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詩, 수필) 88

잠 / 신타 책을 읽다가 유튜브를 듣다가 문득 빠져든다 깨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무얼 하다 왜 깨는지 모르지만 잠들 때의 거대한 중력은 사라지고 달에 온 듯 가볍다 도대체 얼마를 잔 것일까 아직 밤 열한 시 전이다 불과 두세 시간의 잠이 졸음의 블랙홀을 통과해서 나를 낯선 별에 데려다 놓는다 다만 무대 세트는 그대로다 여전히 켜져 있는 스탠드 불빛이며 옆에 놓여 있는 스마트폰이며 어느 우주 어느 이삿짐센터 소속의 무대 감독인지는 몰라도 완벽한 솜씨다 거의 날마다 새로운 별로 여행 중임에도 언제나 내가 잠들기 전 무대 풍경 그대로다 잠이라는 거대한 중력장 블랙홀을 통과하는 우주적인 이동임에도 [2020년 춘향문학 제 3집 상재]

돈과 부와 풍요

돈과 부와 풍요 신타 호주머니에 그리고 통장에 들어있는 돈이 내 것이 아닌 모두의 것임을 다만 내가 관리하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돈을 쓸 때마다 불치병 환자의 생명이 줄어드는 양 아까워하고 불안해하던 나날들 나는 지금 눈물로 깨달음의 기쁨을 느낍니다 내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내게 들어와도 좋고 내게서 나가도 좋은 돈과 부와 풍요가 언제나 내 안에 있음을 나는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2020년 춘향문학 제 3집 상재]

오월엔 골목길 걸어보자

오월엔 골목길 걸어보자 신타 오월엔 골목길을 걸어보자 울타리마다 넘실대는 유혹 붉고 푸른 자유를 향한 동경 송이 송이마다 맺힌 그대의 정열과 사랑 그리고 눈물이 담쟁이넝쿨처럼 흐르리라 한때는 초록빛으로 물들고 장밋빛으로 빛나던 하늘가 이젠 먹구름 가득할지라도 오월엔 골목길을 걸어보자 초록빛 바다 다시 출렁이고 세상은 온통 장밋빛일 테니 [2020년 구례문학 제 29호 상재]

꿀 맞춤

꿀 맞춤 / 신타 자전거 타고 길가를 지나는데 아카시아꽃과 향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아 참! 지금이 오월이지! 요염한 장미는 오월의 꽃으로 기억하면서도 수수한 아카시아는 잊고 있었다 한참을 잊고 있었다 오월이라고 먼저 내민 손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니 내 어깨를 툭 친 게다 반갑다고 서운하다고 이다음 다시 만나면 작은 입술마다 꿀 맞춤해야겠다 내가 사랑하는 건 붉은 자존심이 아니라 하얀 자기 사랑이라는 걸 보여주어야겠다 [2020년 구례문학 제 29호 상재]

데이지꽃

데이지꽃 / 신타 국화는 가을에 핀다는 나의 고정관념 박차고 사월의 봄바람에 담겨 하얗게 흔들리는 소국 그에게도 때가 있으며 때가 되었기에 피어난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소망 있었기에 태어난 어둠도 모르는 내면엔 감추어진 수정 빛나고 햇살처럼 밝은 겉모습 아름다운 눈물 있으리 낮의 분별과 상관없이 별빛마다 소중한 사연 그의 아슴아슴한 기억 꽃잎마다 아롱져 있는 빛과 그림자라는 서로 같지 않다는 환상에서 이제는 깨어나 봄빛에 소국처럼 환하게 웃는 [2020년 구례문학 제 29호 상재]

잠재의식, 나와 하나 되다 / 시조

잠재의식, 나와 하나 되다 신타 지인이자 친구를 가끔 찾아왔어도 이처럼 기뻤던 날 언제 또 있었던가 산촌에 사는 친구여! 오늘처럼 오늘처럼 문학이 낙엽 되고 지성이 흩날리며 학식이 눈 내리고 이성이 차가워도 관(觀)하는 마음바탕은 영성으로 꽃 피우리 십수 년 넘는 세월 애쓰며 달려왔지만 주린 배 채우고자 허둥지둥 보낸 시간 연년이 넘지 못하던 은산 철벽 고갯길 시절이 되었는지 때가 다가왔는지 조용히 찾아드는 한 줄기 깨우침 집착을 벗어난 의식, 하나 되는 소망들! (지리산 문학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여 「지리산 문학관 십주년 시조집」을 두운으로 해서 쓴 시조) [2020년 구례문학 제 29호 상재]

시절인연

시절인연 / 신타 진은영 시인의 시 '달팽이'에 나오는 '달이 창백한 건 일찍 나왔기 때문이 아니야 달은 출혈의 산물이야' 에서 '출혈'의 뜻을 나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수년전에도 읽어본 적 있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던 때가 되어야 시퍼런 감이 노을처럼 익어가듯 때가 되어서야 하나씩 알아간다 하나씩 알아간다는 것,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시절인연이 지금 닿은 것일 뿐이다 [2020년 구례문학 제 29호 상재]

신년 아침의 태양

신년 아침의 태양 / 신타 빛나는 하늘가 구름 한 점 없고 욕실에서 나온 태양 눈에 부시다. 위풍당당 찬 바람을 밤마다 연모(戀慕)하던 냇물은, 흰 종이 해지도록 고쳐 쓴 편지 냇가 곳곳에 걸어 놓았다. 겨울임에도 여전히 사랑은 열정(熱情)으로 가득하며 화사하게 꾸민 태양 다정스레 웃음 짓고, 의미 있는 눈짓하며 창문(窓門) 열고 들어오면 내 가슴엔 희망이 넘쳐흐르고 내 마음엔 사랑이 불타오른다. 계간지 [시와 창작] 200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