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235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입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종교재판을 받는 등 엄청난 탄압과 희생이 있었으며, 생명과 신체, 명예에 대한 위협 때문에 자신의 확신을 꺾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신대륙 발견이라는 인류사적 사건에는 선구자의 담대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라는, 물리적 현상이 아닌 무형의 자신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라면, 즉 대상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 대신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입니다. 선각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

깨달음의 서 2021.04.09

이전과 이후

이전과 이후 깨달음에 관한 책이나 영상 등을 보게 되면 분별 이전, 생각 이전 또는 부모미생전 父母未生前이니 하며 무엇무엇 이전이라는 표현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전의 상태를 상상하거나 거기에 이를 수는 없으며, 단지 지금 이후의 상태를 경험하거나 거기에 이를 수 있을 뿐입니다. 분별이나 생각 이전의 상태에 이를 수는 없으며, 지금 이후의 상태를 상상하거나 거기에 이르는 것만이 가능합니다. 달리 얘기하자면 정에서 반을 거쳐 합이 되는 것이지, 반에서 반 이전 상태인 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내가 태어나기 이전이든 아니면 부모가 태어나기 이전이든 관계없이, 우리는 언제나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서 갈 수 있을 뿐입니다. 이는 계곡에서 강으로 흘러온 강물이 계곡으로 다시 돌아..

깨달음의 서 2021.02.22

좌우명

좌우명 신타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며 미리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자 내가 소망하는 바가 반드시 그리고 틀림없이 이루어짐을 받아들이자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의 언행까지도 판단한 다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잘못되었을지라도 무조건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이자 일단 받아들인 뒤 다시 생각해보자 받아들인 다음 다시금 생각해보고 행동을 한다고 해도 절대 늦지 않다 오히려 후회할 일이 줄어들 것이다

깨달음의 서 2021.02.18

깨달음이 시작되다

깨달음이 시작되다 견성이란 본성을 본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는 곧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 선종에서는 견성성불이라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죠. 그러나 성불成佛이란 해탈解脫과 같은 뜻으로, 이는 견성 옆이거나 견성과 비슷한 단계가 아니라, 견성 즉 깨달음에서 시작해서 한참을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는 전혀 새로운 단계입니다. 깨달음이 몸에 체화되었을 때 그때가 바로 해탈의 순간이라고 할 것입니다. 해탈이란 우리 몸과 마음이 영혼과 함께, 삼위일체가 되는 순간이며 이러한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 바로 그것이 될 수 있음입니다. 그리고 견성(깨달음)이란 해탈의 시작이거나 출발일 뿐 어떠한 완성이 아닙니다. 방식이 돈오頓悟든 점오漸悟든 상관없이 깨달음(견성)이란, 해탈의 길에 들어섰..

깨달음의 서 2021.02.03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다 요즘 들어 주변에 지인이 하나둘씩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예전 같으면 '나도 머지않아 죽게 될 텐데'라는 생각에 다소 의기소침해지겠지만, 육십이 넘은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감정입니다. 예전 국민학교 시절 3학년 때 운동회 하는 날이었습니다. 운동장을 왔다 갔다 하던 나는 갑자기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지은 적이 있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메멘토 모리'라는 라틴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며 또한 언젠가 생이 끝나는 날이 있음을 자각하는 때가 옵니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도 보면 대개 10살 전후에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죽음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죽..

깨달음의 서 2021.01.29

실존과 환상

실존과 환상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세계 전체가 통틀어 환상이지, 그러한 현상계 안에 있는 낱낱의 존재 즉 개체가 환상인 것은 아니다. 물질계 즉 현상계 안에 있는 개체는 환상이 아닌 실존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존인 몸으로써 살아가는, 지구 등 우주에서 전체로서의 현실 세계는 한바탕 꿈이요 환상이거나 환영이다. 그런데 이를 혼동하여 우리 몸을 환영이라거나 허상이라고 해석하는, 불교 선사들이 많음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불교 경전인 금강경에 나오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과 같은 구절만 해도 그렇다. 여기서 일체유위법이란 물질이 아니라 법을 말하고 있다. 일체유위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불교 승려조차 이를 일체유위..

깨달음의 서 2021.01.26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이란 보통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꺼내오는 것이죠. 그런데 물을 길어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쉽고 빠른 방법인 우리 뇌에 저장된 기억을 꺼내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 창고인 뇌에서가 아니라,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영감이 떠오르거나 또는 화두가 타파되는 것처럼 불현듯 무엇인가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는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나 그것은 비교적 가벼운 주제인 경우에 가능한 일이며, 철학적이거나 종교적, 영성적 물음인 경우에는 후자의 방법을 대개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도 전자의 경우처럼 자신의 뇌에 저장된 기억을 더듬어 답을 찾아내려 할 때 우리는 흔히 상기 증세를 겪게 됩니다. 후자인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는 조급해하지..

깨달음의 서 2021.01.23

중도의 삶

중도의 삶 / 신타 기대도 내려놓고 포기도 내려놓을 때 우리는 희망에서도 또한 절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내가 악담하는 게 아니라 희망이라는 편에만 서면 당신은 언젠가 절망의 늪에 빠질 것이다 절망이라는 편에 선다 해도 당신은 마찬가지로 죽음의 늪에 빠질 것이다 일찍이 키엘케고로가 말했듯이 중도에 서야 한다 중도란 양변을 여의는 게 아니라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이라는 양변이 모두 합쳐진 바탕 자리다 희망과 절망 그리고 삶과 죽음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 등등이 하나로 펼쳐진 눈 덮인 광야를 홀로 걸어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를 멀리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함께하는 중도의 자리에서 삶과 선과 정의와 그리고 진실이라는 희망의 깃발 높이 세운 채 걷는 것이다

깨달음의 서 2021.01.16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독생자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독생자 신은 강요받기를 싫어한다. 우리 인간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지만, 신에게도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의 자유의지는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만 해달라고 할 게 아니라,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제 뜻은 이렇습니다",라는 형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 삶에서도 타인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만을 내세우기보다는, 타인의 뜻도 존중하면서 자기 뜻을 나타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신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방법이 바로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기대를 남김없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기대를 버린 채 축 늘어져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기대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

깨달음의 서 2020.12.18

마음을 열다

마음을 열다 마음을 연다 함은 무슨 뜻일까? 마음 앞에 채워진 지퍼를 여는 것일까? 덮어두었던 덮개를 하나씩 들춰내는 것일까? 아니다. 마음이란 게 있어서 그것을 가리고 덮어둔 무엇을 열어젖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얼기설기 쳐놓은 판단이라는 철조망을 없애는 것이다. 마음이란 텅 빈 무형의 공간이다. 텅 빈 하나의 공간을 가로 세로로 구분하고 나누어, 인류가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공간을 자기 혼자 또는 몇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작게 쪼갠 뒤 그 안에서 우리 각자가 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불안해지고 작은 공간에 나있는 빈틈을 자꾸만 메우려 든다. 해서 잠시도 편안하게 쉬지를 못한다. 잠시 동안 다른 무엇에 정신이 팔릴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늘 고통의 삶..

깨달음의 서 202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