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237

내려놓음에서 내맡김까지

내려놓음에서 내맡김까지 삶이란 행복의 연속이다. 고해의 삶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다만 이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깨달은 뒤에 가능한 느낌이기는 하다. 완전히 깨달은 뒤란, 견성을 출발점으로 해서 해탈에 이른 때를 말한다. 견성이란 깨달음의 시작점이고 해탈이란 견성의 종착점이다. 그런데 해탈이 견성의 종착점일 뿐 깨달음의 종착첨인 건 아니다. 해탈이란 끝이 없는 영원한 기쁨이다. 여기서 견성을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내려놓음이며 해탈은 내맡김이다. 나를 내려놓을 때 즉 아상에서 벗어날 때부터 자신에 대한 앎이 시작되며, 자신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고 난 다음 그러한 자신을 신에게 내맡기는게 바로 내맡김이다.

깨달음의 서 2022.01.02

구원과 해탈

구원과 해탈 과거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고해 苦海의 삶에서, 과거에 대한 만족과 미래에 대한 감사 속에서 신 神과 함께 하는 기쁨 충만한 삶으로의 전환! 이게 바로 구원이며 해탈이다. 구원과 해탈이란 죽은 뒤에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 몸을 가지고 있는 지금 여기서 얻을 수 있고 또한, 지금 여기서 얻고자 우리는 몸을 가진 채 지구상에 애써 태어난 것이다. 수용 즉 받아들임이란 내게 다가오는 안 좋은 것을 거부하지 않음이며, 또한 내게 머물다가 사라지는 좋은 것을 붙잡지 않는 정신작용 (또는 마음)이다. 즉 회피와 집착이라는 현실 부정의 욕구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신의 사랑과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에서 나오는 정신작용이다. 이렇듯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나를 위한 신의 사랑과 축복으로..

깨달음의 서 2022.01.02

인간이 신에게 잘못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신에게 잘못 할 수 있을까? 같은 인간에게야 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신에게도 인간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만약 인간이 신에게 잘못하는 게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잘못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인간에게 범한 잘못을 신이 처벌한다면, 그건 어린아이 싸움에 어른이 나서서 어느 한 쪽을 처벌하는 것보다 더 치졸한 짓이 아닐까? 신이 인간의 행동에 화를 내고 분노하여 벌까지 내린다면, 그건 신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전지전능은커녕 무능의 소치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개인이든 민족이든 어느 한 쪽 편을 들어 인간을 처벌한다면, 신이 인간과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인간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처벌해주는 무소불위한 힘을 가진 존재 즉 신을 만들었다가, 남이 아닌 오히려 자신..

깨달음의 서 2022.01.02

믿음의 굴레

믿음의 굴레 믿음이란 나를 구속하는 굴레일까? 그것은 굴레일 수도 있으며 오히려 굴레에서 벗어남일 수도 있다. 믿음이란 억압이 될 수도 있고 자유가 될 수도 있음이다. 그런데 그것이 억압인지 자유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무엇에 대한 믿음이든지 관계없이 믿음이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면 그건 자유이며, 처음엔 편안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진다면 그건 억압이다. 믿음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굴레가 되어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여러 번 보아왔다. 한때 로마 대제국을 등에 업고 유일신을 부르짖던 기독교가 그러했으며, 한때 많은 지성인을 현혹시켰던 공산주의 사상이 그러했다. 다른 종교나 다른 사상을 허용하지 않는 유일신 신앙 또는 유..

깨달음의 서 2022.01.02

무아 無我

무아 無我 무아 또는 깨달음이란, 의식이 확장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몸과 분리되는 것도 아닙니다. 무언가가 남아있거나 또는 무언가와 분리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나와 남 또는 나와 상대라는 둘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닫는다는 건 아무것도 없음입니다. 내가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없음조차 느껴지지 않으며 그냥 평소처럼 생활하면서도 텅 빈 느낌! 눈에 보이는 것도 그대로이고 생활하는 것도 그대로이지만, 온 우주가 텅 빈 느낌입니다. 다만 이것을 머리로 즉 생각으로 느껴보려 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느껴질 것입니다. 시절 인연이 우리 모두에게 이른 시일 안에 다가오길 바랄 뿐입니다.

깨달음의 서 2021.12.31

단지불회 시즉견성 2

단지불회 시즉견성 但知不會 是卽見性 보조 국사 지눌 스님의 수심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만, 나는 이를 기존과는 다르게 해석할 것입니다. 기존의 해석은 불회(不會)를 '모름 또는 알지 못함'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이를 글자 그대로 '모으지 않음'으로 해석하고자 합니다. 단지불회 시즉견성이란, '모으지 않고도 다만 아는 그것이 곧 견성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으지 않는 것일까요? 다름 아닌 우리가 과거에 듣고 보고 배운 경험이나 지식을 끌어모으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을 의식적으로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지각하게 되거나 또는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흔히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끌어모으게 됩니다. 그런데 견성을 하게 되면 이와는 달리 끌어모으지 않을 수 있..

깨달음의 서 2021.12.31

유형적 무형

유형적 무형 감각적 이미지 즉 상 像은 유형이면서 동시에 무형이다. 또는 유형적 무형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상(이미지)이므로 유형적이지만, 그것이 우리 관념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무형적이다. 이처럼 우리 몸이 지니고 있는 능력은, 이성적으로 판단해 볼 때 불가사의한 면이 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현상이다. 유형이 무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이, 유형으로 감각되는 무형인 것으로 유추할 수도 있음이다. 이게 바로 선각자들이 설파하는 바인, 현실 세계가 꿈과 같은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와 일치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유형의 사물이 무형의 관념인 이미지 또는 상으로 나타날 수 있음과 같이, 거꾸로..

깨달음의 서 2021.12.24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은 어른의 정신 상태에서 아이의 그것으로 돌아가라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육체적으로 허물을 벗는 것도 아니며, 정신적으로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상태를 뜻한다. 자신에게서 벗어난다는 말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스로 자신이라고 생각해왔던 관념 속 정체성을 물처럼 바람처럼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붙잡아둘 게 하나도 없다.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상대적인 자신이 정신적으로 죽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죽는다는 것은, 두려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껴안는 것이다. 요즘 같은 때라면,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조차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중환자가 되고 육체적 ..

깨달음의 서 2021.12.16

자기중심적인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기적이기 때문에, 즉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기적인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이기적이지 않은 이타적인 사람이란, 미친 사람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자기중심적이 아니며 그렇다고 타인 중심적이지도 않은, 그야말로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중도를 걷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게 이기적인 행동이다. 이기적인 행동이든 이타적인 행동이든 그 모든 건 자신을 위해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가난하고 마음이 힘든 사람을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한다고 해서 그게 이타적인가? 스스로 기뻐서 행하는 게 아니라면 위선적인 행동일 뿐이며, 스스로 ..

깨달음의 서 2021.12.14

열매보다는 씨앗이 먼저

열매보다는 씨앗이 먼저 무형의 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무형의 나 혼자 명상에 빠지거나 환희감 속에 젖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겐 때가 되면 울며 보채는 어린아이 같은 몸이 있으며, 사춘기 소년·소녀 같은 마음이라는 가족이 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도 욕구 충족과 즐거움 그리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불교에서 말하는 공 空을 깨달으면 무엇합니까?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거나, 남들 보기 창피하다고 아우성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무형의 존재임을 깨닫고 난 뒤에도, 나는 몸과 마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깨달은 뒤 나의 소망은 다시 경제적 여유와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무형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우주에서 나를 위해 봉사하는 몸과 마음을 위해서 말입니..

깨달음의 서 202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