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詩, 수필) 93

전기적 일상

전기적 일상 / 김신타여름날 나는 선풍기를 튼 채어싱 매트 위에다 발을 대고충전하면서 휴대폰을 보다가더러는 에어컨을 꿈꾸기도 한다거리에 늘어진 전선은사진 찍을 때마다 하늘에 까만 줄 긋고집안에 들어온 전깃줄은내 몸 주위를 감싸고 있다전기 없는 세상을 사는자연인의 삶도 있을 수 있으나일상은 나도 모르게전기적 세상이 되어 버렸다밤중에도 가로등이 있고아름다운 야경이 있으며아궁이 불이 아니어도따뜻한 겨울이 있다난로에 주전자를 올려놓지 않아도커피 포터에서 물이 끓어오르고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아도전기밥솥에서 저녁이 익어간다「구례문학 33호(2024년) 발표」

쎔쎔 (또는 쌤쌤)

쎔쎔 (또는 쌤쌤)결국 "서로 같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영어 same same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 '쎔쎔'이라는 단어가 요즈음 나에게 정신적인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감사한 일도 더러 생각나지만, 그보다는 불편했던 일, 괘씸한 일 등이 머릿속에 더 자주 떠오른다. 그때마다 상대방의 모습이 연이어 떠오르며, 그에 대한 기분 나빴던 생각 또는 괘씸한 마음이 더 깊어지곤 한다.그러나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일 뿐이다. 해서 나는 60 중반이 넘은 나이가 되어 이제서야 마음속으로 쎔쎔을 외치게 되었다. 그가 내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다른 때에는 그가 내게 잘한 일도 있을 것이니 쎔쎔이며, 또는 그만이 내게 잘못한 경우가 있는 게 아니라, 나도 그에게 잘못한 일이 ..

헤어짐의 미학

헤어짐의 미학 / 김신타 그대 삶에 평안함이 이어지길, 파도가 칠지라도 지나서 보면 우리에겐 늘 잔잔한 바다 그동안 고마웠어 너를 사랑해 파도였다가도 다시 바다일 수밖에 없는 운명 떨어졌을 때 잠시 만났지만 어차피 하나일 수밖에 없는 너와 나 지금은 둘이지만 언젠가 다시 하나가 될 터 그때 괜히 미안해하지 말고 지금 헤어짐조차 사랑하자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에 감사하자 너와 나 그리고 모두에게 깊이 고개 숙이자 만남이 없었다면 우리 헤어짐조차 아름답다고 독백하는 시간 고요히 가질 수나 있을까 바다가 있기에 파도가 있고 파도가 있기에 바다인 것처럼 우린 모두 하나이지만 둘로 보이는 때가 있을 뿐 다시 하나임이 느껴지는 날 언제일지라도 그때는 오리니 사랑과 아쉬움으로 그럼 그대여 안녕 "떠나갈 때 떠나간대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 김신타 마지막이란 더 이상 갈 길이 없거나 더 이상 함께 할 시간이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리라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으니 마지막인 것처럼 막말이 아닌 미련을 담아 작별 인사를 하자 죽음조차 마지막이 아닐진대 하물며 지상에서라면 우린 언젠가를 희망해야 한다 지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지금이 아닌 다른 때일지라도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지니 「구례문학 32호(2023년) 발표」

믿음의 오늘

믿음의 오늘 / 김신타 눈에 보여야 믿을 수 있었으나 이젠 알 수 없어도 믿을 수 있다 내가 모든 걸 안다면 믿을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걸어 본 오늘과 아직 지나지 않은 오늘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일도 또 다른 이름의 오늘이다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모든 게 보인다면 세상은 사막과 같을 뿐이다 알 수 없기에 오히려 고맙다 세상 모든 걸 안다면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무서웠던 사후세계가 이제는 무조건의 사랑 가득한 곳으로 바뀌었는데 예전엔 알 수 없어 불안했던 미래 이제는 뻔한 미래가 되어버렸다 오랜 세월 부둥켜안아 왔던 마음속 두려움에서 벗어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인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어차피 뻔한 미래가 아닌 알 수 없는 믿음의 오늘, 그 사랑을 향해 달려 나가리라 「구례문학 3..

찻물을 끓이며

찻물을 끓이며 / 김신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싶어 찻물을 올려놓는다 평생 아침잠 많던 내가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런 호사를 누린다 도라지. 생강. 마늘이 차로 합체된 조그맣고 하얀 망사주머니 끓인 물을 붓는다 목과 기관지에 좋으리라는 기대를 마신다 따뜻함이 좋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좋다 한때는 내가 산다는 게 살아 있음이 고통인 때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이어서 좋다 내가 살아 있음에 아침과 마주할 수 있음에 하고자 하는 일 행할 수 있음에 내가 나를 볼 수 있음에 내가 존재함에 [구례문학 제 29호(2020년) 발표]

꿈의 세계

꿈의 세계 현실 세계는 절대계 속의 상대계인 반면, 꿈의 세계는 상대계 속의 절대계이다. 그러므로 꿈꾸면서 우리는, 절대계의 존재 형식과 우리 자신의 실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는, '신과 나눈 이야기' 를 비롯한 많은 영성 관련 책에 나오는 것처럼, 현실 세계가 실재가 아닌 실상임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든 악몽이든 우리가 꿈을 꾸고 깨어났을 때, 꿈속에 있었던 자기 자신은 물론이며 다른 사람도 건물도 시간도 공간도 모두 사라진다. 유일하게 남는 것이라곤 기억뿐이다. 그리고 꿈속에 내가 없는 경우란 없다. 모든 꿈속에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처럼 꿈속의 절대계든 현실 속의 상대계든 '나'라는 존재가 없을 수..

여전히 천동설

여전히 천동설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기억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감각만이 진실을 담보한다는 어리석은 믿음은 여전하다. 오늘날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과학이라는 이름에 의해 세뇌된 모습일 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전히 천동설을 믿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태양이 도는 것으로 보인다면, 시각이라는 감각이 잘못된 것임을 이제는 깨달아야 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오감으로 확인한 사항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야 위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차치하고라도, 공전 속도가 대략 초속 30km라고 하므로 이를 시속으로 바꾸면 10만km가 넘는다. 이러한 속도로 하루도 쉬지 않고 태양 주위를 달리는 지구 위에서,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