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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도지다

병이 도지다 김석기 술 마신 뒤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싶은 젊은 시절의 병이 오십 넘은 나이에 다시 도지다 스스럼없는 지인과 함께 장터에서 국밥 먹으며 마신 탁배기 한 잔에 나도 모르게 생각이 그대에게로 향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러나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이 조심스러워 들썩거리는 찻주전자 뚜껑 속 차오르는 뜨거움은 찻잔에 나누어 담고 남은 온기를 두 손에 모아 한 모금씩 가슴으로 되새겨본다 눈부시지 않게 빛나는 어머니처럼 격정적이지 않은 나타냄과 뜨겁지 않은 따스함의 사랑을

소사 생태길

소사 생태길* 김석기 천자봉에 걸린 석양 바라보며 굽이치는 산길을 걷던 그곳에 보랏빛 들국화 하나 가시처럼 아프다 새털구름 칠해진 하늘 올려다본다 오솔길 지나 숨어 있던 피라칸다 열매 붉은 12월의 오후에 열린 길마다 산 너머 걸린 햇살이 포근하다 눈부시지 않은 빛나는 어머니다 낙엽이 되어버린 떡갈나무 잎 사이 솔잎은 여전히 푸르고 바다를 향한 마음은 변함없는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길에서 해는 지고 노을만 붉다 잔돌 함께 덮인 솔잎마저 정다운 땅거미 내리는 소사 생태길 엷은 고동색 그 품에 누워, 안기고 싶다 ★ 소사 생태길 -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과 웅동동 사이에 있는 산길 (임도)

현재(現在)란

현재(現在)란 김석기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행동하는 순간 과거와 미래 사이 멈출 수 없는 경계 미래와 가까운 과거의 일부분과 과거와 가까운 미래의 일부분을 현재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서서 느낄 수조차 없는 경계 인간의 손으로 창조하는 모든 건 현재라는 순간이 이루어내는 것 과거와 미래는 영원한 죽음이며 삶은 현재라는 순간의 연속일 뿐, 끝없이 나타나고 끝없이 사라지는

詩-깨달음 2009.11.17

사막을 걷는 태양

사막을 걷는 태양 / 김신타살아가는 동안 그대와친구 되고자 함은 지나친 욕심인가요?그대의 단절에 나는바닥을 드러낸 거친 계곡이며그대의 침묵에 나는사막을 걷는 목마른 태양입니다그대가 구름이요 비라면 나는그대의 부드러운 가슴에포근히 안기는 갓난아기이며그대의 넘쳐흐르는 사랑에뛸 듯이 기쁜 어린아이입니다나는 지금구름처럼 앓고 있는 그대 위해 기도하는,비처럼 그대 사랑 쏟아지길 못내 기다리는바닥을 드러낸 계곡이며사막을 걷는 태양입니다

담배를 피워 물다

담배를 피워 물다 굳이 끊을 것도 없이 당기지 않아 한 달여 동안 피지 않았던 담배를, 어느 소설가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로 시작 되는 소설의 첫 구절을 며칠이 지난 뒤 담배를 한 갑 피우며 고민 고민 끝에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바꾸었다는 그가 에세이로 쓴 글을 읽고 나서 나도 담배를 피워 문다 두 사람이 한 차에 타고 일하는 현장에서 젊은 동료 직원이 차안에서 단둘이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수정, 각색하여 사무실 담당 계장에게 일러바치고는 나에게 한다는 소리가 그러게 제가 이 직장에서는 말조심하라고 했지요 라고 말하 는 그 입을 바라보며 나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김석기 2009

詩-그리고 또 2009.11.04

삶의 시간

삶의 시간 김석기 소주나 한 잔 하고 이따금 맥주도 한 잔 하며 삶의 시간을 채운다 가끔은 먹고 사는 일에 참고 견디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터보다 자존심을 먼저 택하기도 한다 더러는 다른 이의 삶에 나도 모르게 눈물짓지만 때로는 분노하며 내 삶을 꾸려 나간다 주어진 삶의 시간을 채워야만 설레건 설레지 않건, 두렵건 두렵지 않건, 죽음이라는 황홀한 문은 비로소 열린다 죽는 순간까지 욕망의 끈 부여잡은 채 꼭 잡은 손 놓칠까 봐 바르르 떠는 어둠의 색깔로 삶의 시간을 채우기 보다는 죽음까지도 기꺼이 따르는 생명의 빛으로 삶을 채울 일이다 생명과 물질이 하나 되어 생명체가 되고 나뉘어 생명과 물질을 이루노니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삶과 죽음으로 영원하리라

詩-깨달음 2009.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