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93

초자아적 사랑

초자아적 사랑초자아적 사랑이란 자신에게 특별히 이익이 되든 안 되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웃과 동료에게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홍익적 사랑을 말한다. 반면 이기적 사랑이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만을 선택하는 닫힌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이기적 사랑의 반대말로 알고 있는 이타적 사랑이란, 이기적 사랑의 또 다른 양상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며 자기만족이기 때문이다. 이기와 이타의 의미는 분명 상대적이지만, 이기적 사랑과 이타적 사랑 모두 나와 남을 둘로 구분하여, 자신을 위하는 것이면 '이기'로 타인을 위하는 것이면 '이타'로 이름할 뿐이다.물론 초자아적 사랑도, 이기적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이다. 그런데 초자아적 사랑이 이기적 사랑이나 이..

청년 시절을 생각하며

청년 시절을 생각하며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20대 내내 나에게 간간이 들었던 의문이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 돋보이지도 않았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도 없는 현실에 나는 우울해했다. 그러던 20대 끝 무렵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30대가 끝나갈 무렵 내 사고방식은 나도 모르게 염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있었다. 결혼 직후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어떻겠냐고 물은 적이 있는 내가, 그럴려면 뭐 하러 결혼했느냐는 아내의 대답 겸 질문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해서 손주를 바라는 부모에게 한가지 효도라도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가질 정도로 염세적이었는데 말이다.지금은 60대 중반이 넘은 나이다. 명예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자살을 꿈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경제..

내 안의 나

내 안의 나내가 나를 죽여야 한다내 안에 내가 있어서는 안 된다내 안에 '다른 나'가 없어야 한다내가 둘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다만 여기서 앞에 있는 '나'와뒤에 있는 '나'가 서로 다를 수는 있다앞에 있는 나는 전체로서의 나이고뒤에 있는 나는 부분으로서의 나이다'전체로서의 나' 안에'부분으로서의 나'가 들어있음이다그러나 '부분으로서의 나' 안에우리는 또 다른 나를 상정한다이러한 나를 스스로 죽여 없애야 한다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없는또 다른 내가 없어 마음이 텅 빈 상태가바로 견성이자 깨달음이다마음이 텅 빈 상태이기에내가 없고 모두와 하나임이 느껴지는모두와 더불어 함께하는내가 바라는 깨달음의 삶이다바라는 것조차 마음의 움직임이저절로 일어날 때를 기다리는모든 것을 받아들이는마음이 되고자 함이다판단은 외부 ..

이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는 데 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리라

이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는 데 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리라불경에 나오는 '살생하지 말라'는 말씀도, 바이블에 나오는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모두가 다른 생명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방안에 기어다니는 벌레를 종이에 싸서 죽이는 것도 그 벌레 자체가 두려운 것이든, 벌레로부터 옮길지도 모르는 병균이 두려운 것이든 암튼 두려움에 의한 행동이다. 만일 우리에게 이러한 두려움이 없다면 벌레를 방 안에 돌아다니게 그대로 두던가 아니면, 죽이지 않고 방 밖으로 내보내던가 할 것이다.이상에서 보듯이 다른 생명을 죽이는 행동은 두렵기 때문이며, 종교 경전마다 나오는 살생과 살인을 하지말라는 말씀도 결국은 "나 아닌 다른 생명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동물을 음식물로 섭쥐하든..

주체로서 대상을 사랑하자

주체로서 대상을 사랑하자대상 또는 객체가 존재한다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게 지금 여기 존재함에 감사하자. 나와 함께하는 몸이 지금 여기 있음에, 물건이 있음에 그냥 감사하자. 심지어 자동차나 물건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그게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내 몸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것이든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곧 기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서 대상을 사랑하는 주체가 되자.

사람은 내게 그럴 수 있어도 신은 내게 그러하지 않는다

사람은 내게 그럴 수 있어도 신은 내게 그러하지 않는다 한글 맞춤법 검사기가 몇 번을 거듭해도 얼른 뜨지 않길래, 혹시 누군가가 내 폰에 악성 앱을 깔아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이내 "사람은 내게 그럴 수 있어도, 신은 내게 그러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신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생각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내 편이 아닐 때 있었지만, 지금은 신이 내 편이기 때문에 그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 심정이다. 사람은 내게 그럴 수 있어도, 신은 내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사랑과 두려움

영혼의 사랑과 두려움 1 우리 인간 영혼은 하늘에 비유할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곧 영혼이다. 그런데 영혼이 몸과 함께 지상으로 태어날 때 영혼의 모습 그대로 태어나지 않고, 마치 파란 하늘에 덮인 구름처럼 두려움이라는 마음이 사랑으로 이루어진 영혼 위에 덮이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왜 영혼 그대로의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고 마음이라는 구름에 덮인 상태로 태어날까? 그것은 바로 영혼의 모습인 사랑을 느끼고 깨닫기 위함이다. 즉 처음부터 우리가 파란 하늘만 보아왔고 지금도 변치 않는 파란 하늘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아무런 느낌이 있을 수 없다. 즉 그것이 파란지 빨간지 좋은지 나쁜지 등등 아무런 느낌도 갖지 못한다. 그래서 느낌과 깨달음의 기쁨을 얻기 위하여, 즉 구름이 걷힌 다음 ..

기차 안에서의 단상

기차 안에서의 단상 같은 기차에 탄 남모르는 사람조차,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게 아니라 고마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덕분에 내가 기차를 탈 수 있고, 나아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르는 사람들을 소 닭 쳐다보듯 할 게 아니라, 마음속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살아갈 수 있음이다.'라는 생각을 평소에 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자신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날 것입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함께 우리 마음도 많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위빠사나 명상이란...

위빠사나 명상이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즉 타인의 일처럼 다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빠사나 명상에서 강조하는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의 의미이다. 추위와 더위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춥다 - 덥다'라는 감각과, 추위 또는 더위에 대하여 마음에서 일어나는 '싫다 - 좋다'라는 감정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감각과 감정을 알아챈 다음 아무런 행동 없이 다만, 그것을 지켜보는 과정을 일정 시간 지속하는 것을 위빠사나 명상 내지 수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빠사나 명상의 목적은 무엇일까? 더운 여름날 모기가 물어도 손으로 내쫓지 않고 그냥 참고 앉아 있지만, 참을성을 기르는 게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