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76

불살생 不殺生

불살생 不殺生 살생이 살생이 아니다. 다시 말해 불살생이란 살생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살생이 살생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릇 생명이란 동물에만 있는 게 아니라 식물에도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이를 동물로만 한정하여 살생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만들어놓는 게 보통의 종교 계율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다른 요일에는 상관없지만, 특정한 요일에 특정한 동물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계명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같은 종교를 믿는 후배 종교인들도 선배 종교인들의 이와 같은 금기에 대하여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현재도 명상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달려드는 모기를 일부러 잡지 않고 참으며 수행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종교적 수행 방법도 있다. 그러나 모기를 애써 잡지 않으며 수행하는 그들 종교의 교주가, 돼지고..

감사하는 내맡김

감사하는 내맡김 포기하고 내맡긴다는 게 "나는 모르겠습니다. 알아서 해주십시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라는 식으로 신에게 간구하거나 또는 원망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고 내맡기는 상태에서 다만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이 일어난 것과 관계되는 사람들 등등 마음에 떠오르는 대상을 모두 받아들이며, 신에게 감사 기도를 하거나 또는 명상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내맡김입니다. 원망하면서 내맡기는 게 아니라, 감사하면서 내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애써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마치 물이 되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나는 신 안에서 모든 일을 할 ..

고통과 행복

고통과 행복 우리는 행복 또는 고통만을 겪어보기 위하여 이 세상에 몸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고통이 없는 행복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하는 행복을 누리고자 이 세상에 몸으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따라서 행복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거부하거나 애써 피하고자 할 게 아니다. 고로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다. 고통을 멀리하고 피하면서 행복만을 추구하는 게 아닌, 고통과 행복을 모두 수용하는 자세가 바람직한 삶의 자세일 것이다.

주관과 객관의 세계

주관과 객관의 세계 다수가 믿어마지 않는 객관의 세계에서 살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어가는 주관의 세계를 살든지는 저마다의 선택이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게 아닌 한 쪽을 기준으로 삼되 다른 쪽을 수용하는 것이다 기준이 어느 쪽이냐가 삶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보리수나무 아래 문득 보이는 샛별 아래 내가 있느냐 내 안에 샛별이 있느냐 객관 속에 주관이 있느냐 주관 속에 객관이 있느냐의 문제다 내 몸이 곧 외부세계에 포함된 하나의 대상임을 자각했을 때 나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은 시공조차 없는 텅 빈 침묵 나는 보이지 않는 무 無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텅 빈 빛 무아無我이면서 분명 존재하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삼위일체 객관으로 땅을 딛고 주관으로 하늘을 바라볼 일이다 객관 속에 ..

평면과 입체

평면과 입체 보이는 시각을 비롯한 오감으로 느껴지는 모든 게 바로 절대계 안에서 일어나는 상대적인 모습이다. 상(像)이 우리 두뇌 안에서 맺히는 게 아니라, 바로 물상(物像) 위에 맺히고 외부 세계가 곧 내면세계이며, 상대계 또한 절대계 안에 있는 세계일 따름이다. 우리가 관념적으로 분리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아무리 깊이 파보아도, 우리 눈에 보이는 감각으로는 언제나 평면일 뿐이다. 시각의 대상들은 오직 평면으로 보이며 입체는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똑같은 사물이라 해도 눈엔 평면으로 보이고 뇌에선 입체로 인식된다. 오감의 감각과 더불어, 반복된 경험과 추론이 입체적 허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느 게 옳거나 옳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감각과 인식이라는 게 그러할 뿐이다...

지상에 온 이유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이나 시험조차도 신의 사랑임을 깨달아야 한다. 신의 사랑이 아닌 게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고통의 바다라고 하는 우리의 삶조차도 신의 사랑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무엇 하러 우리에게 세상 체험을 하도록 했겠는가? 우리 자신이 원하고 또한 신이 원해서 이루어진 일일 뿐이다. 천상에서 천사였던 우리 인간이, 고해라고 불리는 이 지상으로 내려온 이유란 말이다.

둥근 하늘, 둥근 지구

둥근 하늘, 둥근 지구 내 안에 있는 하늘에서 사랑의 빗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밖에서 사랑이 얻어지는 게 아니며, 하늘이라는 것 역시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하늘이 있고 하늘의 사랑이 있으며, 내면에 있는 하늘의 사랑이 지상의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지구가 둥근 것처럼 하늘도 둥글다. 지상이 평평하게 보이지만 실은 둥근 것처럼, 하늘도 평평한 게 아니라 지평선 또는 수평선 너머에서 지구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북극에도 하늘이 있고 남극에도 하늘이 있으며,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 위에서도 하늘이 보일 테니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

내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당신의 작품이군요. 하긴 글을 쓰거나 말을 하기 전, 나는 당신의 말씀을 기다렸으니까요. 그러고도 당신이 아닌 내가 그런 흡족한 글을 썼다고 혼자 자뻑했답니다. 그나마 당신의 사랑이 있기에 나와 같은 웃기는 짬뽕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머리를 쥐어짜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당신이 무슨 말씀을 해주길 기다릴 줄 아는 놈입니다. 이 정도로도 내 마음은 기쁨 가득합니다. 아무튼 오늘도 당신의 사랑을 조금 더 깨닫게 되는 하루입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 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