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과 자발적 백수
3년 전 페이스북에 올렸던 내 시에 댓글을 단 적 있는 그녀는, 지금도 광역시급에서 예술 단체 관장을 맡고 있는 현역이다. 졸업한 지 어느덧 50년이 되어가는 남녀공학 고등학교 동창 얘기다.
반면 나는 3년 전쯤부터 이미 백수다. 통장에 들어있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하기가 싫어서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게 무척 싫었지만, 물론 그래도 몸으로 살기 위해서는 육십이 넘어서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이제는 법적으로 노인인 만 65세가 된 지 벌써 두 해가 지났다. 자발적 백수가 되기로 용기를 내고 일 년이 지난 2년 전쯤에는, 정말로 생활이 궁핍해져 당시 주민센터에 가서 긴급생계지원금이라는 걸 신청해서 힘든 시기를 넘긴 적도 있다. 그러한 정보도 생계가 어려운 지역 주민에게 평일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사회복지관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찮게 옆에 앉은 사람에게서 그런 사회복지 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정부에서 시행하는 복지 정책에 의해 매달 나오는 지원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맞춰서 쓰다 보면 그런대로 생계가 유지된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회 신년 정기총회 모임 공지가 카톡방에 떴다. 여러 가지 사정상 내가 살고 있는 전북 남원에서 모임 장소인 서울까지 가는 게 어려울 것 같아, 회장단의 참석 독려 전화에도 불구하고 불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문득 영감이라는 게 떠오르는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을 충동이라고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영감이든 충동이든 아무튼 문득 떠오른 생각이 내 마음속에 있는 결심을 바꾸고 나아가 행동을 바꾼다.
동창 모임이 끝나고 서울 사는 여친 집에 들러 며칠 지내다 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그동안에도 간간이 서로 왕래하며 지내왔지만, 생각 속에서 동창 모임과 친구 집을 연결시키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동창회 참석으로 생각이 바뀌는 시기에, 3년 전 페이스북에 달린 동창의 댓글이 때마침 눈에 띄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가능하다면 이번 동창회에 참석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모임이 있는 토요일 자기가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관장인 자신이 무대에 나가 인사를 해야 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어, 저녁 식사를 하는 서울에서의 모임에 갔다 오기는 힘들다는 답변이었다. 영원한 현역인 그녀의 능력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는데, 자발적 백수보다 시간은 자유롭지 않은가 보다.
부러워하지 말자. 화장실 변기로 들어가는 물 호스가 조금씩 새는 고장이 나, 추운 겨울밤 일부러 마당으로 나가 오줌을 누다 보면 밤하늘 달과 별과 구름이 보이고 때로는, 어둠 속 눈 쌓인 풍경에 시상이 떠오르는 백수 시인도 어쩌면 영원한 현역일 수 있을 터. 자발적 백수이면서도 영원한 현역! 참으로 아름다운 조합인 것 같다.
비교하지 말자. 세상에는 다른 누가 없으며 오직 나뿐이다. 함께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심지어 신조차도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라는 주문 呪文을 1년 정도 외우다가,
('내 안의 나'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자, 바이블 시편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하다.)
"내가 신임에 감사합니다."
라는 주문으로 바꾸어 외우는 과정을 거친 뒤,
"내가 신임에 감사합니다. 내가 나임에 감사합니다."
라고 최근에 또 바뀐 나의 주문을 교대로, 매일 천 번 이상씩 외우는 게 요즘 내 일상이다.
'단상 또는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임에 감사합니다 / 신임에 감사합니다 (0) | 2025.02.13 |
---|---|
초자아적 사랑 (0) | 2025.01.31 |
청년 시절을 생각하며 (0) | 2025.01.13 |
내 안의 나 (0) | 2025.01.12 |
이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는 데 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리라 (1) | 2024.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