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그리고 또 65

허공

허공 / 김신타 보이는 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향기이고자 하며바람에 날리는 향기가 아니라향기를 담는 허공이고자 한다 보이는 몸이 아니라보이지 않는 마음이고자 하며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이 아니라마음을 품는 영혼이고자 한다 구름과 함께 지구를 감싸는허공은 무엇도 슬퍼하지 않으나소나기 같은 눈물 쏟아내고마음과 함께 몸을 돌보는영혼은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나때로는 천둥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눈물처럼 쏟아지면영혼이 새파랗게 드러나지만먹구름 소나기 되어 쏟아져도흰 구름 다시 모이기 때문이다

詩-그리고 또 2025.04.14

남원 '평화의 소녀상'

남원 '평화의 소녀상' / 김신타 손바닥에 뭔가 들려있어 다가가 보니 누군가 벚꽃 한 가지 올려놓았더군 맞아! 지금이 삼월 말이지 문득 만져보고 싶어져 가녀린 당신 손 잡으며 얼굴 올려다보았지 무표정한 눈동자 먼데 보고 있더군 한참을 바라보더군 살면서 당신 곁을 그토록 지나쳤어도 처음으로 당신 손 잡으며 눈물 쏟았지 이유는 몰라 다만 내가 그랬어 당신 손길이 따스하더군 다음날 다시 찾아가 새 꽃가지 당신 손에 얹어주었지 오늘은 초점이 맞았는지 서 있는 내내 나를 바라보더군 누군가 씌워준 분홍 목도리와 파란 빵모자 맨발에 한 손으로는 치마를 움켜쥐고 있었지 더는 울음도 안 나오는 슬프고도 휑한 눈으로 돌아 가려는데 소녀상 한켠에 새겨진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부치는 시인의 시에 오늘도 그만 눈물이, 동참한 ..

詩-그리고 또 2023.10.18

환승

환승 김석기 문상 마치고 나오는 길 대화는 사람 죽은 얘기다 저번에 누가 상 당했는데 미처 알지 못해서 못 갔다는 둥 너무 젊은 나이에 안 됐다는 둥 나도 한마디 거든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은 것 아니냐고 끝없는 여행길 기차를 타고 가도 좋고 버스를 타고 가도 좋으며 기차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도 좋은 것 아닌가 장례식장 환승역에 때아닌 환송객들로 붐빈다 죽음이란 하나의 삶을 끝맺는 것임과 동시에 또 다른 삶으로 환승하는 것임에도 장례식장마다 환송하는 가족, 친지, 지인들로 붐빈다. 정작 당사자는 이미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기에 환송식이 한창인 장례식장엔 그저 그림자만 남아있을 뿐인데.

詩-그리고 또 2020.04.03

생명 4

생명 4 / 김신타 사람과 동물의 사체를 두려워하는 이여!집을 짓고 책을 만드는 나무와 종이가,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동물과 식물의 사체가 아니고 무엇이랴꽃병에 꽃을 꽂는다 해서 꽃병이 꽃이 되는 게 아니듯진흙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해서 진흙이 생명이 되는 게 아니다 신이 부여한 생명은 영원하리니진흙이 아닌 그대의 생명은 영원하리라몸이 아닌 그대의 생명은 영원하리라

詩-그리고 또 201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