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창가에서

신타나 2020. 11. 18. 21:07

창가에서

신타


「까닭없이 눈물나는 날
나는 바다로 간다

파도에 얼굴을 묻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울음을 운다 울음을... 」

바다가 없는 생맥주 집
나는 투명하게 파도치는 창가에 자릴 잡는다

도시의 한복판에
이렇듯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고통과 기쁨 속에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 옆에
수년 전 내가 써놓은 글을 보다가
창밖 파도에 얼굴을 묻고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울음을 운다

이 아침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며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지고
상심한 별이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와 숙녀, 시 낭송 아래
역시 수년 전 써놓은 글을 보다가
창밖 파도에 얼굴을 묻고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울음을 운다

울음을 울다
마지막 남은 프라이드치킨 한 조각
벌린 입에 넣고는 우적우적 씹는다
서럽게 울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젖을 빨아대는 아이처럼

생맥주 한 잔 더 시켜야겠다


「 」최옥 시인 '눈물나는 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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