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

홀로서기 / 서정윤

신타나 2009. 1. 18. 23:16

       「 홀 로 서 기 」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는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밭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 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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