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나임에 감사합니다 / 신임에 감사합니다

신타나 2025. 2. 13. 11:14

나임에 감사합니다 / 신임에 감사합니다


"내가 신임에 감사합니다. 내가 나임에 감사합니다."
라는 짧은 구절이지만 느끼는 바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여기에 적힌 '나'라는 단어에 대한 느낌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너나 할 것 없이 내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를 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인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는 그래도 쉬운 편이지만, 다른 무엇과의 비교도 없이 절대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를 안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상대적인 비교 없이 절대적으로 자기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게 바로 깨달음이기도 한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신임에 감사합니다'라는 주문에 이어 '내가 나임에 감사합니다'라는 주문을 반복해서 외울 때, 지금 벌어지는 삶의 순간에 온전히 현존하는 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과거에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회상하거나, 아니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내가 아닌. 또는 바라 마지않는 미래의 현실을 상상하거나, 아니면 떠올리기조차 싫은 앞으로 닥칠 일을 떠올리는 내가 아닌.
즉 지금 이 순간 내가 신임과 동시에, 나임에 감사하는 내가 되고자 한다. 내가 신 안에 있음과 마찬가지로, 무소불위하고 전지전능한 신 神 역시 내 안에 있을 뿐이다.

무엇도 나와 떨어져 있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처럼 말이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고 나누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지구가 돌지만 눈으로 보기엔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이는 물리적 착시 현상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떨어져 있는 마음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쳐다볼 게 아니라, 함께하는 마음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눈을 그윽이 들여다볼 일이다. 떨어져 있지 않으며 마음으로 함께할 때, 상대방을 바라보는 우리 눈에는 사랑이 담길 수밖에 없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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