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235

스스로 존재하는 자

스스로 존재하는 자 우리는 물질적 존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신적 존재도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적잖이 당황하는 분이 있을 것 같네요.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닌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하고요. 바로 그것입니다.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닌 게 바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을 나는 무 無라고 일컫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일컬어 공 空이라고 합니다만, 공이라는 단어는 무언가가 있다가 지금은 없어지고 공간만이 남아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즉 공이라는 단어는 빈 공간 또는 허공과 똑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는 있었다가 깨닫게 되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는 '공'이라는 단어보다는 '없음'이나 '무'라는 단어를 선호합니다. 우리는 '잠깐 동안의 있음'..

깨달음의 서 2021.11.03

애초부터 없었던 나

애초부터 없었던 나 우리는 기억 속의 나를 자기 자신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왕년에 잘 나갔었지."라고 말할 때의 나는 '과거의 나'이며, 또한 그러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우리는 '현재의 나'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의 나 역시 기억 속에 있는 나일 뿐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나는 '기억 속의 나'가 아니라 기억 자체입니다. 기억 자체, 느낌 자체, 생각 자체가 바로 존재 자체로서의 나입니다. '기억하는 나', '느낌을 느끼는 나', '생각하는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아나 참나가 아니라 '기억 속의 나'를 말함입니다. 존재 자체를 자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 속의 나'란 관념으로서의 나를 뜻하..

깨달음의 서 2021.10.29

우리는 모두 하나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처럼 내가 전체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합일된 느낌을 얻을 때,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이고, 힌두교에서 말하는 지복至福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救援이다. 전체 즉 신 또는 우주와 분리된 것처럼 느껴지거나 육체를 가진 내가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고독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며 무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苦海의 삶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地獄의 삶이다. 이와는 반대로 분리가 없어지고 합일된 느낌 또는 하나 된 느낌이 들 때 우리는 고독감이나 외로움에서 벗어나며, 이게 바로 여러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극락이..

깨달음의 서 2021.10.22

무명 無明

무명 無明 자신의 삶에 닥쳐오는 어떠한 일이든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일 때, 우리는 가없는 평안을 느낄 수 있다. 막상 일이 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실제로 일이 닥쳤을 때의 행동이 아니라, 일이 일어날 상황을 미리 가정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어떤 일이 닥쳤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상상 속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 중 대부분은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거부한다. 마음속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그게 무슨 일이든 일어난 일은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간..

깨달음의 서 2021.10.18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이 구절에서 전도몽상을 한마디로 줄이면 착각이 되며, 원리전도몽상을 쉽게 얘기한다면 착각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에서 벗어나야 착각인 줄 알지, 착각 속에 있을 땐 그게 착각인 줄 꿈에도 모르기 때문에 원리전도몽상이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또한 우리는 구경열반에 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원리전도몽상 즉 착각에서 벗어나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을 지을 때 1층을 먼저 짓고 그 위에 2층을 올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착각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까? 착각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스스로 옳다고 여겨지는 생각 또는 관념에서 쉽게 벗어..

깨달음의 서 2021.10.17

고정관념과 진리

고정관념과 진리고정관념이란 우리 의식 안에 있는 기준에 의하여, 보호받고 존중받는 관념을 말한다. 자신의 의식 안으로 받아들인 관념 중에서도, 우리는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다고 여긴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형성되는 과정을, 또한 우리는 성인이 되고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준이란 날마다 변하는 것이며, 처음엔 애써서 세웠다가 나중엔 버려야 하는 것일 뿐이다.굳게 그리고 오래 간직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순간, 기준은 고정관념을 낳는 괴물로 변하고 만다. 스스로 옳기 때문에 자신의 관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자신에게만 옳은 것일 따름이다. 모두에게 옳은 이른바 객관적 진리 따위는 없다. 객관적 진리라고 믿는 바가 곧 독단이요 고정관념이다. ..

깨달음의 서 2021.10.16

이 편한 세상

이 편한 세상길을 지나다 보면 e편한 치과, 속편한 내과 등의 간판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그러한 병원 그리고 아파트 이름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가 정말로 이 편한 세상이라면 어찌하겠는가?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치부하고 말 것인가?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한숨만 내쉬겠는가? 물론 이 편한 세상이라고 느낀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 밀려오는 절망과 두려움을 희망으로 덮으려 하거나 또는 회피라는 기제를 통해서 현실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희망과 절망 그리고 기쁨과 고통이 교차하는 세상이 아닌, 절망 속에서 희망이 샘솟고 고통 속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죽을 것 같은 절망감과 두려움을 반사적으로 그리..

깨달음의 서 2021.10.01

감정의 윤회

감정의 윤회 모든 우월감은 열등감에서 나온다. 그래서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갖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음이다. 즉 열등감이 없는 상태에서는 우월감이 저절로 사라지며, 우월감이 없다면 그의 무의식에 있는 열등감도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우월감도 열등감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충만함과 기쁨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우월감이 있는 한 열등감이 남아있는 것이며, 열등감이 있는 한 우리는 자유로움과 충만함과 절대적 기쁨을 느낄 수 없다. 기껏해야 우월감에 의한 상대적 기쁨에 빠졌다가 다시 우울해지는 감정의 윤회를 경험할 뿐이다. 감정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기쁨 즉, 깨달음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우리는 육신의 윤회를 반복해서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어떤 사실을 ..

깨달음의 서 2021.09.08

신의 사랑

희망과 절망이라는 시소를 타지 말고 희망과 절망 모두를 다 놓아버리자. 뭔가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기대를 믿지 말고 차라리,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인 신의 사랑을 믿자.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를 믿는다 함은 절대자인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기대를 믿고 자신의 기대를 생각하며 뭔가를 이루어달라고 기도하고 있음이다. 내 판단이 만인 공통 또는 만국 공통의 기준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나아가 내 판단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신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자. 조건부 사랑을 믿는 조건부 믿음이 아닌, 무조건의 사랑인 신의 사랑을 깨달아 무조건의 사랑과 무조건의 믿음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에게도 판단 기준이 있는 것처럼, 남에게도 판단 기준이 있음을 스스로 기꺼이..

깨달음의 서 2021.07.17

노자와 공자

배움(學)을 강조한 공자와는 달리 노자는 도(道)를 강조했다. 도덕경 48장에서 그는, 배움은 날마다 보태는 것이나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은 일면만을 얘기하고 있음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무언가를 배우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기규정 (또는 고정관념)을 스스로 자각해서 이를 없애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자신 내면에 있는 자기규정을 자각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방면에 선각자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젊어서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나이가 더 들어서는 덜어내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노자 - 도덕경 48장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

깨달음의 서 202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