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동행 2011년 3월호》
쑥이 맨 처음 제 엽록소를 세상 밖으로 내미는 시기는 개울가에 버들개지가 터지는 때와 같다. 아니 아직 엽록소라고도 할 수 없다. 둘 다 흰 터럭들로 잔뜩 덮여 연둣빛은 거의 찾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 흰 빛 위장막은 매일 조금씩 자란다. 무채색의 양지바른 둔덕에 무언가 다른 빛깔이 눈에 띄어 얼른 달려와 보면 쑥이다. 새로 돋은 쑥 앞에서 맞는 햇살과 대기의 냄새는 이미 어제의 것들이 아니다. 봄은 그렇게 어느 날 불쑥 온다. 그런 봄을 가장 적극적으로 맞는 방법은?
그건 주머니에 창칼을 하나 넣고 슬렁슬렁 들판으로 나가는 것이다. 흙의 가장 정갈하고 부드러운 부분, 겨우내 굳어 있던 대지가 태양빛을 가장 많이 빨아들인 부분, 매운 북서풍이 직접 닿지 않고 피해갔던 부분, 쑥은 그런 곳을 용케도 알아낸다. 그래서 다북쑥이 하얗게 돋은 곳엔 어김없이 봄기운이 다글다글 몰려 있다. 곁에 앉아 있기만 해도 따스하고 돌연 핏줄 안을 콸콸 흐르는 피돌기가 감각된다. 그 어린 쑥을 하나씩 도려내는 전율을, 그 싱그러운 기쁨을 모르는 자와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 아니, 아니 조금만 양보해서 그 어린 쑥이 땅과 대기에서 필사적으로 빨아들인 향을 밥상에 올릴 줄 모르는 이와는 삶의 가치를 설할 수 없다.
엄마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그걸 아는 사람들, 양지바른 밭둑에 무언가 희끗한게 보이면 당장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그리로 달려갔다.
쑥국에 대한 김훈의 언설은 꽤나 정교하고 예민하지만 선뜻 동의할 순 없다. 된장국물 속에서 끓여진 쑥에는 이 세상 먹이 피라미드 밑바닥의 슬픔과 평화가 있다고?
쑥은 피라미드 밑바닥에 놓일지는 몰라도 여리지 않다. 쑥국이 평화롭다면 그건 겨울 볕을 오래 빨아들인 평화지 허약에서 온 평화는 아니다. 슬픔은 더군다나 아니다.
쑥국은 차라리 환희와 생명력에 가득 차 있다. 쑥은 뜯어도 뜯어도 자꾸만 돋아나니 어린 싹을 도려내는 가책에서도 우릴 완전히 자유롭게 해방한다.
게다가 엄마는 쑥국에 된장을 풀지 않았다. 된장보다 훨씬 순한 날콩가루를 다박다박 묻혔다. 콩가루를 하얗게 입은 쑥국은 봄이 왔다는 신호다. 새로운 일 년을 살아낼 대지와 태양과 바람의 에너지, 그게 쑥이란 형태를 빌려 우리 밥상 위로 성큼 올라온다. 쑥 없이 어찌 3월을 맞으랴.
김서령 님 | 《김서령의 家》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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