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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 발효 그리고 잔상

부패와 발효 그리고 잔상 / 김신타 어제 보았던 기억을 오늘 다시 꺼낸다면 그것은 점점 시들어 가는 냄새나는 열매가 될 것이다 어제의 기억은 땅속에 묻어놓고 눈을 들어 오늘 다시 바라볼 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며 켜켜이 쌓여 숙성이 될 것이다 어제 본 것 어제 들은 것 굳이 다시 꺼내지 않아도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잔상을 떠올리지 말자 어제 보았거나 들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잔상일 뿐이다 어제 아름다웠던 것도 아름답지 못했던 것도 오늘 다시 그림을 그리자 잔상을 곱씹을 게 아니라 새로운 종이 위에 새로운 기억으로 채색하자

신작 詩 2024.10.18

가을 소풍

가을 소풍 / 김신타 카페 옆 식물원에서 일행과 떨어져 혼자 구경하다가 차를 운전해야 하는 내가 안 보이자 다른 사람들은 지금 다 가는데 어디서 뭐 하고 있느냐며 조금은 짜증 섞인 전화가 왔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있음을 알아챘으나 지금 가고 있는 중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는 이내 일행을 만나 함께 돌아왔다 집에 와서 다른 일 하는데 아까의 일이 생각나면서 사람이 짜증 낼 수 있다는 게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게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혼자 피식하는 웃음이 났다 예전 같으면 현장에서 바로 뭘 그렇게 짜증 내느냐며 서운함을 참지 못했을 나인데 이제는 내 감정을 알아차렸을 뿐 아무런 흔들림 없이, 더 나아가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든다는 사실이 가을날 국화꽃처럼 향기롭다 눈에 보이지는 ..

신작 詩 2024.10.17

울적한

울적한 / 김신타 울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울적한'이라는 단어가 아름답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제목의 노래에 나오는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포기하고 찢어질 것같이 아파할 수 없어 난" 이라는 구절이 끝내 내리는 빗물처럼 창밖의 나무를 적신다 "" 악동뮤지션 노래, 가사 부분 인용

신작 詩 2024.10.15

실재

실재 / 김신타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의 속에 있는, 껍데기와 알맹이처럼 가을날 씨앗주머니와 씨앗처럼 함께하면서도 하나의 운명이 아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영원할 것으로 순간순간 착각하게 되는 우리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린 채 태어났다 자신이라는 보물을 찾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기 위하여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알지 못한다 알맹이인지 껍데기인지 씨앗인지 씨앗주머니인지 껍데기나 주머니가 아닌 속에 있는 씨앗이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봉선화 씨앗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재이다 보이는 실상은 언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실재만이 영원한데 실상으로서 자신이 영원하기를 어리석은 꿈 여전히 꾸고 있다 보이는 실상은 반드시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실재가 곧 영원한 우리 자신의 모습임에도

詩-깨달음 2024.10.15

1회용 몸과 영혼의 관계

1회용 몸과 영혼의 관계 '나'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우리 눈에 뻔히 보이는 몸과는 어떤 관계일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물론이고 나 자신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영혼, 그 영혼의 도구가 바로 우리 저마다와 함께하는 몸이다. 천상과 지상에서 동시에 활동할 수 있지만 유형으로 드러날 수는 없는 무형의 영혼을 대신하여, 단지 지상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유형의 몸을 신과 함께 우리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1회용이다. 모든 식물과 동물이 다 그렇지만, 우리 몸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없는 1회용일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1회용인 몸을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몸의 죽음이 두렵고 따라서 이를 거부하게 된다. 그러나 몸이 죽어 없어진다고 해..

깨달음의 서 2024.10.14

질문일 뿐 대답이 아닌

질문일 뿐 대답이 아닌 노벨문학상 받은 소설가는 말했다 자신은 소설을 쓰면서 대답이 아닌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개체이자 대상인 우리는 질문할 수 있을 뿐 스스로 대답하지 못하며 벗을 줄 아는 것은 옷뿐이고 내면에서 굴레를 벗기는커녕 굴레를 쓰고 있는 자신을 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답이 듣고 싶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것이고 그러나 우리는 대답을 듣지 못한다 전체가 아닌 개체에게서는 주체가 아닌 대상에게서는 내면에서 질문을 하고 진정으로 대답을 기다릴 때 전체이자 주체인 무형의 내가 개체이자 대상인 유형의 내게 대답한다 밖이 아닌 안에서 묻고 안에서 대답을 듣는 것이다 내가 나한테 묻고 나한테서 대답을 듣는 것이다 개체에서 벗어날 때 전체가 되는 것이고 대상에서 벗어날 때 주체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

잠언 2024.10.12

전체 (절대. 근원. 순수. 본래)란?

전체 (절대. 근원. 순수. 본래)란? 전체 (절대. 근원. 순수. 본래)란 분리된 나를 벗어난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분리된 작은 나'가 아닌 '큰 나'라거나 또는 전체이거나 절대 등을 머릿속으로 상정한다면, 그것 역시 전체가 아닌 또 다른 대상이자 부분일 뿐이다. 아무리 큰 우주 전체를 상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체이거나 절대, 근원, 순수, 본래가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전체란 커다란 무엇이 아니라, '작은 나'에서 벗어난 상태를 뜻한다. 우리가 생각으로 아무리 큰 것을 떠올릴지라도 그것은 한계와 제한을 갖게 된다. 그래서 전체라는 건 '큰 나'가 아니라, 단지 '작은 나'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과 함께하는 '작은 나' 또는 '개체로서의 나'란, 우리의 내면에 존재..

깨달음의 서 2024.10.12

무엇이 깨닫는가?

무엇이 깨닫는가?자신이 무엇인지를 무엇이 깨닫는가? 영혼이 깨닫는다. 영혼이란 씨앗주머니 속에 든 씨앗과 같다. 여기서 씨앗주머니란 망각을 뜻한다. 즉 영혼은 몸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하게 된다. 그런데 가을날 바람만 살짝 불어도 씨앗주머니가 터지듯이,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 하나에도 망각이 터져 점차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만 씨앗주머니처럼 한꺼번에 터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하나씩 망각이 깨지는 것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깨닫는 게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역설적으로 무아 無我라고 말씀했다. 대상과는 달리 주체..

깨달음의 서 2024.10.12

위빠사나 명상이란...

위빠사나 명상이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즉 타인의 일처럼 다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빠사나 명상에서 강조하는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의 의미이다. 추위와 더위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춥다 - 덥다'라는 감각과, 추위 또는 더위에 대하여 마음에서 일어나는 '싫다 - 좋다'라는 감정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감각과 감정을 알아챈 다음 아무런 행동 없이 다만, 그것을 지켜보는 과정을 일정 시간 지속하는 것을 위빠사나 명상 내지 수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빠사나 명상의 목적은 무엇일까? 더운 여름날 모기가 물어도 손으로 내쫓지 않고 그냥 참고 앉아 있지만, 참을성을 기르는 게 위..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 김신타 산수유꽃 하염없이 피던 봄날 지인 집에서 맛본 하이볼 한잔 모처럼 전화하고 약속까지 해 햇살 가득한 가을 아침 시내버스 타고 허위허위 갔으나 사정이 생겨 일정을 미룬다는 카톡만 있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되돌아와 떨어졌다는 말에 사 들고 간 토닉워터는 어차피 있기에 동네 마트에서 위스키를 샀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하이볼 만드는 법은 인터넷으로 다시 검색해 지금 마시고 있는 중이다 혀끝의 감촉은 아니라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속삭인다 기분 좋은 게 더 좋은 거라고

신작 詩 202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