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아름다운 여인

신타나 2005. 6. 22. 05:51

 

                         아름다운 여인

 

 

 

까만색 구두, 까만색 7부바지에 까만색 웃옷을 입은 그녀는
까만색 손가방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가방으로 팔꿈치를 받치며 두 손으로 턱을 괴고는
살며시 눈을 감은 채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다.


나는 우연히 맞은 편 의자에 앉아 그녀를 바라본다.

진주 목걸이와 휴대폰 줄을 목에 건 그녀와
잠시 눈이 마주쳤으나 그녀는 도로 눈을 감는다.


전동차는 달리기와 멈추기를 계속하고 사람들은 들고나더니
녹색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다.
겨우 틈을 찾아 그녀를 바라보니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내리고 전동차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자

그녀가 다시 눈을 뜬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침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로 걸어간다.
까만 옷과 까만 구두, 까만 손가방을 든 그녀는 무슨 생각하며 살아갈까?

 

그녀가 출입문에 서서 하품을 한다.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전동차 바닥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곧 내릴 것이라 생각하여 아쉬워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출입문 앞에 서서 무려 대 여섯 정거장을 더 가서야 내린다.

 

나의 시선이 그녀를 좇는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그녀는 기분이 나빴을까?
내가 스토커처럼 보였을까?

 

그녀가 내 마음속 아름다운 여인
황진이, 루 살로메, 베아트리체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는데…

 

 

 

 자란 김석기

'단상 또는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형제도에 대하여  (0) 2006.02.26
꿈꾸는 사람  (0) 2005.09.27
지식은 시대의 산물이다.  (0) 2005.09.08
소크라테스와 설거지  (0) 2005.06.09
내가 사는 삶  (0) 200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