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140

샹그릴라

샹그릴라이상향. 유토피아. 무릉도원 등을 뜻하는 단어로, 중국 윈난성에 속해 있는 티벳 자치구인 '중뎬(中甸)' 현의 이름을 2001년에 '샹그릴라' 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조셉 록'이라는 여행가가 1928년 샹그릴라 인근 지역인 야딩(竝丁)의 설산에 대한 글과 사진을 내셔날 지오그래픽지에 기고하였는 바, 3년 뒤에야 기사화된 야딩 지역의 설산 사진이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이를 보게 된 '제임스 힐턴'이라는 영국 소설가가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오랜 과거에서부터 물질문명 시대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누구나 이상향을 꿈꾼다.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와 전쟁. 사고. 폭력과 같은 인재 人災가 없는 세상을 말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

전남문인협회 수기.영상 공모전 응모 수기

외국어 남용으로 인한 불편했던 경험과 어문정책 제안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일이다.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목에서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말을 보고는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시를 읽어보았으나, 역시나 시에서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휴대폰에서 '노이즈 캔슬링'을 검색해 보았다. 쏟아지는 이어폰 광고들! 그쪽 업계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낱말이었지만 나만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나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이어폰 착용했을 때 나오는 음성 안내음조차 (anti) 노이즈 캔슬링의 영어 머리글자인 'ANC on' 또는 'ANC off'로 발음하기 때문에, 이러한 대세를 거부해 봤자 나만 불편하다. 해서 지금은 그때마다 폰으로 검색해서 생경한 외국어를..

내가 없는 나

내가 없는 나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나감정적으로 느껴지는 나오감으로 기억되는 나이 세 가지가 하나로 뭉뚱그려진자신도 모르게 머리 속에 깊이 박힌위와 같은 허상의 내가 사라지면,즉 깨닫고 나면 저절로 스며드는 그게 바로 '내가 없는 나'입니다지금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나감정 속에서 흔들리는 나오감으로 기억되는눈으로 보이고 생각되는 나는무위 無爲의 내가 아닌유위 有爲로 만들어진 대상일 뿐입니다나란 결코 대상일 수 없는감각되지 않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일찍이 석가모니는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습니다온 우주에서 유일한 내가홀로 존귀하다는 뜻이죠여기서 나란석가모니 개인이 아니라지구상에 살고 있는우리 모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우리는 홀로 존재하기에저마다 유일하고 존귀하며또한 우리는 모두 하나인 동시에홀로 존재하는..

행복과 고통

행복과 고통신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더 많은 행복을 느끼라고,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 속의 지구로 우리를 내보냈다. 고로 우리는 더 많은 행복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혹시나 행복을 느끼는 게 다른 사람의 질투나 시샘을 받는다고 여겨진다면, 자신이 누리는 행복의 느낌을 이웃 등 타인과 함께 나누면 된다.우리는 신의 뜻에 따라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을 느껴야 한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이다. 그게 바로 몸을 받아 우리가 지상에 태어난 이유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는 방법론을 찾는 일이다.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늘 행복을 꿈꾸어 왔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여러 가지 행복론이 있었지만 그다지 신통한 방법이 되지는..

언제나 지금

언제나 지금지금이 시작이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여러 번 한 적 있지만, 지금이 끝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지금이 시작이자 끝이다. 언제나 지금일 뿐이기 때문이다.우리는 끝을 두려워한다. 끝이라는 단어에서 죽음을 떠올리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내 경우에도 예전부터 지금이 시작이라는 생각은 더러 한 적 있지만, 지금이 끝인 줄은 여지껏 몰랐다.그러나 지금이 시작이라면 마찬가지로 지금이 끝이다. 끝이란, 앞이 막혀있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새로운 출구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작은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고로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인 것이다.

시를 읽다가

시를 읽다가어느 구절에서 아픔이 느껴질 때그 아픔에 빠져드는 게 아니라그러한 아픔을 느끼는 한편으로내가 아픔을 느끼고 있음을 자각하는 자그가 바로 깨달은 사람이다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감정 속에 빠져드는 사람도 아닌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그러한 감정을 지금 내가 느끼고 있음을 자각하는 자그가 바로 깨달은 사람이다신조차도 슬픔과 기쁨 등을 느끼지만그러한 감정이 저마다 자신 안에 있음을동시에 자각하는 존재를 말함이다무상한 건 모두 지나가기 때문이다존재하는 모든 건 영원하기 때문이다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존재 즉분리된 개인으로서의 나는 없지만보이지 않는 전체로서의 나는 영원한절대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 아는 자그가 바로 깨달은 사람이다 / 김신타

'한번 왔다가는 인생'이라는 말

'한번 왔다가는 인생'이라는 말'한번 왔다가는 인생'이란 없다. 인생이 단 한 번 왔다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록 다른 모습으로 또는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반복해서 태어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영원한 생명의 존재가 아니라, 일회성 생명이라면 무엇 하러 우리 인간에게 자의식을 주었으며, 우리가 이렇게 많은 고통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신이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개인적으로도 그렇겠지만 역사적으로도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잔인한 일이 많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향해 "당신은 어디에 있느냐?"고 절규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러나 신이 잔인한 게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 뿐이다. 물리적..

대상이 대상을 볼 수는 없다

대상이 대상을 볼 수는 없다"보인다는 사실은 보는 주체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달리 말하면 보는 주체가 있다는 사실은, 보인다는 사실로써 알 수 있다."그런데 우리는 '보이는 것'이 본다는 착각을 합니다. 보이는 우리 몸이, 그중에서도 눈이 사물을 본다고 착각을 하곤 합니다. 다른 무언가가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지, 대상인 눈이 다른 사물을 보는 게 아닙니다. 이는 마치 현미경이나 망원경이 대상을 본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대상은 대상을 볼 수 없습니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은 우리 인간이듯, 인간의 눈을 통해 보는 것은 몸에 달린 눈이 아닌, 마찬가지로 머리통 속에 있는 뇌도 아닌, 보이지 않는 의식입니다. 이는 마치 컴퓨터 화면을 스캐너가 보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CPU나 ..

신은 없다

신은 없다"신은 없다"는 말은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의 말과 시대적 배경이 다를 뿐 결국 같은 취지이다. 니체 당시인 19세기 유럽에서는 로마 교황이 이끄는 기독교 세력이 쇠퇴해 가던 시기였으며, 지금 21세기에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일 뿐이다. 신이라는 단어 역시 이제는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쓰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이 없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살아 있는 신이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황과 기독교 사제들이 마치 신을 대신하는 듯 교회법에 의한 폭력을 일삼던 기독교 권력이 죽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신이 없다'라는 말은 모든 빛이 하나로 합쳐지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