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모습

[스크랩] U.G.크리슈나무르티 - 잃어버린 자서전

신타나 2012. 8. 4. 02:06

U.G.크리슈나무르티 - 잃어버린 자서전

 

 

 

 

[ UG ]

사람들은 저를 해탈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해탈이란 단어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저의 상태를 설명할 마땅한 단어가 없습니다. 저는 해탈이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평생동안 깨달음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깨달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물음은 제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원전 6세기의 부처를 비웃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로 인해 영화를 누리는 착취자들입니다. 인간의 외부에 힘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에 의해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신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저는 깨달아야 할 자아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강렬한 일격이었습니다. 마치 벼락에 맞은 듯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아의 각성이라는 한곳에 투자했는데 갑자기 찾을 자아도, 깨달을 자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말을 내뱉겠죠. '빌어먹을, 내가 이제껏 무슨 짓을 한 거지.' 폭발이 일어납니다.

 

갖가지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것을 겪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제가 말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 한 조각을 살짝 맛보게 하고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다시는 이것을 원하지 않게 되도록 말입니다. 여러분이 찾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신화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해탈이 아닙니다.

 

글쎄요. 무어라고 부를지.... 해탈이나, 자유. '모크샤', 해방. 이런 단어들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단어들은 저마다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죠. 이것은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일어나는 것이죠. 그리고 왜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지, 저는 모릅니다.

 

[ Q ] 그것이 당신에게 일어난 건가요?

[ UG ] 저에게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 Q ] 언제였습니까?

[ UG ]

마흔 아홉 살 때였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나 실체를 찾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기울이죠. 그러나 바로 그 노력이 우리를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상태에 항상 머무르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상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의 결과로 획득하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거기에는 원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찾아다니는 일은 끝이 났습니다.

 

 

 

[ Q ] 하지만 그것이 찾아다닌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군요. 당신은 철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사람들과 관련을 갖기도 했는데요.

[ UG ]

찾아다니는 것은 우리를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찾아다녀서 찾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 Q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일어난 것이군요. 찾아다녀서가 아니라.

[ UG ]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요. 그 말이 적당하군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이미 있는 것'이 스스로 표출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상태에 있습니다. 이 자연스러운 상태가 스스로의 방식으로 표출되어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노력입니다.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반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심오하고 경건한 것으로 여기는 모든 것들은 의식에 해독을 끼칩니다. 여러분은 아마 (웃음) 이 해독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성스럽다고 여기는 것, 심오하고 명상적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다 의식에 해독을 끼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은총이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은총이라면 '누구의 은총' 하는 식으로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택받지 않아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도 그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가능했다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것은 제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데 제가 주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 Q ] 그러나 저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느끼고 있고요.

[ UG ]

아니죠. 그것은 느끼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알고 모르고의 문제도 아니죠. 결코 그것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에 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죠. 그 일에 관한 의식도 없습니다. 글쎄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저는 한번도 다른 사람과 제가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Q ]처음부터, 기억나는 한 처음부터 그랬던 건가요.

[ UG ]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찾아다녔죠.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난 다른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추구했죠. 그러니,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군요. 저의 배경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해야 할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사람들의 웃음소리)

 

[ Q ] 나쉬케타처럼 호기심 때문인데요. 당신에게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가 몹시 궁금합니다.

[ UG ] 글쎄요. 아주 긴 이야기라서, 짧게 이야기 할 수가 없군요.

 

 

 

 

[ Q ] 긴 이야기라도 듣고 싶군요.

[ UG ]

글쎄요. 저의 인생 전체를 모두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마 굉장히 오래 걸릴 거예요. 저의 인생이 한 점으로 모아졌고, 그리고 멈추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개인사는 없죠.

저의 전기를 쓰려는 두 명의 전기작가가 있죠. 서로 다르게 접근을 하는데. 한 명은 제가 해 온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하던 영적인 수행법, 받아 온 교육, 그리고 그 밖의 모든 배경에 관심이 있죠. 저를 그곳에 묶어 두려는 겁니다. 지금 저의 모습은 그런 모든 것들에 불구하고 생겨난 것인데도 말이죠. (웃음) 다른 전기작가도 '불구하고' 생겨난 지금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어요. 왜냐하면 책 한 권을 쓸거리가 없기 때문이죠. (웃음) 그들은 책을 만들어 내는 데에 더 흥미가 있습니다. 편집자들도 그런 일에 관심을 기울이죠. 세상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제가 있는 상태의 원인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났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은 거겠죠. 우리는 우리가 처음에 서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군요. 여전히 '어떻게'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저의 개인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은 누가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개인사는 유일무이한 것이죠.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자신의 방식대로 특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교육, 환경, 배경 그 모든 것들이 저마다 다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르죠.

 

[ Q ]

저는 세상사람들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별을 보고, 태양을 보고, 달을 봅니다. 그저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당신을 모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죠. 저는 나쉬케타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 UG ] 그 질문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야마 다르마라자가 필요하겠는데요.

 

[ Q ] 저를 위해 야마 다르마라자가 되어 주시죠.

[ UG ]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글쎄요. 어디에서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어디에서 끝나는지는 알겠는데.

(웃음) 제가 살아온 모든 이야기를 다 해야겠는데요.

 

[ Q ] 듣고 싶습니다.

[ UG ] 생각이 나지 않아요.

 

[ Q ] 격려가 필요한가요.

[ UG ]

저는 격려 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지도 않죠. 호기심을 채워 드리기 위해 제 인생의 거짓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야겠군요.

(그는 1918년 7월 9일 남부 인도에서 태어났다. 중상류 브라만이었던 그의 성은 우팔루리. 그의 이름은 우팔루리 고팔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외조부모가 마술리파탐 부근의 작은 마을 구디바다에서 그를 키웠다.)

저는 매우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는 매우 박식한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블라바츠키 (신지학회의 창시자) 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코트나 그밖에 신지학회의 이대 삼대의 인물들과도 알고 있었죠. 그 사람들은 모두 우리 집을 방문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뛰어난 변호사였고, 학식도 풍부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분은 매우 정통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뒤섞여 있는 듯한 인물이었습니다. 한쪽은 전통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었고, 다른 쪽은 신지학과 그 밖의 것들에 흥미를 갖는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그 사이의 조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UG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 말을 종종 인용하곤 한다. 그것은 그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의 외조부는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UG의 양육과 교육에 전념하기 위해서 변호사일을 그만두었다. 그의 조부모와 그들의 친구들은 UG가 이미 그의 전생에서 깨달음에 아주 가까이 다가선 인간, 요가 브라슈타이라, yoga bhrashta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저를 위해 종교적인 환경을 만드는 일과 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신지학회며 그 밖의 사람들이었죠. 매일 아침 이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우파니샤드, 판차다시, 니시카르미야 싯디 등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의 주석과 주석의 주석까지 말이죠. 새벽 네 시에서 여섯 시까지 읽는 겁니다. 다섯 살 혹은 여섯? 일곱? 그쯤 되는 꼬마가 이 모든 허튼 소리를 들어야 했죠. 하도 많이 들어서 일곱 살쯤에는 거의 모든 경전을 따라 외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라마크리슈나 제자들이나 그 밖의 많은 성자들이 우리 집을 다녀갔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성자들이 우리 집을 한번쯤은 다녀갔을 겁니다. 그야말로 성자들을 위해 열려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 이미 저는 그들 모두가 위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믿고 말하는 어떤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삶은 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저의 탐색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명상을 하곤 했습니다.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저는 그 분을 헐뜯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분은 따로 마련된 명상실에서 한두 시간씩 명상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두 살 먹은 아기가 어떤 이유에선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다가와서 그 아기를 마구 때리는 겁니다. 매일 두 시간씩 명상을 하는 그 사람이 말입니다. 아기는 거의 자지러졌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마치 상처처럼 저의 의식 깊숙한 곳에 심어졌습니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 우스꽝스럽다. 그들의 생활은 얄팍하고 공허하다. 그들은 아주 근사하게 말하고, 무슨 일이던지 아름답게 표현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생활까지 스며들지는 못한 것 같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었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부처나 예수, 그 밖의 위대한 스승들이 말한 것이 정말 세상에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모크샤 해탈, 대자유에 대해 말하지만 그런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이런 친구들은 도무지 쓸모가 없고 세상 어딘가에 그 모든 것을 구현한 현자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찾아내고 말겠다."

 

그리고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쉬바난다 사라스와티라는 힌두교 구도승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열 네 살에서 스무 살 사이였죠. 세세한 일은 건너뛰기로 하죠. 여러 가지의 수행을 했고 계율을 지켰습니다. 어렸지만 저는 해탈이라는 것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해탈을 이루고 싶었죠. 다른 사람들처럼 위선적으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많은 것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책에 나와 있는 모든 종류의 체험을 했습니다. 사마디, 슈퍼 사마디, 니르비칼파 사마디,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그리고 저는 우리가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생각이 그 체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것은 해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같은 인간이었으니까요. 그저 기계적인 작용이 일어난 것뿐이죠. 저는 명상이란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섹스가 저에게 커다란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젊은 소년이었으니까요. 그것은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었습니다. 인간의 육체에 깃든 욕망이었죠. 저는 왜 소위 구도자들이 섹스를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억압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섹스도 역시 우주의 한 부분 아닙니까? 다른 것을 얻기 위해서라고요? 하지만 저에게는 성적 욕망이 해탈보다 더욱 생생하고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리얼리티였죠. 저는 신과 여신들에 대해 상상하다가 성적인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성적 욕망은 저의 안에 있는 것이죠. 죄책감이란 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일어날 때는 뜻대로 조정할 수가 없죠. 명상도 학문도, 수행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소금이나 고춧가루나 향신료에 입도 대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쉬바난다가 문을 잠그고 숨어서 망고 피클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기 존재를 온통 부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망고 피클을 먹고 싶다는 욕망을 완전히 조절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도 역시 가련한 위선자였죠. 그 사람을 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 Q ] 열 네 살에서 스물 사이에 커다란 성적 욕망을 느꼈다고 하셨는데, 그때 결혼하신 겁니까?

[ UG ]

아닙니다. 그렇게 서두르지는 않았어요. 저는 성적충동 자체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 전체의 과정을 이해하고 싶었죠. 어째서 자동적으로 성적인 기분에 빠져드는 걸까요? 저는 섹스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섹스에 대한 갖가지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저의 물음이었지요. 저의 명상이었습니다. 물구나무를 서지도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영상들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영화를 본 일도 없었습니다. 포스터나 야한 그림을 본 적도 없었죠. 아무래도 그것들은 바깥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안에 있는 것이었죠. 외부의 세상은 자극적입니다. 자극은 외부로부터 들어오죠.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자극이 있습니다. 안으로부터 나오는 자극. 저에게는 이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저는 외부의 모든 자극을 차단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올라오는 자극은 어떻게 차단해야 할까요?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적인 경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성적인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죠. 이런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섹스를 위해 여자를 찾아다닌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저절로 일들이 벌어지도록 놓아두었습니다. 결혼보다는 보다 금욕적인, 수도승을 꿈꾸었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결혼이야기가 나오자 저는 그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적인 충동을 만족시키는 것이 문제라면 결혼도 나쁠 것 없었죠. 사회란 그래서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왜 굳이 누군가를 찾아가서 섹스를 하겠습니까. 결혼생활에서 섹스란 자연스러운 것일텐데요.

 

 

 

 

[ UG ]

스물 한 살 때 저는 세상의 모든 스승들-부처, 라마크리슈나, 그리고 많은 깨달은 이들이 모두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남들까지 속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그런 스승들이 말하고 묘사하는 그런 상태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저와는, 제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말합니다. "화내지 말라' 그러나 저는 항상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저의 내면은 난폭한 성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거짓입니다. 제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든 것은 다 거짓입니다. 거짓이므로 그것을 따르는 저를 거짓된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저는 거짓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 사람들은 무욕을 이야기하죠.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저에게 욕망은 진실 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들이죠. 그러니, 어디선가 무언지 잘못된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신을 바꿀 생각은 없었습니다. 무욕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저 자신을 거짓된 것으로 만들기는 싫었습니다. 저의 욕망은 저에게는 생생한 현실이었죠. 저는 그런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사람들 틈에서 자랐습니다. 모두가 거짓이었습니다. 실존적 구토라고 할까요. (그때는 물론 이런 용어를 몰랐습니다.)

 

저는 성스럽다는, 신성하다는 모든 것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저의 세계 속에 숨어들어 모든 것을 다 부정했습니다. "슬로카스도, 종교도, 수행도 그만두자. 그런 것들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보다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나는 짐승이고, 괴물이다. 나는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무욕, 비폭력, 그런 것들은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 것은 모두 거짓이다. 거짓일 뿐 아니라 나를 거짓된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모든 일을 끝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는 어떤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는 제가 무신론자이며 모든 일에 회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가 말했습니다. " 마드라스 근처 티루반나말라이에 어떤 사람이 있어. 라마나 마하리쉬라고 하는데, 우리 한번 같이 가보자구. 이 사람이야말로 힌두 전통의 살아 있는 구현이야."

 

저는 어떤 성자도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보면 나머지는 보나마나 한 것 아닙니까. 저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스승의 발치에 앉아 무언가를 배우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두 똑같은 소리만 합니다. "하던 수행을 더 열심히 계속하면 얻을 것이다." 제가 얻은 것은 더 많은 체험들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체험이 지속적으로 필요해졌죠. 하지만 세상에 지속되는 것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성자는 모두 거짓된 거야. 그들은 오직 책에 있는 것만 이야기할 뿐이지. 그거라면 직접 읽는 게 낫지. 수행을 더 열심히 계속하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 체험도 싫어. 그들은 자기의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나는 체험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 나에게 종교적인 체험은 성적인 체험이나 다른 체험과 똑같아. 종교적인 경험이라고 다른 경험들과 다를 것은 없지. 나는 브라만을 경험하거나 실체를 경험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어. 진리를 경험하고 싶지도 않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아. 더 이상 같은 수행을 계속할 생각도 없네. 나는 이미 충분히 했어. 수학문제를 풀려면 계속해서 문제에 매달려야 하지. 결국 풀어내는데, 답이 문제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그 모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첫눈에 답을 찾아내는 것이 더 쉬울 텐데"

 

그렇지만 내키지 않아 하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저는 라마나 마하리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끌고 갔죠. 한번만 가보면 무언가 일어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폴 브런튼의 인도기행이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책에서 마하리쉬와 관계되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찾아가 보기로 했죠. 그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저는 그가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잡지를 읽고, 야채를 다듬고, 이런 저런 것을 가지고 노는 저 사람이 어떻게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거기에 앉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저는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도 저를 바라보았죠. '그의 현존 속에서 그대는 침묵을 느낄 것이다. 그대의 질문은 사라지고 그의 바라봄은 그대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서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죠. 그곳에 앉아 있는 제 안에는 무수히 많은 질문이 오락가락 했습니다. 모두 어리석은 질문이었죠. 두어 시간이 지나도 질문이 사라지지 않자 저는 몇 가지 질문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저는 해탈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죠. 그러나 저는 그에게 해탈했는지를 묻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이 갖고 계신 것을 저에게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죠. 그 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있다가 다시 물었죠.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그것을 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 분이 말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줄 수 있죠. 하지만 당신이 받을 수 있을까요?" 맙소사, 처음으로 이 사람은 무언가 제가 받을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자신이 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자신이 줄 수 있는데 제가 그것을 받을 수 있겠는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것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나라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칠 년간이나 사다나(Sadhana)를 해 왔으니까, 만약 내가 받지 못한다면 누가 받을 수 있겠는가. 그래요 그 때 저의 에고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저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곁에 오래 있지도 않았고, 그의 책을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더 물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때는 자유롭고, 어떤 때는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습니까" 그가 말하길 "자유롭거나 전혀 자유롭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지요." 그밖에도 기억나지 않는 질문들을 했습니다. 그는 색다른 방식으로 대답했습니다. 그곳으로 이르는 계단이란 없다는 이야기도 했죠. 그러나 저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무시했습니다. 질문부터 저와 상관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대답은 저의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던진 한마디. '당신이 그것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건방진가, 그것이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그것을 받을 수 없단 말인가, 그것이 뭐기에, 무얼 가지고 있다고' 저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의문이었죠. 의문은 번져 갔습니다. "붓다나 예수, 그런 사람들은 어떤 경지에 있는 걸까? 마하리쉬도 그런 경지에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나하고 다를 게 없어. 같은 사람이고. 나하고 어떻게 다른 거지? 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말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누구라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어. 무엇이 있는 거지? 나와 아주 다를 수는 없지. 그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그는 세상을 독특한 눈으로 보고 있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하기도 하지만, 나하고는 어떻게 다른 거지? 무엇이 있는 거야? 그 경지는 뭐지?" 이것이 저의 근본적인 질문이 되었습니다. 갈수록 의문은 심해졌죠. 저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그런 경지를 전해 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저마다 자기의 경지 속에서 살아가는 거죠. 저는 이 망망대해에 나침반도, 배도, 널빤지도 없이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 있는 경지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확인해 봐야만 했죠. 그러치 않으면 계속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 Q ] 준다, 받는다 하는 이 이야기를 저는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 UG ]

마하리쉬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대답했는지 제가 말할 수는 없죠. 하지만 그 대답은 저의 의문을 구체화시켜 주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저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다면 저는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여러분 안에 다 갖추어져 있는데요. 우리가 함께 산니디 25번 가에 있을 때 제게 산니디 25번 가가 어디인지를 물으면 무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미 와 있다고 할 수 밖예요. 나는 그곳에 있노라고 대답하지는 않겠죠. 당신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을 뿐이니까요.

(UG는 그 이후로 라마나 마하리쉬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철학시험 공부할 때 말고는 종교적인 책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진정한 구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종교적인 배경은 저의 안에 있었으니까 저는 새로운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했고, 동양과 서양의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신비주의, 현대 과학, 몇 년에 걸쳐 인간이 쌓아 온 지식을 배웠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탐험을 시작한 것이죠. 저의 물음은 '그 경지는 무엇일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물음은 나름의 강렬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의 탐험은 계속되었죠. 그러나 결국 그런 지식들은 저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심리학은 저의 석사학위 전공중의 하나입니다. 그때는 불운하게도 심리학이 교과과정에 들어 있었죠. 제가 심리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소박한 이유에서입니다. 에고라는 것이 저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죠. 에고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양 심리학자들의 글을 읽었죠. 어느 날 저는 교수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에고라는 것에 대해 항상 이야기하는데요. 에고란 것이 어떤 것인지 교수님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계십니까? 프로이드며, 융, 아들러의 책을 읽었고 그들이 내려놓은 정의에 대해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님 스스로가 에고에 대해 무언가 알고 계십니까?" 교수님은 말했습니다. "그런 불편한 질문은 하지 말게. (웃음). 위험한 질문이군. 시험에 통과하고 싶으면 이 글을 받아 적고, 요약해서 답안지에 옮겨 쓰도록 해. 그러면 학위가 나올 꺼야." 저는 학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에고를 찾아내는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외조부가 돌아가시자 그는 학위를 마치지 않고 마드라스 대학을 그만두었다. 1943년 그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신지학회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외할아버지로부터 많은 돈과 함께 신지학회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상속받은 셈이었습니다. 5,6만 달러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돈이었고 저는 이런 저런 일들을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신지학회의 강연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흡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얻은 정보였고, 저는 그것을 전달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꽤 훌륭한 연설자였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만, 당시에는 일류의 연설자였죠. 어디에서나 강연을 했습니다. 많은 대학에서 강연을 했죠. "이것은 진정한 나의 삶이 아니야. 누구나 머리만 있으면 정보를 모아서 사람들에게 떠들어 댈 수 있지. 내가 무얼 하는 거지? 왜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이것이 나의 생계수단인 것도 아니잖아. 생계수단이라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밥벌이를 하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하지만 역시 이 일에는 무언가 나의 흥미를 끄는 점이 있어."

그럴 즈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940년대 말엽이고, UG는 얼마 후 신지학회를 떠난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그의 새로운....

 

[ Q ] 혹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 친척간인가요?

[ UG ]

크리슈나무르티는 성이 아닙니다. 그의 성은 '지두'이죠.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이름은 정말 흔한 이름입니다. 저는 그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전에도 그가 인도에 올 때마다 그의 강연을 들었죠. 그러나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스승'이었고 그것이 거리감을 느끼게 했죠. "세상의 스승이 어떻게 만들어지겠어. 그것은 타고나는 거야." 이런 것이 말하자면 저의 기질이죠. 저는 그곳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중심적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주변에 있었죠. 저는 완전히 빠져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이 공허하다는 점에서 그들도 역시 위선자들이었습니다. 학자며, 마음의 스승들, 그리고 뛰어난 천재들이었지만 피상적이긴 마찬가지였죠. "이게 뭐지? 이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칠 년 정도 그런 식의 만남밖에 가지지 못했는데, 어떻게 일이 되어서 우리는 매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갖가지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죠. 저는 그의 추상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도 흥미가 없었죠.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 당신은 심리학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그 용어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분석을 사용해서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곳까지 다가갔습니다. 이런 식의 분석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뿐입니다. 저도 무력한 기분이 듭니다." 저는 제 안에 있던 의문도 털어놓았습니다. "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겁니까? 당신은 저에게 추상적인 개념을 늘어놓습니다.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추상적인 개념 뒤에 무언가가 있는 겁니까? 도대체 그건 어떤 거죠?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제 느낌으로는 당신이 말하는 추상적인 개념 뒤에 있는 어떤 것이 바로 제가 관심 있어 하는 그것인 것 같습니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저의 희망일수도 있겠죠. 하지만 낡은 비유를 든다면, 당신은 설탕을 맛보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설탕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는 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당신이 설탕을 보기는 한 것 같단 말입니다. 맛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우리는 몇 해를 다투었죠. (사람들 웃음) 우리는 개인적으로 분명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하고 정직한 대답을 듣고 싶어했죠. 그러나 그는 그러한 대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우 방어적인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지키고 있죠. "무얼 그리 지키십니까? 과거는 나무에 걸어 버리고 사람들에게 맡겨 버리세요. 왜 그렇게 자신을 방어하려고 합니까?" 저는 그가 숨기고 있는 것을 솔직히 말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리고 그와의 관계는 끝나 갔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렇게 말했죠. " 당신이 줄곧 말하는 그 추상적인 개념 뒤에 무언가가 있기는 있는 건가요?"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으로서는 결코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습니다. 제가 결코 알 수 없다면, 그도 결코 전달할 수 없겠죠.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한 겁니까? 칠 년 동안 저는 헛고생만 한 셈이었습니다. 저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를 떠났습니다.(같은 시기에 UG는 어떤 종류의 능력을 얻는다.)

 

마흔 아홉이 되기 전에 저에게는 여러 가지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갖가지의 체험도 했죠. 그런 힘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어요. 저는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일생의 일들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 의아해 하긴 했지만 그런 능력을 이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 메카니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능력을 얻기 위해 애쓴 적도 없었죠. 제가 예언한 일이 그대로 벌어지는 것은 불쾌한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을 주기도 했죠.

 

(UG는 강의를 계속하면서 전세계를 여행했다. 1955년 그와 그의 아내는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큰아들의 소아마비를 치료할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1961년 그의 재산은 바닥이 났다. 그리고 그는 내면으로부터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에너지의 상승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는 이후 육 년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들어섰다. 그는 이 일을 '재난'이라고 부른다- 그의 결혼은 끝이 났다. 그는 가족들을 인도행 비행기에 태우고 자신은 런던으로 떠났다. 그는 한푼도 없이 런던에 도착해서 방랑자처럼 살았다. 삼 년간 그는 길거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내리막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그 당시의 생활은 그에게 더없이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후에 종교적인 사람들은 그의 이 시기를 신비가의 말을 빌려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유혹과 속세에 대한 영웅적인 저항도, 욕망과의 힘 겨루기도 없었고 그저 의지를 거두어 들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마치 머리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죠. 머리가 있기는 한 건지,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지, 그런 것이 의문이었습니다. 머리는 사라지고 그 부분만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죠. 아무 것도 할 의지가 없었습니다. 마치 여기저기 나뒹구는 낙엽 같았죠. 가짜들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저는 룸펜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자선에 기대어 살아가면서 아무런 계획도 없었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관심이 없었죠. 사실, 저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런던에 있었습니다. 길거리를 헤매 다녔죠. 집도 없어서 밤새 거리를 걸었습니다. 경찰이 저를 붙들고는 했죠. 집이 없으면 부랑자숙소에 집어넣겠다고 위협하곤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낮에는 대영 박물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표를 살 돈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때 저는 아무 것도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읽는 척 하면서 앉아 있었죠. 속어사전은 가끔씩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층민들의 속어, 범죄자들의 속어, 모든 종류의 속어들이 있었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에는 길거리를 헤매 다녔습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죠.

 

어느 날 저는 하이드 파크에 앉아 있었습니다. 경찰이 와서 내쫓더군요. 갈 데가 없었습니다. 할 일도 없었고요. 돈도 없었습니다. 아마 5펜스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마크리슈나 선교센타로 가자'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한 토막 -제 무의식의 소리였는지도 모르죠. 저는 갈 데가 없었고 경찰은 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있는 돈으로 갈 수 있는 만큼 지하철로 가고 그 다음에는 걸어서, 라마크리슈나 선교센타로 갔습니다. 제가 스와미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이미 밤 열 시였으니까요. 저는 그들에게 꼭 스와미를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스와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스크랩북을 내밀었습니다. 저와 저의 강연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들어 있었죠. 미국에서 매니저가 만들어 주었던 것이었죠. 제가 말했습니다. " 이것이 저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의 모습은 이렇고요." 그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저 명상실에 가서 밤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죠.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규칙에 어긋났습니다. 여덟 시 이후에는 아무도 명상실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규칙이었죠. 결국 그들은 제게 호텔 방을 잡아 주었습니다. 다음날, 정오쯤에 선교센타로 가서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맛본 식사다운 식사였습니다. 저는 입맛을 잃고 있었죠. 배고픔도 목마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스와미는 저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해요. 편집을 돕던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말이죠. 결국 병원에 입원했어요. 비베카난다 전집을 내기 위해 사람이 필요해요.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소" 저는 그 당시 무엇을 쓸 수도 편집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말하고 그런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같이 일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인도 철학과 신지학 방면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는 제가 휴식을 취하고 그곳에 머무르며 그의 일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방만 있으면 접시닦이 같은 허드렛일을 도우며 지내고 싶었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일을 도왔습니다. 저의 만족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그의 만족을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는 다른 스와미들과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급료를 주었습니다. 5파운드였죠. 오래간만에 그런 큰돈을 만져 본 거죠. 저는 돈의 가치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무엇을 하여야 좋을 지 알 수 없었어요. 물론 전에는 십만 루피의 수표를 끊던 생활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얼마 후에는 일 파이사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5파운드가 있는 겁니다. 무엇을 할까 한참 궁리하다 저는 영화를 보러 다니기로 했습니다. 아침나절에는 선교센타에서 일을 하고 한시에 점심을 먹고 나서 극장으로 갔습니다. 나중에는 볼 영화가 하나도 남지 않더군요. 변두리 극장에서는 일 실링에 세 편의 영화를 동시상영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영화에 질리게 되었고 돈을 다 썼습니다.

 

저는 명상실에 앉아서 명상을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왜 이런 것을 하고들 있을까 의아해 하면서 말이죠. 그곳에서 매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저의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명상실에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안스러웠습니다. "저 사람들은 왜 명상을 하려 드는 걸까? 사마디에 들고 싶어서? 하지만 사마디에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데. 내가 지나온 길인데. 저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어. 저렇게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내가 도울 수 없나? 저런 명상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데." 그 때 저는 무언가 낯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의 몸 안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죠. 그 에너지는 성기로부터 올라와 머리 꼭대기로 뻗쳤습니다. 마치 내부에 통로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 에너지는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돌더니, 다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았습니다. 마치 공항에 있는 윌스 담배의 광고판 같았죠.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끝난 사람이었으니까요. 사람들에게 얹혀 살며 내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없는 생활이었죠. 속으로는 저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려는 최소한의 욕구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로서도 어쩔 수 없었죠. 그런 식으로 그냥 지냈습니다. 석 달 정도 지내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제가 떠난다고 하자 스와미는 저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사 오십 파운드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파리로 갔습니다.

 

저에게는 인도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가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파리로 가서 표를 팔아 돈을 마련했습니다. 삼십 오 파운드와 합해서 한 백 오십 파운드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삼 개월 동안 저는 호텔에서 지냈습니다. 런던에서 하던 대로 길거리를 헤매 다녔죠.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달랐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돈은 떨어져 갔습니다. 삼 개월이 지나자 저는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로 돌아가는 것은 싫었죠. 가족과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복잡한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죠. 정말 인도로 가기는 싫었습니다. 겁이 났죠. 그래서 저는 스위스에 저의 계좌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어쩌면 돈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 길이 저의 마지막 탈출구였습니다. 저는 취리히로 가서 돈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리용 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파리에서 취리히로 가는 기차는 레 역에만 있었죠. 왜 제가 리용 역으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리용 역에 도착한 저는 제네바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가 제네바에 도착했을 때 저의 수중에는 백 오십 프랑 정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계산을 할 돈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호텔에서 지냈습니다. 두 주일이 지나 그들은 제게 계산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에게는 돈이 없었죠. 남은 길은 인도 영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인도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끝이 나는 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영사관을 찾아가 전의 그 스크랩북을 보여 주었습니다. 스크랩북에는 노만 커신과 라다크리슈난 교수가 저에 대해 이야기한 기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인도가 낳은 가장 명쾌한 강연자' 라고 되어 있었죠. 그러나 부영사는 정부의 돈으로 저를 귀국시키는 데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제가 그곳에 머무르며 인도에 연락해서 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죠. 저는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여기 앉아 있는 이 스위스 여인(발렌타인 드 커빈)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인도 영사관에 통역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안내 보는 사람이 결근을 했는지 안내 창구에 앉아 있었죠.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곧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만약 제가 원한다면 스위스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한달 후 저는 영사관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살집을 마련했죠. 그녀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부유하지도 않았고, 그저 적은 연금뿐이었지만 우리는 그 돈으로 생활해 갈 수 있었습니다.

 

사아넨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장소는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53년도에 그 근방을 여행하다가 그곳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었죠. 그냥 그곳을 보자 기차에서 내려 잠깐이라도 지내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일주일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곳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때 저에게는 많은 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아내는 스위스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기후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으로 떠났죠. 그 때 채워지지 못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겁니다. 우리는 사아넨으로 갔습니다. 제가 꿈꿔 왔던 곳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얼마 후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여름의 회합장소로 사아넨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나타났죠. 저는 그곳에 살고 있었지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다른 것에도 관심이 없었죠. 발렌타인은 제가 마흔 아홉이 되기 전에 몇 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진리나 실체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그녀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요. 제게 무엇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은 이미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현상은 계속 일어났죠.

 

그 시기에 (저는 이 시기를 '부화의 단계'라고 부릅니다.) 온갖 종류의 일들이 제게 벌어졌습니다. 두통이 있었죠. 끊임없이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뇌 속에서 끔찍한 통증이 계속 되었죠. 얼마나 많은 아스피린을 삼켰는지 모릅니다.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죠. 편두통이나 뭐 그런 알려진 두통이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끔찍하게 아팠습니다. 아스피린과 스무 잔 가까운 커피를 들이켰어요. 어느 날 발렌타인이 불평하더군요. 하루에 스무 잔씩이나 커피를 마시면 한 달에 삼 사 백 프랑이 더 든다고요. 어쨌든 두통은 제게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들도 있었죠. 몸을 문지르면 불꽃이 일곤 했습니다. 인에서 나오는 빛과 같은 것이었죠. 발렌타인이 무슨 일인가 싶어 침실에서 나오곤 했어요. 그녀는 밖에 차가 지나가는 줄 알았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침대에 들면 여기저기 빛이 번뜩이곤 했습니다. 그건 꽤 재미있었어요. 전기적인 빛이었습니다. 제가 전기-자기장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것이 제가 입은 옷에서 나오는 정전기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나일론 옷을 입지 않았죠. 저는 그런 일에 회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믿지 않았죠. 제 앞에서 기적이 일어나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저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었습니다.

 

매우 이상한 일들이 저에게 벌어졌지만 저는 그런 일을 해탈과 연관짓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해탈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붓다가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까지 속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스승과 구세주는 스스로를 속이는 바보녀석들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죠. 그러니 그런 것은 이미 저의 삶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해탈에 가까워 졌다는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거기에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없습니다. 준비되어 있어서 아주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란 없습니다. 거기에 준비란 있을 수 없죠. 그저 그것이 몇 톤의 무게로 부딪혀 올뿐입니다.

 

[UG ]

67년 4월에 저는 우연찮게 파리에 있었고 마침 그곳에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옛친구의 강연을 들으러 가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래, 그의 이야기를 들은 지도 한참 되었지. 한 이십 년? 좋다. 가 보자." 하고 그곳에 갔습니다. 문 앞에서 2프랑을 내라고 하더군요. "크리슈나무르티의 이야기를 듣는데 2프랑을 내야 한다고? 그만두자. 그만두고 다른 바보짓을 하자. '카지노 드 파리' 같은 데서 쇼나 보자. 20프랑이 들더라도 그게 낫다" 그리고 그날 정말로 '카지노 드 파리'에 가서 쇼를 보았죠. 그때 저는 매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저인지, 댄서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면에서 무언가 특이한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움직임은 지금의 저에게는 아주 정상적인 것입니다.) 아무런 분리도 없었습니다. 댄서를 바라보는 '나'라는 것이 아예 사라졌죠. 이렇게 분별이 없어지는 기이한 경험은 한동안 저를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제가 이전에 매달렸던 의문이 다시 강렬하게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런 경지는 무엇인가?' 제가 그 답을 찾으려 애쓸수록 답은 멀어져 갔고 의문은 깊어졌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의문이었습니다. 마치 쌀겨 더미에 불을 붙이면 안으로 타 들어가듯이, 불꽃은 보이지 않지만 손을 대면 곧 데고 마는 그런 의문의 불꽃이 제 안에서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지는 무엇인가. 그런 경지에 다다르고 싶다. 끝내고 싶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내가 그런 상태에 대해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알고 싶다. 부처의 경지, 상카라의 경지, 많은 스승들의 경지.'

 

1967년 7월이었습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사아넨에서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친구들이 또 다시 저를 끌었습니다. 이번에는 최소한 무료였죠. 저는 또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의 강연을 듣고 있자니 정말 이상했습니다. 마치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경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경지를 알아서 무얼 하겠습니까. 그는 어떤 움직임, 깨어 있음,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는 더 이상 에고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활동성이 존재합니다" 제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바로 그 경지에 있는 거야. 도대체 삼 사십 년 동안 무얼 한 거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 저 사람의 경지를 알고 싶어하고 갈등하고]. 붓다? 예수? 바로 내가 그 경지에 있어. 이제 나는 그 경지에 있어" 그리고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막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그 경지가 무엇일까'에서 '내가 어떻게 그 경지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부처의 경지. 내가 그토록 원하고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그 경지. 나는 그 경지에 있다. 하지만 어떻게 알게 된 걸까?"

 

다음날, (UG의 마흔 아홉 번째 생일날이다) 저는 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사아넨에 있는 일곱 언덕과 일곱 골짜기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죠. 질문은 없었습니다.

저의 온 존재가 그 질문이었죠. "어떻게 그 경지라는 것을 알았을까?" 제 안의 한 부분은 제가 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경지에 대한 지식- 제가 읽고, 체험하고, 사람들이 말한 것- 그 경지를 보고 있는 것은 이 지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경지를 투영해 낸 것도 이 지식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한심한 녀석, 사십 년이 지났어도 한 걸음도 옮기지 못했구나. 출발점 그대로야.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가졌던 지식이 그대로 투영된 거야. 그냥 같은 질문은 계속 던지고 있어. 내가 그 경지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 경지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지식이 만든 경지야.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어. 정말 바보야" 그러나 제가 그 경지에 있다는 느낌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두 번째 질문, "내가 그 경지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했습니다. 마치 소용돌이 속에 던지는 물음 같았죠. 그러다가 그 질문은 문득 사라졌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하, 이런 거구나 하는 식이 아니라 그저 질문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심지어는 그 경지마저 사라져 버렸죠.

 

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 부처와 예수의 경지, 그 경지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질문도 사라지고 모든 일은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그 모든 해답을 다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경지구나, 했던 그 경지가 사라졌죠. 질문도 사라졌습니다. 끝이 난 겁니다. 텅 빈 것도 無도 空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문득 질문이 사라졌죠. 그게 다입니다. (근본적인 질문이 사라지고, 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생리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UG는 모든 세포와 신경, 그리고 내분비선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폭발과 더불어 생각의 연속체로서의 '나', 생각들이 연계되는 중심으로서의 '나'라는 것이 실재하고 있다는 환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생각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생각 사이의 연계가 무너졌습니다. 한번 무너지자 연계는 끝이 났습니다.

 

하나 하나의 생각이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한번의 폭발로 모든 생각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떠올랐고,떠오른 생각은 폭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생각의 연계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생각은 그저 자연스러운 리듬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에게는 어떤 종류의 의문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의문이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의문은 물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더아바드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와 같은 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런 질문에는 사람들이 대답을 아주 잘 해줍니다. 제가 전에 지녔던 의문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의문들, 그런 의문들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꽉 조여졌습니다. 두뇌에는 공간이 없었죠. 저는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바짝 조여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인상들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이 내용물은 이따금씩 자기의 자리를 되찾으려고 시도했죠. 그러나 두뇌의 세포가 이미 조여져 있어서 망상을 일으킬 수 있는 틈이 없었습니다. 아무런 분별도 있을 수가 없었죠. 생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분별을 없애려고 노력한 것이 아닙니다. 이 폭발이 일어난 후에는 (핵폭발처럼 들리죠) 연쇄반응이 일어납니다. 몸 안의 모든 세포, 뼛속의 모든 세포가 다 같이 이 변화를 겪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변화입니다. 되돌릴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일종의 화학반응처럼 이미 변형되어 버린 거죠.

 

어쩌면 핵폭발과도 같은 것입니다. 몸 전체를 뒤흔들죠. 편안하게 치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 개인에게는 그야말로 종말입니다. 모든 세포, 신경세포 하나 하나마다 폭발이 일어납니다. 저는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런 폭발은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의 대상이 아니죠. 그것은 폭발의 후속작용으로 일어납니다. 낙진 같은 것이죠. 우리 육체의 모든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켜 버립니다.

 

 

 

[ Q ] 높은 단계를 체험하셨는데....

[ UG ]

단계라고요? 단계란 없습니다. 차원도 없고요. 이 '폭발'로 인해 생기는 결과가 있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과 다르다는 생각이 든 적은 결코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다르다거나 여러분이 저와 다르다는 생각을 가져 본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초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없기 때문이죠. 이 중심과의 연관성 속에서 다른 모든 초점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니까요.

 

[ Q ] 어떤 식으로든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까?

[ UG ] 생리적인 면에서라면 아마 다를 겁니다.

 

[ Q ] 엄청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아시는 거죠? 검사를 받아 보신 건가요? 아니면 논리적 결론인가요?

[ UG ]

폭발의 후속효과로 감각은 보조기재나 중심 없이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화학적 변화가 없다면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생각의 연속체에서 자유로워지면 무언가 변화한 것은 틀림없죠. 그러나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것은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어떤 것이죠.

 

[ Q ] 마음이 농간을 부려서 '나는 폭발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닌가요?

[ UG ]

저는 아무 것도 권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흉내내는 것은 불가능하죠. 이것은 제가 변화를 기대했던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변화라고 하지 않는 겁니다. 저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제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있죠. 여러분이 움직이는 방식과 제가 움직이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죠. 어떻게 여러분과 저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약간의

다른 점이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그 부분을 알고 싶습니다. 이런 것이 제가 움직이는 방식이죠.

 

(UG는 폭발이 일어나고 일주일동안 그의 감각기능이 뿌리부터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칠 일째 되는 날에 그의 육체는 물리적인 죽음의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 UG ]

변화가 시작되었죠.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날마다 한가지씩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피부가 부드러워졌고, 눈의 깜빡임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미각, 후각, 청각에 변화가 일어났죠. 이런 다섯 가지 변화는 아마 그전부터 있었을 겁니다. 처음 알아챈 거죠.

 

(첫날) 저는 피부가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면도를 하는데 면도날이 자꾸 미끄러졌습니다. 날을 바꾸어도 소용이 없었죠. 얼굴을 만졌는데 감촉이 달랐습니다. 면도기를 잡은 느낌도 달랐어요. 피부는 그야말로 비단결처럼 부드러웠습니다. 황금빛의 광채를 띄고 있었죠. 저는 그런 변화를 어떤 것과도 연관짓지 않고 그저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제가 '풀린 상태'라고 이름붙인 상태를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발렌타인이 토마토 수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알 수가 없더군요. 토마토 수프라는 대답을 듣고, 맛을 보았습니다. 토마토 수프의 맛이 이런 거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죠. 저는 수프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심 상태가 되었습니다. 무심 상태라고 해야 되나요.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또 물어 보았죠. 토마토 수프라는 대답을 듣고 다시 맛을 보았습니다. 삼키면서 또 잊었죠. 그런 것을 놀이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재미있더군요. 그런데 이제는 거의 항상 '풀린 상태로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몽상에 빠지거나, 걱정을 하거나,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저의 마음은 그것이 필요할 때만 움직입니다. 누군가 질문을 던지거나, 아니면 녹음기를 고치거나, 그런 때에만 마음이 사용됩니다. 나머지 시간에 저의 마음은 '풀린 상태'로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잃었던 기억들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기억은 저 멀리 뒤에 남아 있다가 필요할 때 자동적으로 돌아옵니다. 필요 없을 때에는 마음도 생각도 없습니다. 오로지 생명만이 존재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 몇 명의 친구들이 저녁을 먹으러 찾아왔습니다. 저는 저녁을 차려 주려고 요리를 시작했죠. 그러나 맛도 냄새도 잘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의 감각이 변형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어떤 냄새든지 콧구멍으로 들어와서 후각신경을 같은 방식으로 자극하는 겁니다. 최고급 향수도 소똥의 냄새도 같은 자극으로만 느껴졌습니다. 무슨 맛을 보아도 저는 그 주요재료의 맛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재료의 맛은 미미하게 남을 뿐이었죠. 그때부터 저에게는 향수나 맛있는 음식이 아무 의미도 없어졌습니다. 가장 강한 한가지 맛만 느꼈으니까요. 고춧가루라던지, 뭐 그런 것이죠.

 

(나흘째) 저의 눈에 무슨 일인가 생겼습니다. '리알토'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가 바뀌었습니다. 마치 오목거울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죠.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제 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바깥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눈이라는 거대한 카메라가 자기 혼자 초점을 바꾼 것 같았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저는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면 저의 눈은 영화 카메라처럼 맞은편에서 오는 차는 저에게로 오는 것으로 보고, 지나가는 차는 저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으로 봅니다. 무언가를 고칠 때는 마치 고정된 카메라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죠. 그날 저는 식당에서 돌아와 눈에 이상이 있나 싶어서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눈을 깜빡이지 않더군요. 삼 사십 분쯤 들여다보았지만 한번도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본능적인 눈의 깜빡임이 멎은 겁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닷새째) 저는 청각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제 안에서 나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소의 울음소리도 기차소리도 모두 제 안에서 나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모든 소리가 그렇습니다. 밖에서 나는 소리 같지 않습니다.

 

닷새동안 다섯 가지의 감각이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엿새째 되는 날 저는 소파에 누워 있었습니다. 발렌타인은 부엌에 있었죠. 갑자기 저의 몸이 사라졌습니다. 몸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제 손을 보았습니다. 미친 짓이죠.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 일입니다. 이게 내 손일까? 말할 나위가 없죠. 그러나 그랬습니다. 설명은 안되지만요. 저는 몸을 만졌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만진다는 촉감, 무엇이 닿았다는 느낌은 있었죠. 저는 발렌타인을 불렀습니다. "여기 소파 위에 내 몸이 보여? 나라는 감각이 없어졌어." 그녀는 만져 보더니 말했습니다. "이건 당신 몸이에요." 그러나 그녀의 보증에도 저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몸이 사라졌어." 저의 몸은 그때 사라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닿는다는 느낌만 있죠. 저는 제 몸에 대한 완전한 이미지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레째 되는 날도 저는 같은 소파에서 누워 '풀린 상태'를 즐기며 쉬고 있었습니다. 발렌타인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발렌타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발렌타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감각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내면의 고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몸의 생명 에너지가 한곳으로 모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죽음의 징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발렌타인에게 유언을 남겼죠. 시체는 병원에 기증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외국인의 시체는 법률상 기증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고 나가더군요. 그리고 생명 에너지가 한곳으로 모이는 겁나는 움직임이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소파에 누워 있다가 발렌타인의 비어 있는 침대로 옮겨갔습니다. 편안하게 누워서 기다렸죠. 발렌타인은 저를 힐끗 보더니"매일 이게 변했다 저게 변했다 하더니 이제는 죽는다고요? 안 죽어요. 아주 건강해 보여요." 말하고 나갔습니다. 그녀는 그런 일에 정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도 않았죠. 생명 에너지는 계속 한곳으로 향했습니다. 어디로 향한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더니 마치 카메라의 조리개가 저절로 닫히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비유 말고는 생각해 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과 확실히 다릅니다. 그때는 언어로 사고하는 주체가 없었으니까요. 경험하지 않았다면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리개는 닫히려고 하고, 또 한편에서는 계속 열어 두려고 하는 어떤 힘이 있었죠. 조금 지나자 힘이 빠지고 조리개는 탁 닫혀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저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가 49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죽음의 과정이었죠. 물리적으로 그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런 죽음을 경험합니다. 손과 발이 차가워지고 몸이 굳죠. 심장의 박동과 호흡이 아주 느려집니다. 그리고 호흡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호흡을 할 때까지 제가 있죠. 그러나 숨이 멎으면 저도 사라집니다. 그후에 어떻게 되는 지는 아무도 모르죠.

 

제가 깨어나자 저에게 전화가 걸려 왔더군요. 저는 아래층에 내려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멍한 상태였죠.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무엇이 저를 죽음에서 도로 끌어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계속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경험하는 사람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경험한 '나'는 없습니다. 그렇게 끝이 났죠. 저는 일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나 갓난아기 같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깨달음이란 생각도 전혀 없었죠. 그러나 일주일동안 저를 놀라게 한 감각의 변화는 더욱 확고한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재난'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이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황홀하고, 사랑과 축복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재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의 육체적인 고통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에게는 재난이죠. 저에게는 재난이 아니었습니다. 뉴욕을 꿈꿔 온 사람이 뉴욕에 막상 가보면 혼자 상상했던 환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죠. 그야말로 신이 버린 땅 아닙니까. 아마 악마들도 거들떠보려 들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꿈꾸고 찾아 헤매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르죠. 여러분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걸맞는 이미지는 없습니다. 저는 결코 제가 해탈했다거나 깨달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해방시키겠다고 말하지도 않죠. 무엇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해방을 시키죠? 그러기 위해서는 제 안에 저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관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여드레째 되는 날, 저는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불현듯 엄청난 에너지의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엄청난 에너지가 온몸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몸의 흔들림에 따라 소파도, 집도, 우주까지 흔들렸습니다. 그런 것 같았죠. 몸이 흔들리고 떨렸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외부에서 온 것인지 내면에서 온 것인지 아래에서 왔는지, 위에서 왔는지 모릅니다. 어디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온통 그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었죠.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습니다. 견디기 힘들었지만 멈출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죠. 며칠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간질발작 같은 떨림이 며칠이나 계속된 겁니다.

 

(UG는 사흘을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는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그는 마치 온몸의 세포가 차례대로 하나씩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후 육개월간 그가 누워서 쉬고 있을 때 비슷한 에너지의 폭발이 몇번 더 일어났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정말 아픕니다. 그 고통은 육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육체는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에너지도 아닌, 범람하는 강물 같은 에너지가 쏟아져 들어오면... 에너지는 육체의 한계에 대해 고려하지 않습니다. 관심을 갖지 않죠. 에너지에는 자신의 운동양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생깁니다. 황홀감이나 환상적인 아름다움, 그런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그 일이 있은 후에 몇 달을 앓았는지 모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같은 분도 그 일을 겪고 몹시 앓았습니다.

 

거대한 폭포, 수천 개의 폭포가 몇 달 동안 몸 위에 쏟아졌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아픕니다. 에너지는 남의 사정을 봐주는 일이 없죠. 자기 식으로 움직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공항에 있는 윌스 담배 광고판을 본 일이 있을 겁니다. 시계방향으로 움직였다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또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합니다. 몸 속에서 에너지가 그렇게 움직여 댑니다. 몸의 한 부분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온몸 전체에서요. 마치 온몸을 빨래 짜듯이 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픕니다. 고통은 아직도 남아 있죠. 여러분은 이것이 오길 바래서는 안됩니다. 바라지 마세요.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이것이 여러분을 포위하고 급습할 겁니다.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어떻게 오는 거죠?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죠. 자리에 누워 있는데 문득 이것이 시작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개미가 기어오르듯 서서히 시작하죠. 저도 처음에는 벌레가 기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벌떡 일어나서 보니 아무 것도 없었죠. 그러더니 이번에는 머리칼이 쭈뼛 서고, 그렇게 시작되었죠.

 

온몸이 아팠습니다. 생각은 더 이상 육체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완전한 탈바꿈이 시작되었죠. 모든 것이 저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손의 동작이 달라졌습니다. 보통 손을 이렇게 움직이는데 여기 이 손목의 관절이 말할 수 없이 아팠습니다. 육 개월이 지나 스스로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아픔이 멎더군요. 모든 것이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손동작이 무드라라고 말하더군요. 사실 지금의 손동작은 이전과 아주 다릅니다. 그리고 골수에 통증이 왔습니다. 모든 세포가 변화를 시작했죠. 육 개월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성호르몬에 변화가 왔습니다. 저는 스스로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왼쪽에는 가슴이 생겼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죠.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군요. 몸이 새로운 리듬에 완전히 맞추어지기 까지 삼 년이 걸렸습니다.

 

[ Q ] 그 일이 어떻게 당신에게 일어났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 UG ] 모릅니다.

 

[ Q ] 그러면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UG ]

어느 날, 저의 마흔 아홉 번째 생일날, 무엇인가가 멈추었습니다. 그 다음날 감각이 변했고 또 다음날은 다른 감각이 변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 모든 일들을 세세하게 설명해 놓은 두꺼운 전집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가치가 있겠습니까? 아무 가치도 없죠. 다른 한편으로 그런 기록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그런 일을 흉내내려고 들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흉내를 내고 자기에게 무언가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저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기록을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흉내를 낼뿐이죠. 이런 상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UG의 몸에 혹이 생겼다. 차크라가 있다고 말하는 자리였다. 혹은 여러 가지 색깔을 띄었고 모양도 갖가지였다. 아랫배에 생긴 혹은 잎담배를 옆으로 누인 것처럼 생겼고, 배꼽 위에 있는 것은 단단했고 아몬드 모양이었다. 가슴 중앙에는 커다란 메달 같은 혹이 있었다. 단단하고 푸른색이었다. 목 아래쪽에 있는 혹은 붉은기가 도는 갈색의 메달 모양이었다. 목둘레로 푸른색과 갈색, 옅은 노란색의 무늬가 생겨서 마치 힌두의 신처럼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혹과 인도의 종교화는 그밖에도 유사점이 있었다. 그의 목은 묘하게 부풀어올라 마치 시바신처럼 턱을 뱀의 머리에 얹고 있는 것 같았다. 코 위에는 흰 연꽃모양의 혹이 났다. 머리의 모세혈관이 모두 팽창해서 불상에서 보는 부처의 머리 같았다. 머리에는 모세나 도가의 그림처럼 두 개의 크고 단단한 혹이 생겼다가 없어지곤 했다. 목의 동맥은 팽창해서 푸른 뱀이 그의 머리로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인도의 상징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뱀도 그렇습니다. 이 혹을 보세요. 코브라같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어제는 초승달이었죠. 몸은 주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세상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죠.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몸에서도 일어납니다. 물리적인 반응을 일으키죠.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몸은 주위의 모든 일에 영향을 받습니다. 자기의 주위에 갑옷을 둘러치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갑옷이 벗겨지면 일어나는 모든 일에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달의 주기에 따라 이 혹들은 코브라의 모양을 띠게 됩니다. 아마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시바신이나 그런 상징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왜 하필이면 코브라의 모습일까요. 저는 이 혹에 대해 의사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는 못했죠. 임파선이 들어 있는 지도 모릅니다.

 

내분비선 전문의와 상담해 보기도 했습니다. 내분비선이 바로 차크라입니다. 내분비선은 차크라가 있다고 하는 같은 곳에 있습니다. 가슴샘이라는 내분비선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매우 활발한 작용을 하다가 사춘기가 되면 활동을 멈추죠. 이것은 과학자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태어나면 이 가슴샘은 자동적으로 활성화되겠죠. 이 가슴샘은 느낌을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가슴샘이 다시 활성화되면 느낌들이 되살아나죠. 느낌은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정서와도 다르죠. 우리는 다른 사람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이 아파하면 우리는 그 아픔을 느낍니다. 실제의 아픔은 아니죠. 느낌을 갖는 겁니다. 다치는 장면을 보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신음을 냅니다.

 

제가 커피 농장에서 지낼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자식을 때리고 있었죠. 아주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죠. 아주 심하게 패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거의 기절할 듯이 보였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계속 거기에 있었으니까요.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누구를 불쌍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지? 애 엄마? 아니면 아이?" 그것이 저의 대답이었죠.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둘 다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애 엄마는 자신의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무력했습니다. 일이 벌어졌고 벌어진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저도 그 일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이란 개인의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이런 것이 영향이란 말의 뜻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심판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이 벌어졌다면 우리도 그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벌어지는 모든 현상에 영향을 받습니다.

 

[ Q ]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영향을 받나요?

[ UG ]

그건 너무 광범위하군요. 우리 의식의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영향을 받습니다. 의식은 물론 한계가 없죠. 만일 어떤 사람이 먼 곳에서 다쳤다고 해도 우리는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다치면 다른 곳에서도 영향을 받죠. 우주, 전 우주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의식의 영향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 시기에 의식이 미치는 영향권이죠. 그것에 반응하게 되는 겁니다. 일부러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고요.

 

다른 내분비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많은 내분비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뇌하수체는 제 삼의 눈이라고도 하는 아즈나 차크라와 같은 것입니다. 생각의 간섭이 멎으면 뇌하수체가 그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 분비선은 육체에 안내역할도 하고 명령도 내리죠. 생각은 더 이상 끼여들 여지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아즈나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야기를 복잡하게 끌고 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생각으로 방패를 만듭니다. 그리고 세상의 영향을 받도록 놓아두지 않죠. (아즈나는 '명령'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생각을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각은 스스로를 태웁니다. 생각은 연소하여 이온화됩니다. 제가 과학용어를 사용해도 된다면 말이죠. 생각이란 결국 진동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의 이온화가 자리잡으면 생각은 물러 나앉죠. 재 같은 물질로 변해서 온몸을 덮을 때도 있습니다. 생각을 이용하지 않을 때 생각은 무얼 하겠습니까? 스스로를 태웁니다. 연소작용을 일으키죠. 에너지가 나오고 몸이 더워집니다. 그 결과로 몸에서 엄청난 열이 나오고 얼굴이며, 발이며 온통 이 재 같은 물질로 덮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과정을 단순하게 물리적이고 생리적인 용어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신비적인 영역이 아니죠. 종교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은 많은 사람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일억 명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일억 명중의 한사람이 되는 겁니다. 특별하게 준비를 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필수적인 정화의 과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는 데 사다나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어떤 종류의 준비과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식은 너무나 깨끗해서 우리가 의식을 정화시키려고 하는 모든 일은 의식을 더럽힐 뿐입니다.

 

의식은 스스로 왈칵 쏟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성스러움이니 속됨이니 하는 흔적이 말끔히 씻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명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의식에는 그저 똑같은 오염물질일 뿐입니다. 그러나 씻어 내야겠다고 마음먹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의 의지나 노력을 통하지 않고 경계가 무너져 내리면 수문은 열리고 모든 것은 쏟아져 내립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환상을 만납니다. 이 환상은 바깥에서 오는 것도 안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혹은 우주의식이, 누군가의 몸을 빌어 나타나는 것이죠. 붓다, 예수, 마하비라, 마호멧, 소크라테스. 이 상태를 겪었던 사람의 모습을 빌립니다. 위인이나 지도자의 모습으로 오지는 않습니다. 이 일이 일어났던 사람의 모습만 나타나죠.

 

저에게 나타났던 모습들 중에는 흑인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사람들에게 그의 생김새를 말하기도 했죠. 머리를 휘날리던 나체의 여인도 있었습니다. 인도에 두 명의 성자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카마하데비와 랄레스와리. 두 명 다 여성입니다. 나체의 여인이죠. 그들과 함께 저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가슴도 생기고 머릿결도 날리고, 심지어는 성기도 변화했죠.

 

그러나 여전히 분별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과, 의식이 상정한 형태 사이의 분별이죠. '내가 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묻던 저의 상황이 그런 것이었죠. 그러나 그 분별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곧 사라지고 다른 것이 일어나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아마 이 일은 수백 명의 사람에게 일어났을 겁니다. 그야말로 역사입니다. 수많은 리쉬-들, 서양인, 승려, 많은 여인들. 아시겠습니까? 우리 이전에 경험한 모든 사람이 우리 의식의 한 부분이 된 것입니다. 저는 '성자들의 행진'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의식 바깥으로 물러납니다.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들도 이제 의식의 오염물질이니까요.

 

그럴 수도 있죠. 그들이 우리를 어느 지점까지 밀어 올리고 목적이 이루어졌으니 떠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좋은 것, 싫은 것, 성스러운 것, 속된 것, 고상한 것, 비속한 것, 그런 모든 것들이 의식에서 쏟아져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식은 여전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때가 묻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 수천 가지의 오염물질이 빠져나갑니다. 우리는 의식의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갑니다. 한번 의식이 순수해지면 아무 것도 의식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이제 의식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그곳에 오기까지 지나온 과거는 남아 있지만 이제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지는 못합니다.

 

'재난'이 있고 삼 년 동안 환상과 그 밖의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그런 일들은 끝났습니다. 분별하는 마음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분별이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어떤 일도 그 상태를 변화시키지 못하죠. 갖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생각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런던에 있는 창녀의 전화번호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제가 런던의 길거리를 헤매 다닐 때 가로수에 붙어 있는 그 전화번호를 보았습니다. 찾아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할 일도 없었고 책을 읽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참동안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었죠. 그런 것들이 떠오릅니다. 무엇이 떠오르느냐는 문제가 아니죠. 좋은 것, 나쁜 것, 성스러운 것, 속된 것. 이것은 좋고 이것은 나쁜 것이라는 판단은 이미 없습니다. 다 끝이 난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이유에서 이것을 '종교적인 경험'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의미의 종교와는 다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근원으로 되돌아갑니다. 우리는 의식의 원래 모습인 순수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그 상태를 '각성의 상태'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생각은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관심을 두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생각들은 그저 왔다 갑니다. 마치 갠지스의 강물처럼 구정물도 들어오고 타다 만 시체도 들어오고, 좋은 것 나쁜 것 다 들어오지만 물은 언제나 순수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난처했던 일은 감각기관이 서로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감각들을 서로 이어주는 중재자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발렌타인은 성가신 일을 떠맡았죠. 함께 산책을 하면서도 저는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 저건 뭐지? 꽃이나 소, 뭐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일일이 대답을 해주었죠. 어린아이처럼 저는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사실은 새로 배우는 것은 아니죠. 모든 지식은 배후에 남아 있었습니다. 지식이 앞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것들을 단어에 대입시켜야 했습니다. 미친 것처럼 보였겠지만 저는 아주 멀쩡했습니다. 다른 모든 일에는 정상이었죠. 다만 사물의 이름을 물어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발렌타인도 영문을 몰랐죠. 그녀는 제네바로 심리치료사를 만나러 가기도 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제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한가지라도 미친 짓을 했다면 발렌타인은 저를 떠났을 겁니다. 질문을 하는 것뿐이었죠. "이게 뭐지?" "그건 소예요." " 저건 뭐지" "그건 뭐예요." 그런 질문이 계속되었으니 그녀에게도 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죠. 심리치료사는 본인을 보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그녀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어도 내면에서 무언가 굉장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상한 상황은 한참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지식이 배후로 물러났으니까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질문을 하지 않죠. 저는 제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상태를 비지식(非知識)의 상태라고 말합니다. 정말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이상한 우연으로 이 상태에 이르면 그때부터 모든 일은 나름의 방식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삼매의 경지에 들어 있습니다. 삼매경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일이 없죠. 언제나 삼매경 속에 있게 됩니다. 저는 삼매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지식의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때는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게 될 겁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돌아간다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하죠. 이미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방식'이라는 말을 씁니다. )

 

우리는 서로 다르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찾아오죠. 그러나 그들은 제가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했다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아주 작은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약간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사실은 차이가 없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약간의 운과 이상한 우연에 이끌려 이 일을 겪는다면 여러분도 모든 일을 끝마치게 됩니다.

 

[ Q ] 깨달은 사람들도 서로 다른가요?

[ UG ]

그렇습니다. 지나온 길이 다르기 때문이죠. 지나온 길로서 우리는 표현을 합니다. 그 밖의 다른 표현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도 제가 겪어 온 것들입니다. 제가 살면서 겪었던 갈등이죠. 제가 걸은 길, 다른 사람의 길을 거절한 것. 그곳에 다다를 때까지 제가 한 것들과 하지 않은 것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가 다다를 수 있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 Q ] 당신 같은 분은 저희와는 다릅니다. 저희는 생각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 UG ] 여러분과 다르죠. 그리고 어떤 사람과도 다릅니다. 지나온 길이 다르니까요.

 

[ Q ] 저마다 지나온 길이 다르기 때문에 '폭발'을 겪은 사람들도 각각의 특색을 지니고 있긴 해도 공통의 요소가 있을 것 같은데요.

[ UG ]

저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 할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찾아와 질문을 하면 저는 대답을 합니다.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제게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성스러운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메시지를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벌이는 신성한 노력이 모두 헛수고라는 것뿐입니다. 모두들 심리적인 변화를 통해 각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허튼 소리입니다. 심리적인 변화란 불가능합니다. 자연스러운 상태는 생리적인 변화를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료출처:www.zen.co.kr]

원문 : http://blog.naver.com/mybin99/20016250381

출처 : 차원상승의 삶
글쓴이 : 통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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