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49

울적한

울적한 / 김신타 울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울적한'이라는 단어가 아름답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제목의 노래에 나오는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포기하고 찢어질 것같이 아파할 수 없어 난" 이라는 구절이 끝내 내리는 빗물처럼 창밖의 나무를 적신다 "" 악동뮤지션 노래, 가사 부분 인용

신작 詩 2024.10.15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 김신타 산수유꽃 하염없이 피던 봄날 지인 집에서 맛본 하이볼 한잔 모처럼 전화하고 약속까지 해 햇살 가득한 가을 아침 시내버스 타고 허위허위 갔으나 사정이 생겨 일정을 미룬다는 카톡만 있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되돌아와 떨어졌다는 말에 사 들고 간 토닉워터는 어차피 있기에 동네 마트에서 위스키를 샀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하이볼 만드는 법은 인터넷으로 다시 검색해 지금 마시고 있는 중이다 혀끝의 감촉은 아니라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속삭인다 기분 좋은 게 더 좋은 거라고

신작 詩 2024.10.12

전화위복 轉禍爲福

전화위복 轉禍爲福 / 김신타 시간 맞춰 헐레벌떡 탄 시군 경계를 넘는 시내버스 감사하면서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본다 약속했던 사람으로부터 장염 때문에 내일 보자는 내용이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까 말까 하다가 일단 그냥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손님은 몇 명 없었지만 그래도 버스 안이라 통화하기 미안해 참고 기다리다가 목적지에 내려 전화했더니 받지를 않는다 장염이면 전화도 받지 못하는 건지 그제서야 버스를 놓쳤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버스가 이미 지나갔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출발지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와 조금 전까지의 일을 돌이켜보니 그래서 새옹지마인가 보다 닥친 일에 무조건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져보는 하루이다 그것이 늦잠 때문에 카톡을 일찍 보지 못한 것이..

신작 詩 2024.10.12

하이볼

하이볼 / 김신타 따로따로 먹어야 제맛인 게 있고 함께 섞어 먹어서 더 맛을 내는 게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만이 더 진실이고 진리인 게 아니라 빛이 입자인 것도 진실이고 파동인 것도 과학적 사실인데 우리는 하나만을 찾고 일등의 이름만을 기억한다 주체인 신은 하나이지만 대상인 사람은 갈래갈래 퍼졌는데 하나인 절대를 애써 벗어난 우리 여전히 하나의 상대만을 고집한다 주체는 하나일 수밖에 없지만 대상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으며 절대는 하나이지만 상대는 둘 이상일 수밖에 없는데

신작 詩 2024.10.11

아침

아침 / 김신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쓴 소설을 읽다가 문득 고개 들어보니 창문 밖은 안개가 뿌연 아침이었다. 하긴 평소대로라면 초저녁이었을 저녁 9시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잠자리에 누웠다가 밤 열두 시쯤 다시 일어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학생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소설도 어렵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었으나, 쉰 살쯤인가부터는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도무지 재미가 없고 싫증이 나서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소설 읽기를 포기하곤 했다. 그랬던 나였는데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e북으로 구입해 읽느라 창밖에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남편과 형부 그리고 언니의 시점에서 각각 쓰인,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

신작 詩 2024.10.11

믿음에서 깨어나다

믿음에서 깨어나다 / 김신타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닌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기쁨 주는 사람만이 아닌 내게 상처를 주는 존재도 나를 사랑하는 영혼이다 앎이 달라서도 아니고 처지가 달라서도 아니며 서로의 믿음이 다를 뿐이다 초월이란 공간적인 도약이거나 시간적인 이동을 뜻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믿음을 뛰어넘는 일, 자신의 믿음을 초월한 곳에 기적이 있고 신비가 있으며 소망하는 현실이 거기 있다 믿음에서 깨어난 병아리 꽃처럼 소망하던 봄날이 눈발 속에서도 다가온다

신작 詩 2024.08.24

전기적 일상

전기적 일상 / 김신타 여름날 나는 선풍기를 튼 채 어싱 매트 위에다 발을 대고 충전하면서 휴대폰을 보다가 더러는 에어컨을 꿈꾸기도 한다 거리에 늘어진 전선은 사진 찍을 때마다 하늘에 까만 줄 긋고 집안에 들어온 전깃줄은 내 몸 주위를 감싸고 있다 전기 없는 세상을 사는 자연인의 삶도 있을 수 있으나 일상은 나도 모르게 전기적 세상이 되어 버렸다 밤중에도 가로등이 있고 아름다운 야경이 있으며 아궁이 불이 아니어도 따뜻한 겨울이 있다 난로에 주전자를 올려놓지 않아도 커피 포터에서 물이 끓어오르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아도 전기밥솥에서 저녁이 익어간다

신작 詩 2024.07.25

바램과 수용

바램과 수용 / 김신타 해가 났기에 빨래를 했더니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친다 장마 비가 쏟아지던 날 저녁 처마 밑에 널어놓은 빨래 이튿날 해가 반짝 든 적도 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날씨에 대해 불평하고 짜증 내는 사람이 하릴없이 어리석어 보인다 바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어나는 일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가 곧 무소불위(無所不爲) 능력의 신(神)이 아닐까

신작 詩 2024.07.24

탈장

탈장 / 김신타 샤워할 때마다 사타구니 옆에 툭 불거진 혹 같은 게 살짝 만져진다 서 있을 땐 탁구공처럼 느껴지고 누워있을 땐 아무런 흔적이 없다 외과일까? 비뇨기과일까? 국가암검진 차 들른 항문외과 가져온 대변 통을 내밀며 물어본다 사타구니 옆 혹이 혹시 어느 과인지 여기도 외과이니 일단 진찰받아 보란다 비교적 젊어 보이는 의사 탈장 脫腸으로 보인다고 한다 대도시 병원에서 수술받는 게 치료법이란다 알겠다며 집에 와 검색해 보니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열 명에 한 명꼴로 걸리는 어쩌면 흔한 질병이기도 하다 얇아진 복벽을 창자가 뚫고 나와 생긴다는 주사나 약물이 아닌 외과 수술만이 치료법이라는 게 다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암 덩어리가 아닌 것만 해도 좋은 일 탈속의 심정으로 경과를 살필 밖에 해탈..

신작 詩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