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깨달음

충만한 기쁨

신타나 2021. 2. 23. 15:45
충만한 기쁨

신타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란
내가 깨닫는 게 아니라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깨우치는 게 아니라
때가 되어 깨우쳐지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생각으로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일 뿐입니다
오히려 생각에서 벗어나야
내 모습을 볼 수 있음에도
생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애쓰는 것은
눈으로 눈을 보고자 하는 어리석음입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
화두를 가진 채 기다려야 합니다
생각대로 이것저것 찾아보는 것은 좋으나
거기서 무언가 답을 찾겠다는 각오는
생각으로 답을 얻겠다는 결의와 다름없는
어리석은 애씀일 뿐입니다

위대한 성인의 말씀이 적힌 경전이라 해도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열심히 찾고 의문을 화두 삼아 가다 보면
영감이 느껴지는 때 불현듯 찾아옵니다
시절 인연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다만 화두를 지닌 채 살아가다 보면
문득 깨달아지는 때가 바로 시절 인연입니다
바이블에 나오듯이 도둑처럼 찾아듭니다

깨닫기 위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며 다만 의문을 품는 것
시절 인연을 준비하는 행동입니다
내가 직접 상상하고 생각해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게 결단코 아닙니다
헛수고일 뿐이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일 뿐
해답을 직접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애쓸 뿐입니다
다만 행할 뿐입니다

이쯤에서 믿음이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며
신의 대리인임을 자칭하는
무당에 대한 믿음도 아닙니다
강단에 높이 선 현대판 무당일 뿐입니다
신이 아닐진대 하물며 인간일까요
신이 아니라 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힘을 주는 믿음입니다

불교에 살불살조 殺佛殺祖라는 말이 있듯이
성직자나 스승의 말씀에서 답을 찾지 마세요
경전을 보고 답을 얻을 수 없다고 했거늘
다른 사람의 해석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기를 꿈꾼단 말인가요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거든 조사를 죽이라고 했는데
부처도 아닌 부처의 아류를 믿겠습니까
깨달았다고 해서 조사의 아류를 따를까요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밖에 있는 건 반찬일 뿐
각자의 내면에 있는 게 밥입니다
내면을 믿어야 합니다
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 속에서
스스로 내면에 의지해야 합니다
내면에서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영감이란 내면의 느낌입니다

수많은 깨달음 중에서
마지막 깨달음이 이른바 견성입니다
나를 보는 것이죠
견성에서부터 하산이 시작됩니다
점수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고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내려갈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정상에서 산이 산이 아니며
물이 물이 아니라고 외쳤던 우리는
무사히 평지로 내려왔을 때 다시
산은 산이며 물은 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0도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게
180도에 올랐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며
360도로 내려왔을 때 또다시 깨닫게 됩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보석으로 가공해내지 못한다면
한낱 돌덩이에 불과할 뿐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지만
내려오다가 조난당하면 무슨 소용일까요
그래서 점오 못지않게 점수도 중요하며
견성 못지않게 보림도 중요합니다

산이 산이 아니요
물이 물이 아님을 아는 경지에 머물지 말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임을 다시 알게 되는
텅 빈 침묵의 기쁨을 느껴볼 일입니다
내가 곧 텅 빈 침묵임을 아는
충만한 기쁨을 느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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