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대상과 주체

신타나 2024. 11. 10. 06:55

대상과 주체


'몸'은 유형의 대상이고 '나'는 무형의 주체다. 유형의 대상과 무형의 주체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처럼 붙어있지만, 둘은 대상과 주체라는 점에서 그리고 유형과 무형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또한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석가모니는, 유형의 대상인 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형의 주체인 나는, 몸에 의한 감각적 대상이 아니므로 이를 무아 無我라고 표현한 것이다.

유형의 몸과 무형의 나는 대상과 주체로서 서로 다르지만, 이 두 가지는 마치 익기 전의 땅콩 껍데기와 알맹이처럼 하나로 붙어있다. 해서 대부분의 우리는 대상인 몸과 주체인 나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고, 따라서 몸이 곧 자신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몸은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대상이지만, 나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기에 대상이 아닌 주체라고 이름하며, 주체를 '나'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전후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 인간은 유형의 대상인 몸과 무형의 주체인 나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석가모니 이래 이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말이다.

땅콩 알맹이가 여물기 전에는 즉 익기 전에는 알맹이와 껍데기가 분리되지 않는다. 다 익어야 비로소 분리가 된다. 사람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깨달아야 껍데기인 '몸'과 알맹이인 '내'가 분리된다. 그런데 알맹이와 껍데기가 모두 물질인 식물과는 달리, 우리 인간은 껍데기인 '몸'은 물질적 존재이지만, 알맹이인 '나'는 무형의 영적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즉 신체적으로 늙어가거나 정신적으로 익어간다고 해서, 유형의 대상인 몸과 무형의 주체인 내가 서로 다르게 인식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우리는 죽을 때까지 몸과 나를 하나로 인식하며 삶을 끝맺는다.

이른바 현대 과학이나 현대 기독교 신학에서도 이런 오류는 마찬가지다. 많은 과학자와 기독교 신학자는 여전히 무형의 주체인 나를, 유형의 대상인 몸과 혼동하고 있다. 대상과 주체로 나누어지는 둘을, 하나의 주체로 착각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이 생겨나는 것이다. '유형의 몸'은 진화론으로, '무형의 나'는 창조론으로 설명하면 서로 싸울 일이 없는데, 몸과 나를 동일시하므로 끝없는 충돌이 일어나고 있음이다.

요즘 유튜브 등을 통해 영성적인 선각자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보는 내가 있는 게 아니라 오직 '봄'만이 있다."라는 얘기를 가끔 듣게 된다. 그러나 보는 내가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보는 내가 '개체적인 나'가 아닌, 개체에서 벗어난 '전체적인 나'일 뿐이다. 자신의 육체와 동일시 하는 '개체적인 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 뿐, 개체에서 벗어난 '전체적인 나'는 영원히 존재한다. 고로 '봄'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전체로서의 내가 보는 것이다.

모든 대상에는 저마다 주체가 있다. 대상과 주체는 서로 다르지만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분리되어 있지 않기에 대상과 주체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으로 보이며,  또한 보이는 대상이 곧 주체인 것처럼 보인다. 즉 대상이 곧 주체인 것으로 보이지만, 대상은 대상이고 주체는 주체다. 그렇다고 해서 대상이 주체에 종속되어 있거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주체 안에 대상이 들어있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지각되는 각각의 대상이 주체와 더불어 함께 있을 뿐이다.

다만 대상은 유형이므로 감각의 대상이나, 주체는 보이지 않는 무형이므로 감각의 대상이 아닌 차이가 있다. 고로 대상인 우리 몸이나 사물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 주체는 하나인 신 안에 담겨있는 존재로서 신 안에서 하나이다. 각자의 몸과 함께 저마다 주체로서 행동하기에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체로서의 나'라는 무형의 존재는 '하나의 신' 안에 있는 부분일 뿐이다. 오직 신만이 전체로서의 '나'인 것이다. 그래서 몸과 함께하는 개개의 주체는 무아 無我이다. 주체인 신 神은 둘이 아닌 오직 하나이며 전체이자 절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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