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 넝쿨 아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신타나 2012. 8. 19. 13:01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사람들은 누구나 오래 살고, 높은 관직에 오르고, 갑부가 되며... 등등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욕심을 부린다. 그 욕심이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향할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갖기 원하고 더 높은 곳을 추구함은 모든 인간이 다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욕구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운명을 예언하는 사람을 찾아가 자신의 사주나 관상을 보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는지 궁구하며, 요행을 바라기도 한다.

   

과연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사주를 가지고 있으며,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야 하는가?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생을 개척할 것인가? 여기 좋은 본보기의 사람이 있다. 명나라 때 학자 원요범(袁了凡 1533∼1606)은 어린 시절 도교의 도사에게 미래를 예언 받았다. ‘과거에 14등으로 합격하고, 관리로서 어떤 지위에 오르며, 자식을 얻지 못하고, 53세에 죽을 것이다.....’

   

도사의 예언대로 그는 과거에 합격했고, 관리로서 지위에 올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원요범은 인생은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철저한 운명론자가 되었다. 어느 날, 운곡雲谷이라고 하는 스님을 만났는데, 스님은 원요범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사람의 운명은 자신 스스로 만드는 것이며, 행복도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업설이라고 합니다. 또한 남을 돕는 등 선한 일을 많이 해서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어제 일은 과거사로 벌써 사라져 버렸으며, 오늘과 미래에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운명을 개척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원요범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불교신자로서 인생을 살기로 하였다. 그는 도사가 말한 관직이 아니라 더 높은 관직까지 올랐다. 아들도 낳았으며, 53세가 되어도 죽지 않고 69세까지 살았다. 원요범은 죽기 전,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침으로 삼을만한 글을 아들에게 남겼는데, 바로 이 책이 <음즐록>이다.

 

첫째, 스스로 모범이 되어 남들에게 선한 일을 하도록 권장하는 것.

둘째, 진심으로 남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

셋째,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동정하고 도와줄 것.

넷째, 남들이 공덕을 쌓도록 권장할 것.

다섯째,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줄 것.

엿섯째, 공공의 복리를 위해 자비를 실천할 것.

일곱째, 남들의 행복을 위해 재산을 베풀 것.

여덟째, 참된 가르침을 지니고 보호할 것.

아홉째, 어른을 공경할 것.

열째,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보호할 것.

 

따뜻한 인간애가 담긴 어록이다. 전체적으로는 선을 행해 공덕을 쌓으라는 뜻이지만, 이런 공덕으로 인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든지 운명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또한 얼마든지 인생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행복이란 참된 공덕이 쌓여야 함이요, 진정한 삶을 위해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가까운 피붙이라도 나를 대신해 살아줄 수 없다. 사람은 주어진 팔자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어떻게 개척하느냐, 어떤 공덕을 쌓였느냐에 따라 값진 삶이 될 것이다.

올림픽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특히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은 운명대로 메달을 딴 것이며, 가만히 앉아서 4년을 기다렸겠는가. 땀과 눈물의 대가를 치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2012.08.14.자 교차로 신문 '정운 스님'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