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189

깨달은 사람이란

깨달은 사람이란 외면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는 게 아니라, 내면적으로 어린아이가 되기 시작한다. 내면이 변함에 따라 외면도 점차 따라서 변하겠지만, 우선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어쩌면 내면에서조차 어린아이가 되는 게 아니라, 성인의 인식과 아이의 인식이 병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장하면서 기억에서 지워버린 어린아이 때의 인식이 되살아나, 성인이 된 지금의 인식과 병렬로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게 되면 때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다만 어릴 때와는 달리 논리가 정연하다. 근대의 선승이라 일컫는 경허 선사의 기행 중에, 제사도 지내기 전에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을 거두어 배고픈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도, 분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던 제주 즉 망..

깨달음의 서 2022.09.18 (2)

감각과 기억의 세계 그리고 깨달음

감각과 기억의 세계 그리고 깨달음 우리 인간에게는 인체의 오감에 의한 감각이 있으며, 그러한 감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의지적 행동 등에 대한 기억 속에 우리는 매몰되어 있다. 매몰이라는 표현보다는 몰입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색수상행식 色受相行識의 수렁에 빠져있음이다. 더욱이 자신이 감각에서부터 감정과 생각, 행동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기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생각·행동과 이러한 색수상행에 대한 '인식된 기억'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레 몰입되는 감각적 세계와 감각 세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감정과 생각, 행동 그리고 인식과 기억이라는 세계..

깨달음의 서 2022.08.18

깨달음 후에 일어나는 일

깨달음 후에 일어나는 일 1. 서론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은 모두 하나의 바탕에서 일어납니다. 시각의 바탕이 따로 있고 촉각의 바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모두가 하나의 바탕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각과 청각 또는 시각과 후각, 미각과 촉각 등등, 어느 하나의 감각과 다른 감각을 동시에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것도 청각과 시각이 순간순간 교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지, 두 가지 감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오로지 하나의 감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진 후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바탕은 여러가지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의 바탕에서 인체의 오감이 각각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 하나의 바탕을 우리는 마음..

깨달음의 서 2022.03.29

원하는 상태의 감정

원하는 상태의 감정 스스로 원하는 감정도 받아들이고 원하지 않는 감정도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감정이 이미 원하는 상태에 있을 때, 자신이 원하는 상태가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현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원하는 상태의 감정'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원하는 상태의 감정'을 가식적이라고 느끼며, 자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 든다. 그러나 그것이 가식적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 상태는 현재 상태만을 계속 만들어낼 뿐이다. 이게 바로 시크릿 법칙이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현실로 이루어내고자 한다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먼저 바꾸어야 한다. 현실에 지배되는 감정 상태에서는 자신..

깨달음의 서 2022.03.24

프레임으로 창조되는 우주

프레임으로 창조되는 우주 우리 저마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파동으로 바뀌어 존재하다가 관찰하는 순간 현재의 모습인 입자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게 아닐까? 관찰하는 순간 즉 우리가 몸에 있는 감각기관을 사용하는 매 순간 파동에서 입자로 말이다. 또한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세계 즉 우주가 계속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아닐까? 마치 영화의 필름 속 프레임이 하나씩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영화 필름의 프레임이 평면적 형태라면, 우주 프레임은 입체적 형태이지 않을까 싶다. 늘 고정되어 있다고 여기며 바라보는 우주가, 매우 짧은 순간마다 계속 바뀐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서 우리는, 실험자가 관찰할 때는 입자의 성질을 보이다가 관찰하지 않는 시..

깨달음의 서 2022.03.20

돈오돈수와 점오점수

돈오돈수와 점오점수 스님이나 불교인들한테서 더러 듣는 말 중에 하심 下心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깨달은 사람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를 등산에 비유한다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게 하산하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하심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일반 대중이 아닌 견성 즉 깨달음의 문에 들어선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견성이란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 비유할 수 있는 바, 고봉 등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하산 과정도 이에 못지않게 위험하다. 견성 상태인 기쁨의 고봉에 머물러 지내는 게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게 바로 하심 또는 점수이다. 불교에서는 보림이라는 용어로 이를 나타내는데, 용어와 ..

깨달음의 서 2022.03.09

저마다 내면에 보석이 있다

저마다 내면에 보석이 있다 천국도 지옥도 모두 내 안에 있다. 외부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가, 다름 아닌 저마다의 내면에 있는 것이듯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 각자의 내면을 벗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면이란 눈에 보이는 유형적 신체의 내부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음 즉 시공도 없는 무 無이기 때문이다. 무이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모든 것일 수 있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형상(이미지)이나 관념을 잡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무슨 느낌이라도 하나 잡으려고 애를 쓴다. 유형의 대상이든지 또는 무형의 대상에라도 의지하려 하거나, 심지어는 유형·무형의 어떤 것을 자신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우리는 유형도 아니며 무형도 아닌 아무것도 없음(무)이다. 없음 안에 모든 게 들어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이..

깨달음의 서 2022.03.02

생각이 없는 상태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생각이 없는 상태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의식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우리가 의식을 의식할 수는 없습니다. 의식 자체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며, 다만 의식에 대한 개념을 인식하는 게 가능할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의식을 의식할 수는 없으며, 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에서 180도쯤 깨닫고 나면, 산이 산이며 물이 물인 것은 그것이 본래 산과 물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그리 이름 붙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반쯤 깨달은 이들은, 산이 산이 아니며 물이 물이 아니라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러나 여기서 180도 더 나아가 360도라는 제 자리로 돌아오면, 달리 이름할 것 없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임을 다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산..

깨달음의 서 2022.02.10

받아들임이란?

받아들임이란? 사랑이란 받아들임입니다. 여기서 받아들임이란,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까지 즉, 외부 세계의 모든 일과 내면에서의 모든 반응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또 달리 표현하면 나와 남의 말과 행동은 물론이며,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조차 모두 받아들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겠죠?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착각하는 지점 하나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깨달은 사람이라면 타인의 언행이나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며 초연해야 한다고 우리는 흔히 알고 있고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그렇고 노자 또는 도가의 가르침이 ..

깨달음의 서 2022.02.10

인간의 본질

인간의 본질 나란, 내 몸을 포함한 감각과 감정, 생각, 의지, 기억 등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된 그 무엇입니다. 몸만이 나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몸을 제외한 다른 것들이 모여 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모든 빛깔이 하나로 합쳐지면 아무런 빛깔이 없는 밝은 빛이 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몸을 비롯하여 감각에서부터 기억까지 모든 게 하나로 합쳐지면 이게 바로 아무것도 없음이자 '나'라는 본질이 됩니다. '나'라는 본질은 아무것도 없음이자 무 無입니다. 우리 저마다의 몸이 죽음을 맞으면 몸의 기운은 '나'라는 본질 안에 그대로 남는 반면, 형체로서의 몸은 마치 땅콩 껍데기가 가을철 어느 순간에 알맹이와 분리되듯이 그렇게 분리되어 썩어갈 뿐입니다. 생명은 껍데기에 있는 게 아니..

깨달음의 서 2022.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