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詩, 수필) 88

달래모란

달래모란 / 신타 굳이 가시겠다면 진달래꽃 아름 따다 뿌리지는 못할지라도 당신의 치맛자락 붙잡진 않으리오 그렇다 해도 당신 없는 계절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일 뿐 나는 당신만을 바라보는 기꺼운 해바라기 되려 하오 굳이 가시겠다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약산 진달래꽃 아닐지라도 앞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당신이 가고 나면 나는 봄을 여읜 슬픔에 삼백예순 날 하냥 눈물지을 터 모란이 피기까지 나는 당신과 함께 찬란한 봄이리다* *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부분 인용 [2021년 구례문학 제 30호 상재] [2021년 춘향문학 제 4집 상재]

구월의 매미 소리

구월의 매미 소리 신타 가로수 끝에 매달린 추억 간직하고 싶어 펄쩍 뛰어오르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아가씨 연인과 함께 토요일 오후를 걷는다 도시의 텅 빈 주말 홀로 걷는 나는 문득 너를 떠올리고 휴대폰이 나도 몰래 너를 일깨운다 구월 초순의 한낮 매미 소리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멋울림* 음악은 사랑을 부르고 서로는 늦은 오후를 약속한다 가로수 잎마저 햇빛에 반짝이는 설레임은 이미 지난 봄날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해도 우리에겐 연륜이 담겨 있다 미니스커트 속 젊음은 아닐지라도 이슬에 젖어 촉촉해진 청춘이 있다 하늘은 다시 노을빛으로 타오르고 너와 나 가을밤의 온기를 껴안는다 * 멋울림 - '컬러링'의 한글 순화용어 [2021년 춘향문학 제 4집 상재]

바람이 전한 가을 편지

바람이 전한 가을 편지 / 신타 아무 때고 전화하고 문자 보내던 사람에게 연락하는 게 서먹해질 때 사방을 둘러봐도 하고 싶은 얘기 들어줄 사람 없을 때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닌 내가 아는 사람 주위를 나는 맴돌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꽃필 때는 봄날이지만 그가 타인으로 느껴지는 때 나의 계절은 무슨 빛일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모든 게 나를 위해서 일어나지만 쓸쓸함은 나의 가을을 걷고 있다 흩날리는 낙엽처럼 가을바람이 전하는 발신인 없는 편지에 [2021년 춘향문학 제 4집 상재]

건강이 최고라는 믿음

건강이 최고라는 믿음 우리는 흔히 건강이 최고라고 얘기하며 또한 대부분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게 나의 주장이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의 건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믿음에 의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기도 하고 그와 반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건강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건강이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 진짜로 중요한 것은 건강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이게 바로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이다. 생각으로 드러나는 현재 의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드러나지 않는 잠재의식 속의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심지어 어떠..

천둥

천둥 / 신타 하늘이 울리는 듯한 천둥소리에 잠결임에도 문득 귀가 열리어 내가 잘못한 일은 없는지 다시금 되새겨본다 죽음이 아닌 목숨을 구걸하는 애처로운 인간의 단상單像*이다 신의 사랑을 무조건적이 아닌 조건적인 것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군상群像이다 군상 중 어느 하나의 모습 천둥소리 그치고 나면 불안도 두려움도 모두 잊어버리는 꿈결에도 가슴 졸이며 몸의 수명을 스스로 주관하고자 하는 어리석고 애처로운 한 인간이다 60을 넘긴 나이임에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목숨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내가 바라는 바 있으면서도 기꺼이 내려놓는 삶이고 싶다 불만스러운 속내일 때 있으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이고 싶다 이것이면서 또한 저것이기도 한 나, 이율배반적인 나를 깨닫는 삶이고 싶다 * 단상單..

텅 빈 침묵 2

텅 빈 침묵 2 / 신타 나는 영화 속 장면이거나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스크린이자 텅 빈 바탕이다 영화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온갖 사건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파괴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함을 자각하면서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공산주의 사상에 눈과 귀가 멀었던 시절만큼이나 거칠 게 없어졌다 그러나 처음 깨달았을 때는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었지만 더 깨닫고 나니 예전처럼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더라는 송나라 청원 선사의 말씀 일찍이 전해진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빠져 스크린의 존재 잊어버렸다가 이를 다시 기억하게 되면 이번엔 스크린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스크린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우주에 있는 것 중에서 무엇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

침묵의 입술

침묵의 입술 / 신타 네 입술 내 입술이 따로 있어도 너와 내가 다른 건 아니다 하나의 텅 빈 침묵에서 수천수만의 입이 나고 죽지만 너와 나 텅 빈 침묵은 언제나 지금 여기 있을 뿐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을 뿐 입으로는 사랑하고 아끼며 더러는 다투고 찌를지라도 침묵은 영원히 살아있는 비어있음이다 고요가 있기에 소리가 있으며 텅 빔이 있기에 우주가 생겨나고 없음이 있기에 있음이 드러나나니 너와 나 입으로는 둘일지라도 침묵으로는 하나이며 없음이나니 없음의 있음 가운데 우리는 모두 하나의 있음이나니 2021년 구례문학 / 구례문인협회

침묵하는 향기

침묵하는 향기 화사하게 핀 팝콘 후드득 털어 따스함 사이에 둔 채 연분홍 손길로 한 줌씩 영화 보면서 먹었음 좋겠다 바람조차 잔잔한 일요일 줄지어 서 있는 오리배 타고 잠자는 듯 흐르는 물 위에서 꿈꾸듯 흘러갔으면 좋겠다 겨우내 우울하던 벚나무 지금은 웃음꽃 피우는 것처럼 이유도 없이 싫다던 찬바람 벚꽃처럼 활짝 피었음 좋겠다 눈의 잣대로 보아 아귀가 맞거나 귀에 달콤한 향내가 나지 않으면 한겨울이던 나 자신부터 봄바람마냥 살랑거렸으면 좋겠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내가 원한 것이고 멀어진 사랑조차 내가 창조한 것이라면 봄빛은, 누가 원하고 창조한 것일까 여전히 모르긴 해도 사랑은 늘 봄날이고 벚꽃 같은 연분홍빛 나를 향한 그대 마음이었음 좋겠어 눈 내리는 날에는 눈꽃으로 피어나고 꽃이 지면 돋아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