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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 轉禍爲福

전화위복 轉禍爲福 / 김신타 시간 맞춰 헐레벌떡 탄 시군 경계를 넘는 시내버스 감사하면서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본다 약속했던 사람으로부터 장염 때문에 내일 보자는 내용이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까 말까 하다가 일단 그냥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손님은 몇 명 없었지만 그래도 버스 안이라 통화하기 미안해 참고 기다리다가 목적지에 내려 전화했더니 받지를 않는다 장염이면 전화도 받지 못하는 건지 그제서야 버스를 놓쳤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버스가 이미 지나갔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출발지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와 조금 전까지의 일을 돌이켜보니 그래서 새옹지마인가 보다 닥친 일에 무조건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져보는 하루이다 그것이 늦잠 때문에 카톡을 일찍 보지 못한 것이..

신작 詩 2024.10.12

하이볼

하이볼 / 김신타 따로따로 먹어야 제맛인 게 있고 함께 섞어 먹어서 더 맛을 내는 게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만이 더 진실이고 진리인 게 아니라 빛이 입자인 것도 진실이고 파동인 것도 과학적 사실인데 우리는 하나만을 찾고 일등의 이름만을 기억한다 주체인 신은 하나이지만 대상인 사람은 갈래갈래 퍼졌는데 하나인 절대를 애써 벗어난 우리 여전히 하나의 상대만을 고집한다 주체는 하나일 수밖에 없지만 대상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으며 절대는 하나이지만 상대는 둘 이상일 수밖에 없는데

신작 詩 2024.10.11

아침

아침 / 김신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쓴 소설을 읽다가 문득 고개 들어보니 창문 밖은 안개가 뿌연 아침이었다. 하긴 평소대로라면 초저녁이었을 저녁 9시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잠자리에 누웠다가 밤 열두 시쯤 다시 일어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학생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소설도 어렵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었으나, 쉰 살쯤인가부터는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도무지 재미가 없고 싫증이 나서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소설 읽기를 포기하곤 했다. 그랬던 나였는데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e북으로 구입해 읽느라 창밖에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남편과 형부 그리고 언니의 시점에서 각각 쓰인,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

신작 詩 2024.10.11

부끄럽지도, 부끄럽지 않지도 않은

부끄럽지도, 부끄럽지 않지도 않은 / 김신타 지금보다 삼사십 년 젊어서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이라고 무던히도 거듭거듭 생각했으나 이제는 부끄럽지도 부끄럽지 않지도 않은 삶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마음이면서도 또한 보람 있는 삶이고 싶다 무표정한 걸음이지만 만나는 사람을 향해 웃음 띤 얼굴에 흰 구름처럼 떠 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천사의 날개이고 싶다 이제는 젊었을 때처럼 생각 속에서조차 '나와 남'이 있고 내면에서조차 '나와 너'가 있는 나뭇잎처럼 매달린 삶이 되고 싶지 않다 부끄럽지도 않고 부끄럽지 않지도 않지만 죽음과도 같이 나만을 걱정하는 관 속에 갇혀 있는 삶이 되고 싶지 않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마음이 되자..

詩-깨달음 2024.10.10

주체와 전체

주체와 전체 주체는 오직 하나뿐임을 알라.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인 것이다. 지상과 천상에서 유일하게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그러한 존재가 바로 신이기에 유대교를 비롯한 많은 유일신 종교가 탄생했다. 힌두교와는 달리 신이 없다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해서 중생처럼 많은 부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중생이 하나의 부처로 귀의하는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 과거에서부터 많은 부처가 있었다는 사상은 힌두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힌두교에 많은 신이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도 많은 부처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싫어하면서도 닮아 가는 게 우리 인간사(人間史)이다. 전체란 크기가 없다. 따라서 전체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한..

깨달음의 서 2024.10.10

색즉시공이 맞는 얘기일까?

몸 마음이 나라고 믿어오다가 깨달음을 얻어 내면에 있는 '허상의 나'로부터 벗어났을 때, 세상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외부 현실이 아니라 내면 의식일 따름이다. 그것을 우리는 내면 의식에서만이 아니라 외부 현실인 물질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것처럼 '색즉시공'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인 색 色이 공 空한 게 아니라, 내면에서의 현상만이 텅 빈 공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나'라는 존재가 개체이며 따라서 전체와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오다가, 자신이 개체가 아닌 전체임을 깨닫고는 개체로서의 자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허상의 울타리(=나)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즉 분리된 개체란 없고 전체만이 있다는 ..

깨달음의 서 2024.10.09

깊이 있는 바다, 노년의 삶

깊이 있는 바다, 노년의 삶 나라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물리적인 몸이 아니다. 나는 내면에 있는 무형의 존재이다. 겉으로 보이는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몸일 뿐이다. 몸이란 내가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에 존재하기에,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나와 함께하는 몸을 나 자신으로 오인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왔다. 그러나 내가 많은 시간을 몸과 함께 보낸다고 해서 몸이 곧 나인 것은 아니다. 내면에 있는 무형의 내가 주인이며 몸과 마음은 하인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깨달음이고 거듭남이다. 나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를 일부러 망각한 채 지구상에 태어나, 몸과 함께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깨달음의 서 2024.10.09

일심동체 一心同體

일심동체 一心同體 깨달았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나'라는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다. 깨닫고 나면 내 몸이 없어지고 늘 오르내리던 산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몸 마음과 일심동체라고 믿어왔던 허상의 내가 없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허상의 내가 없어지더라도 실재하는 무형의 나는 여전히 그대로다. 몸 마음과 일심동체라고 믿어온 허상의 나는 눈에 보이고 오감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즉 실재하는 무형의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감으로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에, 허상의 내가 사라지고 나면 몸을 비롯한 모든 물질적 대상 역시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착각을 다른 사람도 아닌, 허상의 나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즉 무아를 깨달은 선각자들이 예전부터 해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

깨달음의 서 2024.10.09

깨달은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깨달은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깨달았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또는 구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한테 닥쳐온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자신이 행복하다거나 또는 불행하다는 등의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물리적인 구분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구분을 하지 않음이다. 자기한테 이익이 되고 안 되고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살아온 자기 경험이나 기억 등에 따른 두뇌 작용에 의해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울림에 따라 의사를 결정한다. 지금 당장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것 같은 일이 있어도 내면의 울림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이것이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이일 뿐 그 나머지는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 행•불행을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깨달음의 서 2024.10.09

시작이 있을 뿐 끝은 없다 2

시작이 있을 뿐 끝은 없다 2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끝이 없을 뿐 시작은 있다. 시작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무언가를 깨닫게 되면 그 깨달음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깨닫기 이전에는 없었던 세계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세계가 기존의 세계와 중첩되어 새롭게 시작된다. 기존의 세계와 중첩되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이다.그리고 깨달음 중에서도 가장 큰 깨달음인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나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듭남과 다르지 않다. 이 물질계에서 오감으로 느껴지는 몸, 그리고 의식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깨달음의 서 202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