 한가운데든 어느 한 곳에 있는 신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관념적으로 신을 무소부재한 존재로 만들어놓고는, 금빛 보좌에 떡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신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아있듯이 신 또한 분명히 살아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 살아있기에 ..

깨달음의 서 202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