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詩, 수필) 100

구례구역

구례구역 / 김신타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기차가어디 구례 땅으로 들어오느냐며구례와 순천의 경계인 섬진강 건너순천 황전면에 기차역을 세우면서도역명은 구례 입구 역으로 한 당시 유림한때는 그들을 미워하고그들의 어리석음을 조롱했으나용호정 시계 詩契를 만드신 분들의 깊은 뜻일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훼방 놓고자 일부러반대를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매천 선생 같은 절개는 아니지만시계를 만들고 선로를 바꾸게 하는 등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반대였을 것 같은선조들의 깊은 뜻 이어받아 오늘도구례 용호정에서 시 한 수 지어 봅니다본받으리라 선조들의 정신특히나 구례 땅에서 살아오신선조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리라시계를 이끌어 오신 모든 어르신께우매한 후학, 고개 숙여 인사 올립니다(춘향문학 제8집, 2025년)

동창 모임

동창 모임 / 김신타가기 전에는 이런저런 생각에갈까 말까 싶다가도막상 가서 보면반가운 얼굴 얼굴들웃음꽃 피어나는 시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나이가 무슨 상관이랴예전 직업이 무슨 상관이랴지금 사는 모습이 또 무슨 상관이랴잘 나지도 못 나지도 않은너와 나 우리는 모두 하나일 뿐벌써 져버린 꽃도 있고여전히 활짝 핀 모습도 있지만내후년이면 어느덧졸업 50주년을 맞이하는오늘 지금이 아니라면다시 못 만날 수도 있는너와 나 우리는 모두동창이라는 이름으로동창에 물드는 아침 햇살과거에 잘 났으면 무엇하고지금 초라하면 또 무엇하랴하나에서 나와하나로 돌아가는 게우리네 인생사이거늘우쭐함도 부끄러움도다 부질없는 감정일 뿐허물없는 동창 모임을 통해지상에 존재하는 우리가 하나임을깨우칠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서로가 분..

무화과에게

무화과에게 / 김신타울지 마라 외로운 건 무명 無明* 때문이며살아간다는 건 무명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공연히 가지 않는 시간을 탓하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바라보라가끔은 하느님도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건 함께하고 싶어서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산그림자도 함께하고자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함께하고 싶어 울려퍼진다모두가 하나임을 깨닫고자 우리는 애써 지상으로 내려왔다* 無明 - 무아 無我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는 무지의 상태. (daum 인터넷 사전)[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를 패러디(改作詩文)하다](춘향문학 제8집, 2025년)

시월

시월 / 김신타녹음이 단풍으로 물들어갈 때쯤나는 비로소 석양처럼 익어가고시월에 매달린 열매가 노을 진다삶과 죽음이 하나가 될 때쯤나는 비로소 내게서 벗어나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시월 어느 한가로운 아침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나는내가 전부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모두가 하나인 세상에서함께 살아가기에 무아 無我일 터나 하나뿐인 세상이므로나를 위해 남을 돕고자 함이며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함이다(제34호 구례문학, 2025년)

오죽

오죽 / 김신타오죽하면 새까맣게 탔을까파란 대나무 사이 까맣게 탄오죽 烏竹이라 불리는 반가움그러지 말자그럴 일이 아니다혼자 애태울 일 아니다나라고 착각하는눈에 보이는 몸뚱아리도 청죽도 오죽도 언젠가는 사라질결국은 무아 無我임을이제라도 깨닫게 된다면"오죽했으면"이라는 탄식앞으론 사라지리라우리는 모두 오죽을 버텨낸휘어질 줄 아는 마음이기 때문이다(제34호 구례문학, 2025년)

연기암 가는 길

연기암 가는 길 / 김신타계곡 물소리 마시며나무 그늘 함께 연기암 가는 길섬진강이 보이는 절이라는이정표는 그리 새로울 게 없었다구례구역 강 건너섬진강 책 사랑방이라는헌책방 이층 창가에서 가득섬진강을 담고 온 터이기 때문이다계곡 길은 계곡 길대로위에 놓인 찻길은 찻길대로지리산을 지켜온 숲나무들마음에 쌓인 먼지를 씻어준다화엄사 입구에서 시작된연기처럼 흩어질 듯흩어지지 않고 이어진연기암 가는 외길삶을 사는 게 그랬다끊어질 듯하면서도끊어지지 않고 이어진이제는 바람길 따라가는 길(제34호 구례문학, 2025년)

신과 함께하는 영원한 존재

신과 함께하는 영원한 존재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된다는 것!이러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러한 생각을 나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혼자서 화를 내고 도리질 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칠십이 가까워진 나이.산전수전 공중전에 내전까지 겪어본 나에게 있어, 이러한 생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생각이 문득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그 생각에 이어 캠핑카 타고 바다낚시를 가고 싶은, 내 버킷리스트가 실현이 안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내가 없어도 되는 마당에 버킷리스트가 무슨 대수랴. 물론 이러한 내 생각의 바탕에는"모든 존재는 영원하다.""몸이 아닌 무형의 존재인 우리 인간..

전기적 일상

전기적 일상 / 김신타여름날 나는 선풍기를 튼 채어싱 매트 위에다 발을 대고충전하면서 휴대폰을 보다가더러는 에어컨을 꿈꾸기도 한다거리에 늘어진 전선은사진 찍을 때마다 하늘에 까만 줄 긋고집안에 들어온 전깃줄은내 몸 주위를 감싸고 있다전기 없는 세상을 사는자연인의 삶도 있을 수 있으나일상은 나도 모르게전기적 세상이 되어 버렸다밤중에도 가로등이 있고아름다운 야경이 있으며아궁이 불이 아니어도따뜻한 겨울이 있다난로에 주전자를 올려놓지 않아도커피 포터에서 물이 끓어오르고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아도전기밥솥에서 저녁이 익어간다「구례문학 33호(2024년) 발표」

쎔쎔 (또는 쌤쌤)

쎔쎔 (또는 쌤쌤)결국 "서로 같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영어 same same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 '쎔쎔'이라는 단어가 요즈음 나에게 정신적인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감사한 일도 더러 생각나지만, 그보다는 불편했던 일, 괘씸한 일 등이 머릿속에 더 자주 떠오른다. 그때마다 상대방의 모습이 연이어 떠오르며, 그에 대한 기분 나빴던 생각 또는 괘씸한 마음이 더 깊어지곤 한다.그러나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일 뿐이다. 해서 나는 60 중반이 넘은 나이가 되어 이제서야 마음속으로 쎔쎔을 외치게 되었다. 그가 내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다른 때에는 그가 내게 잘한 일도 있을 것이니 쎔쎔이며, 또는 그만이 내게 잘못한 경우가 있는 게 아니라, 나도 그에게 잘못한 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