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사랑의 느낌 36

호수의 계절

호수의 계절 김신타 잔잔한 가슴에 두 손 적시던 그대 날마다 깊이 부르던 사랑의 이름 떠나고 난 가을은 낙엽이 되었다 추억과 아픔이 무시로 교차하던 계절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아름다웠던 만큼 상처가 깊었다 다시금 맑게 비치는 호수의 계절 아픔도 고마움이어라 상처도 감사함이어라 그대가 아니라면, 누가 사랑으로 가슴을 출렁이랴

사랑의 변명

사랑의 변명 김석기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내가 필요한 때가 아니며 내가 그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가 내게 필요한 때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을 동시에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를 사랑한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다 너로 인해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가깝다 서로가 서로의 사랑을 필요로 할 때 우리 다시 만나자 지금은 아니다

병이 도지다

병이 도지다 김석기 술 마신 뒤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싶은 젊은 시절의 병이 오십 넘은 나이에 다시 도지다 스스럼없는 지인과 함께 장터에서 국밥 먹으며 마신 탁배기 한 잔에 나도 모르게 생각이 그대에게로 향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러나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이 조심스러워 들썩거리는 찻주전자 뚜껑 속 차오르는 뜨거움은 찻잔에 나누어 담고 남은 온기를 두 손에 모아 한 모금씩 가슴으로 되새겨본다 눈부시지 않게 빛나는 어머니처럼 격정적이지 않은 나타냄과 뜨겁지 않은 따스함의 사랑을

사막을 걷는 태양

사막을 걷는 태양 / 김신타살아가는 동안 그대와친구 되고자 함은 지나친 욕심인가요?그대의 단절에 나는바닥을 드러낸 거친 계곡이며그대의 침묵에 나는사막을 걷는 목마른 태양입니다그대가 구름이요 비라면 나는그대의 부드러운 가슴에포근히 안기는 갓난아기이며그대의 넘쳐흐르는 사랑에뛸 듯이 기쁜 어린아이입니다나는 지금구름처럼 앓고 있는 그대 위해 기도하는,비처럼 그대 사랑 쏟아지길 못내 기다리는바닥을 드러낸 계곡이며사막을 걷는 태양입니다

뿌리로 서다

뿌리로 서다 자란 김석기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홀로 서고자 뿌리는 어둠에서 자라며 나는 가슴 속에 머문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자 그래도 때로는 쏟아지는 소나기에 뿌리도 제 마음 내 보이고 불현듯 나타난 누군가에게 마음이 뿌리 채 흔들리기도 하며 여름이 지나가고 사랑도 식어가지만 남아 있는 그리움은 뿌리처럼 아프다 가슴에 드러난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