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237

영적 진화와 깨달음

영적 진화와 깨달음 유형과 무형을 통틀어 온 세상에 오직 신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은 일부러 잊어버렸다 해도, 그러한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우리 인간이 곧 신이다. 이 세상에 오직 신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존재라면, 그가 바로 신 아니겠는가? 고로 '인간이 곧 신이다.'라는 논리가 성립하는데, 다만 여기서 얘기하는 인간은 육체를 가진 유형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몸과 함께 살아가는 무형의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신은 영원한 존재이므로 소멸이라는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육신으로서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결코 소멸되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동시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인 것이다. 육신과 함께한다고 해서 육신이 곧 나인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가..

깨달음의 서 2021.12.11

무화 無化

무화 無化 진리란 현실 세계에 있는 어떤 대상이나 이론 또는 학설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 무화 無化 되었을 때 비로소 내면에서 저절로 인식되는 앎이다. 여기서 「스스로 무화된다 함」은 물질인 우리 몸이 무화되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스스로 아무런 주장을 내세우고 싶지 않은 마음 상태를 말함이다. 신에게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며, 내면에서 일어나는 관념 또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의 의식이 무화된 것이다. 이때 우리는 텅 빈 우주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자신의 몸을 포함하여 우주 전체가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든다.

깨달음의 서 2021.12.11

깨달음 공부

깨달음 공부 1 우리가 의식 속에서 자신을 생각할 때는, 자신을 떠올림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이게 바로 상대계를 사는 보통의 우리 모습이다. 자기 혼자 내면의 우주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의식 속에서만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을 고해 苦海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또한 이게 바로 '나'라는 자신은 없고 '남'이라는 타인만 존재하게 만든다.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타인과 비교하는 삶을 살 뿐이다. 타인과 비교하는 삶에는 나 자신은 없고 타인만이 있음이다. 그래서 만나는 대상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파도처럼 요동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다..

깨달음의 서 2021.12.01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잠이 깬다는 건 의식이 의식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일 즉,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이다. (의식 밖을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식이란 오감을 통해 얻은 감각과, 감각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생각·감정 등이 하나로 합해진 것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의식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자신의 느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좋은 느낌일 때는 기꺼이 의식 속으로 들어오면서 '기분 좋다'라든지 '잘 잤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몸이 찌뿌둥하다든지 마음이 힘들 때는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의식 속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의식 속에 있지 않다고 스스로 세뇌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몸과..

깨달음의 서 2021.12.01

자각의 힘

자각의 힘 우리는 신이 될 수 있거나 또는 될 수 없는 게 아니라, 신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왜냐하면 능력과 본질에 있어서 인간은, 신의 프랙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프랙탈이 뜻하는 바처럼 눈에 보이는 형상이 서로 닮은 게 아니라, 내면적인 능력이나 본질에 있어서 닮은꼴입니다. 또한 자각 또는 깨달음의 힘은 우주를 창조하는 능력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는 말은, 자신이 무엇인지를 자각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우주에서 자신이라는 게 없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사람의 우주에는 저마다 자기 혼자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우주라는 장소에 집합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우주에 저마다..

깨달음의 서 2021.12.01

바보처럼 보이는 신

바보처럼 보이는 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생각은 존재한다.'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나'라는 개념보다는 생각 자체가 더 근원적이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고로 '생각'이 '나'라는 존재의 한 부분이라기보다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이 '생각'의 한 부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모든 개념은 생각 또는 의식이 존재한 이후에야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가 아닌 직관으로 자신이 존재함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가능하겠으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논리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위 명제는 첫째, 의식이 없..

깨달음의 서 2021.12.01

없음의 있음

없음의 있음 나라는 건 없음의 있음이다. 없음이기에 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내가 존재한다는 말. 말장난이 아니라 참으로 깊이 있는 내용이다. 내 안에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것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안에 있는 그것이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더 확장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만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들이 더러는, 깨달음도 없고 깨달은 사람도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우리가 늘 갇혀 있음을 경계하려는 뜻에서 하는 말일 뿐, 깨달았다고 해서 내가 없을 수는 없다. 깨달음도 있고 깨닫지 못함도 있으며, 깨달은 사람도 있고 깨닫지 못한 사람도 있다. 다음과 같은 비유가 적절할 것이다. 천동설을 믿다가..

깨달음의 서 2021.11.30

무형의 실상

무형의 실상 우리 눈을 비롯한 오감으로 지각되는 것은, 유형의 실상이 아니라 무형의 허상이다. 유형이 아니라 무형이며, 허상이거나 환영인 것이다. 유형의 실상이 빛 또는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우리 몸에 있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거쳐 인식되기 때문이다. 사물의 본질은 유형의 실상이지만, 우리에게 인식될 때는 무형으로 인식된다. 즉 유형의 실상이 우리 눈에 와닿고 뇌에 담기는 게 아니라, 무형인 빛으로 와닿고 빛에 의한 상으로 바뀌어 담긴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유형으로 인식되는 것은,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착각일 뿐, 우리 의식 안에는 무형의 허상으로 담겨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유형으로 존재하는 실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마치 환영이거나 허상이었던 것..

깨달음의 서 2021.11.23

인간이 사고의 틀을 갖고 있다는 칸트의 이론에 대한 비판

방안에 들어와 갇힌 파리를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방문을 열어준다. 그러나 파리는 계속 창문에 헤딩하고 부딪친다. 파리의 두뇌에는 어두운 방문 쪽이 아닌 밝은 창문 쪽으로 날아가야 해방된다고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구리가 있다. 그의 코앞에 죽은 파리가 있다. 그러나 개구리는 움직이지 않는 파리를 먹지 않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개구리는 먹지 않고 굶어 죽는다. 개구리의 두뇌에는 움직이는 곤충만 먹이로 인식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리와 개구리는 왜 세상을 그렇게 인식하고 그렇게 이해하고 그런 식으로 엉터리로 볼까? 인간은 파리와 개구리와 다를까? ​철학자 칸트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순수이성비판’을 통해서 자세히 밝혔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도 파리와 개구리와 다르..

깨달음의 서 2021.11.20

본질과 실존

본질과 실존 ㅡ 실존은 추론이다 ㅡ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실존은 분명 본질에 앞서지만, 본질을 모르는 상태에서의 실존은 공허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중세 시대처럼, 실존을 부정하고 본질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강요하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불교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실존하는 모든 대상을 환영이라거나 허상으로 보는 견해에도 이제는 동의할 수 없다. 사실 실존이란 하나의 추론에 해당한다. 환영이나 허상이 아닌 추론인 것이다. 우리가 실존 또는 존재에 대하여 단지 추론할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물자체는 우리가 알 수 없고 다만 사유될 수 있을 뿐이라고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칸트의 물자체가 무슨 뜻일까? 다름 아닌 실존을 다..

깨달음의 서 202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