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중도와 정반합

신타나 2025. 1. 15. 05:08

중도와 정반합


진짜인 줄 알았던 것이 어느 순간 진짜가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짜가 가짜이고 가짜가 진짜인 것으로 생각하나 사실은, 어느 한쪽이 진짜인 게 아니라 모두가 반쪽의 진실일 뿐이다.
진실은 정반합의 원리에서와 같이, 진짜와 가짜라고 나누어서 생각했던 두 가지가 하나로 합일되었을 때 나타난다.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즉 물질이 곧 텅 빔)이라는 말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색과 공이라는 나누어진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비로소 하나의 진실이 완성된다.
역시 불교의 가르침 중 하나인 불이법이기 때문이다. 둘로 나누어진 것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 진실일 수는 없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중도를 말씀했다.
중도란 중간이 아니라 정반합에서의 합을 뜻한다. 그 모든 게 합쳐진 상태가 바로 중도이다. 조선 시대 황희 정승의 일화인 "그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당신 말도 맞다."는 태도가 곧 중도의 마음 자세이기도 하다.

색과 공에서는 특히 그렇다. 색즉시공을 처음 깨달은 상태가 진실이 아니라, 색과 공이 합일이 되었을 때 비로소 중도가 되고 진실이 된다. 색과 공이 어느 한쪽은 가짜이고 다른 한쪽은 진짜인 게 아니라, 색과 공으로 나누어진 세계가 바로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방편이다.
반면 색과 공이 하나로 합일된 세계가 궁극적인 진리의 상태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색과 공으로 나누어진 상태는 가짜이고 하나로 합일된 상태가 진짜인 셈이다.

고로 깨달음이란 색즉시공 즉 색이 곧 공임을 깨닫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두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임을 깨닫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깨달음이란, '색즉시공'을 처음 깨닫고 나서 계속하여 '색과 공의 합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이다. 색과 공이라는 이분법에서 시작하여 불이법으로 가는 점오점수 내지 돈오점수의 길이지, 한순간에 모든 것을 깨닫는다는 돈오돈수의 길이 아니다.

색이라는 물질세계가 허상이고 허망한 세계가 아니라, 공이라는 형이상의 세계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진실하고 궁극적인 세계가 된다. 어느 것도 허투루 창조된 것이 없다. 지상의 세계도 천상의 세계도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창조되었다. 마찬가지로 지상에서의 어느 삶도 하찮은 삶이란 있을 수 없다. 99마리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간다는 비유가 바이블에 나오는 것처럼,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영원히 길을 잃게 되는 일은 없다. 잠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일 뿐이다.

그동안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현실 세계 즉 색이, 텅 빈 세계 즉 공임을 깨닫게 된 뒤로는 오히려 현실 세계가 가짜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반합 원리에서 정과 반에 해당할 뿐이다. 정과 반 어느 한쪽이 진실인 게 아니라, 완전한 진실은 오로지 합이라는 하나일 뿐이다.
이게 바로 불이법의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서 색즉시공임을 깨닫는 것은 깨달음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색즉시공'이라는 깨달음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시작하여 '색과 공의 합'이라는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180도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360도로 다시 돌아와야 하며,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님을 깨닫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산이 산이고 물이 물임을 다시 깨닫는 자리까지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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