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235

몸으로 태어난 우리 각자가 절대적인 우주 안에서 하나의 티끌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에 있는 신비한 도구이자 작용인 오감을 통해서 만들어진, 자신만의 우주에서 우리는 저마다 혼자 살고 있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산다고 착각할 때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나, 착각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착각하느냐 아니면 깨어있느냐의 차이일 뿐,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해석으로 가득한, 자기 혼자만의 우주에서 살고 있음이다. 몸은 비록 절대적인 우주 안에서 작은 티끌처럼 살아가지만, 몸을 도구로 이용하는 나는 우주 안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를 내 안에 담고 있는 존재다. 즉 물질 우주는 물론이고 형이상학적 우주까지 포함하여 모든 게 내 안에 있음이다. 다만 저마다 자신..

깨달음의 서 2020.12.17

내 안에서의 관념

내 안에서의 관념 1. 나는 지금까지 내 안에 스스로 쌓아온 관념이 옳다는 생각에 파묻혀 살아가는 동시에, 그것을 반복해서 음미하고 확인하며, 또한 내 관념이 늘 옳을 수 있도록 스스로 계속 수정.보완해왔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또한 나는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는 관념과 아울러, 가난에서 쉽게 벗어날 길이 없다는 관념을 동시에 가진 채 살아왔다. 즉 나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동시에 지닌 채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내가 상대적으로 인물이 잘생겼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경제적인 면에서의 열등감을 인물이 잘생긴 것에 대한 우월감으로 상쇄시키며 살아왔다. 역시 나도 모르게 말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반응은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 외..

깨달음의 서 2020.12.11

외부 세상은 늘 그대로다

외부 세상은 늘 그대로다 이 세상에 선과 악 또는 정의와 불의 등등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일어나는 일과 내 판단이 존재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과 받아들일 수 없는 일, 또는 인정할 수 있는 일과 인정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일어나는 일과 그것에 대한 우리 저마다 내면의 판단과 수용 그리고 거부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인 우리는 외부 세상에 정해진 무엇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외부 세상에는 마치 물과 바람처럼 다만 흐르는 현상이 있을 뿐이며, 그것을 나누고 재단하는 '판단'이 우리 내면에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일어나는 현상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정의도 아니고 불의도 아니다. 다만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우리가 분별하고 판단하여, 선과..

깨달음의 서 2020.12.07

3.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3.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ㅇ 외부의 나와 내면의 나 외부적으로 나라는 게 없을 뿐 내면적으로도 나라는 게 없는 건 아닙니다. 불교 경전을 보아도 무아를 가르치고 있으나, 석가모니는 임종 직전에 「자귀의」하라는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무아와 자귀의는 서로 대치되는 내용일까요?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석가 생존 시의 어휘가 많지 않아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아를 말할 때의 나는 외부적인 나를 말하며, 자귀의를 말할 때의 나는 내면적인 나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의문이 쉽게 풀립니다. 석가 생존 당시 힌두교의 아트만은 외부적인 나를 뜻하기에 석가세존은 이를 부정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무아론입니다. 즉 외부적인 나의 직업이나 출생에 따..

깨달음의 서 2020.09.01

감정과 관념 그리고 언어

감정과 관념 그리고 언어 선악미추 빈부귀천이 말이거나 이름일 뿐이고 실체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한테나 선악미추와 빈부귀천에 대한 감정과 관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는 없던 말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인간들의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지금과 같이 광범위한 지역에서도 모두에게 소통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다. 즉 선악미추 빈부귀천라는 감정이나 관념이 먼저 생겨났으며 나중에 어렵사리, 그러한 감정이나 관념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지, 언어 때문에 그런 감정이나 관념이 생겼다는 소위 깨달았다는 분들의 주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다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고자 만든 언어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나 관념이 안 좋은 쪽으로 더욱 고착되는 ..

깨달음의 서 2020.08.27

희망과 절망을 넘어

희망의 끈 끊어진 다음엔 절망의 끈조차 내려놓아라 1.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울에 비유하는 글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란 단순히 형상만을 비추는, 즉 흔히 보게 되는 유형의 거울이 아니라, 내면의 기억을 담아내는 무형의 거울이죠. 기억에는 시각적인 상은 물론 이려니와 청각, 후각, 미각, 촉각적인 상 그리고 기억된 상 등등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불교적으로 접근하면 '색성향미촉법'이 되며, 여기서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이를 '인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안이비설신의'에서의 '의'를 나는 '뇌'라고 해석합니다. 지금부터 2천5백 년 전인 석가모니 생존 시에는 뇌라는 지식도, 개념도 없었을 것이므로 당연히 그러한 단어도 없..

깨달음의 서 2020.08.24

나다움 또는 정체성

'나답다'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면 '자아 정체성'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런데 나다움이든, 자아 정체성이든 표현하는 단어와는 상관없이 나다움이라는 건 산봉우리라고 저는 비유합니다. 등산할 때 정상에 오른 다음에는 다시 산을 내려가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는 애써 찾은 나다움이나 정체성을 다시 버려야만 합니다. 어느 한때 정해진 나다움이라든가 정체성을 자기 자신으로 믿고 이를 고집하면 그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인 거죠. 여기에서부터 고해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다움은 계속 흘러가는 것입니다. 나다움이란 언제나 여기 있지만, 항상 변하는 강과 같은 것이죠. 강물은 흘러가지만, 강은 늘 그대로인 것처럼 말입니다. 나다움을 애써 잡으려 하지 않아도 그건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랍니다. 흘려보내도..

깨달음의 서 2020.08.01

환상

환상 환상에 대하여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환상이란 없는 것이거나 또는 없어야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다. 아니다. 환상이란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 뻔히 존재하는 것이다. 환상이란 없는 것이거나 없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감각 즉 오감으로 느껴지므로 우리는 평소에 환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오감으로 분명히 느껴지지만, 사실은 없는 것일 뿐이다. 이걸 예전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으니 꿈으로 비유했으나 지금은 이걸 VR(가상현실) 체험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스운 사실은 우리가 날마다 VR 체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 현실 세계가 바로 꿈이거나 VR 체험이라는 말이다. 실재하는 현실인데 이게 무슨 꿈이거나 VR 체험이냐고..

깨달음의 서 2020.07.24

신의 사랑과 신에 대한 두려움

신의 사랑과 신에 대한 두려움 저멀리 따로 있는 존재가 신이 아니라 신을 포함한 우리가 모두 하나입니다. 즉 우리는 신과 함께하는 하나입니다. 종교에서의 분리된 신에 대한 사랑은 사랑이 아닌 신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감정 느껴지는 것이지 두려움 속에서 무엇을 사랑한다 함은 언제 물려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뱀을 사랑한다고 부르짖는 꼴입니다. 뱀한테 물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신한테서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신은 결단코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어떠한 잘잘못도 받아들이는 신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사랑입니다.

깨달음의 서 2020.07.13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기억을 되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을 받아 태어나면서 스스로 지워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입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무엇을 깨닫거나 또는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해내는 게 아니라, 단지 스스로 기꺼이 잊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 게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라는 게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고요.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씀이 바로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보물을 찾는 놀이를 하는 것이죠. 기억을 잃어버린 후 다시 기억을 되찾는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기억을 되찾게 되면 처음으로 돌아갈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만큼 달라지는 것입니다. 유형으로서 달라지는..

깨달음의 서 2020.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