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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하여가

신 하여가 / 김신타 일출에 가슴 뛰고 노을은 황홀하며 한낮엔 한가하고 꿈속도 꿈결이니 태어나 감사한 마음 하나로도 족하다 힘겨워도 지나가고 즐거워도 지나가며 오르막 있다 해도 능선길 또 있으니 마루금 오른 땀방울 산바람에 시원하다 사는 건 연극이요 죽는 건 막간이며 살아도 살아있고 죽어도 살아있으니 깨달음 그 위에 서서 충만한 기쁨이여

모정

모정 신타 나 어릴 땐 모조리 정자라고 했는데 타향 객지에선 모나게 지은 정자라는 뜻으로 모정이라고 부른다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처음엔 낯설더니 한 삼 년 지나고 나니 인제 입에 붙는다 나한테 내 생각이 옳은 것처럼 그에게는 그의 생각이 옳음을 서른 고개 넘고 나서 다시 한 삼십 년 지나고 나니 이제사 겨우 깨닫는다 내게 옳은 것일 뿐 그에게는 그의 옳음이 있다는 사실 모정이 낯설게 들리다가 이제는 입에 붙는 것과 같다 내 고향 부여 떠나 이리저리 떠돌던 몸 춘향골 남원에서 지리산 뱀사골 계곡 돌아 요천*수에 발 담그고 나니 세월이 흘러서인지 때가 되어서인지 '없음'인 내가 곧 '영원한 있음'이라는 '텅 빈 침묵'이 곧 '나'라는 깨달음 *요천 - 남원을 가로질러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

詩-깨달음 2021.09.06

구월의 매미 소리

구월의 매미 소리 / 김신타 가로수 끝에 매달린 추억 간직하고 싶어 펄쩍 뛰어오르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아가씨 연인과 함께 토요일 오후를 걷는다 도시의 텅 빈 주말 홀로 걷는 나는 문득 너를 떠올리고 휴대폰이 나도 몰래 너를 일깨운다 구월 초순의 한낮 매미 소리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멋울림* 음악은 사랑을 부르고 서로는 늦은 오후를 약속한다 가로수 잎마저 햇빛에 반짝이는 설레임은 이미 지난 봄날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해도 우리에겐 연륜이 담겨 있다 미니스커트 속 젊음은 아닐지라도 이슬에 젖어 촉촉해진 청춘이 있다 하늘은 다시 노을빛으로 타오르고 너와 나 가을밤의 온기를 껴안는다 * 멋울림 - '컬러링'의 한글 순화용어 [춘향문학 제 4집(2021년) 발표]

그 백구의 살신성인

그 백구의 살신성인 홍 준 경 전북 임실에 가면 오수獒樹라는 읍내가 있지 한 생원이 개 동무하고 인근 잔칫집 다녀오는 길, 낮술 취해 꽃잠 든 사이 쥔 양반 둔덕 곁에 봄 불이 몽개몽개 사르르 번져 주인이 타 죽게 된 거야, 동행했던 백구가 도랑물 몸에 적셔 쥔 양반 목숨 구하다 힘이 다해 그만 죽고 말았다지, 그 양반 잠깨 일어나 그 사실 알고 충견얘기 전하려 지팡이 비목 세워 장례를 치러 줬대, 그리하여 ‘개 오자에 나무 수야’ 비목에 움이 튼 게지 요즘은 개만도 못한 놈들 판치는 요지경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