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237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우리 몸을 비롯한 지상에 있는 대상이 환상인 게 아니라, 대상을 지각하는 몸과 마음을 나라고 착각하는 게 곧 환상이다. 오감에 의해 지각되는 몸이나, 몸을 통해 지각되는 마음을 나라고 믿는 우리의 관념이 곧 환상이요 허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감으로 지각되는 몸과, 몸과 함께하는 의식에 의해 지각되는 마음을 오랜 세월 동안 나 자신으로 생각해 왔다. 저녁 어스름에 집에 찾아온 손님을, 우리는 어쩌다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보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손님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지, 그 손님이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몸이나 마음을 우리 자신인 것으로 생각하는 게 환상이지, 우리 몸을 비롯한 지상에 있는 물리적 대상이 환상인 것은 아니다.그런데 붓다..

깨달음의 서 2024.10.21

1회용 몸과 영혼의 관계

1회용 몸과 영혼의 관계 '나'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우리 눈에 뻔히 보이는 몸과는 어떤 관계일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물론이고 나 자신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영혼, 그 영혼의 도구가 바로 우리 저마다와 함께하는 몸이다. 천상과 지상에서 동시에 활동할 수 있지만 유형으로 드러날 수는 없는 무형의 영혼을 대신하여, 단지 지상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유형의 몸을 신과 함께 우리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1회용이다. 모든 식물과 동물이 다 그렇지만, 우리 몸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없는 1회용일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1회용인 몸을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몸의 죽음이 두렵고 따라서 이를 거부하게 된다. 그러나 몸이 죽어 없어진다고 해..

깨달음의 서 2024.10.14

전체 (절대. 근원. 순수. 본래)란?

전체 (절대. 근원. 순수. 본래)란? 전체 (절대. 근원. 순수. 본래)란 분리된 나를 벗어난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분리된 작은 나'가 아닌 '큰 나'라거나 또는 전체이거나 절대 등을 머릿속으로 상정한다면, 그것 역시 전체가 아닌 또 다른 대상이자 부분일 뿐이다. 아무리 큰 우주 전체를 상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체이거나 절대, 근원, 순수, 본래가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전체란 커다란 무엇이 아니라, '작은 나'에서 벗어난 상태를 뜻한다. 우리가 생각으로 아무리 큰 것을 떠올릴지라도 그것은 한계와 제한을 갖게 된다. 그래서 전체라는 건 '큰 나'가 아니라, 단지 '작은 나'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과 함께하는 '작은 나' 또는 '개체로서의 나'란, 우리의 내면에 존재..

깨달음의 서 2024.10.12

무엇이 깨닫는가?

무엇이 깨닫는가?자신이 무엇인지를 무엇이 깨닫는가? 영혼이 깨닫는다. 영혼이란 씨앗주머니 속에 든 씨앗과 같다. 여기서 씨앗주머니란 망각을 뜻한다. 즉 영혼은 몸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하게 된다. 그런데 가을날 바람만 살짝 불어도 씨앗주머니가 터지듯이,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 하나에도 망각이 터져 점차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만 씨앗주머니처럼 한꺼번에 터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하나씩 망각이 깨지는 것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깨닫는 게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역설적으로 무아 無我라고 말씀했다. 대상과는 달리 주체..

깨달음의 서 2024.10.12

주체와 전체

주체와 전체 주체는 오직 하나뿐임을 알라.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인 것이다. 지상과 천상에서 유일하게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그러한 존재가 바로 신이기에 유대교를 비롯한 많은 유일신 종교가 탄생했다. 힌두교와는 달리 신이 없다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해서 중생처럼 많은 부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중생이 하나의 부처로 귀의하는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 과거에서부터 많은 부처가 있었다는 사상은 힌두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힌두교에 많은 신이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도 많은 부처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싫어하면서도 닮아 가는 게 우리 인간사(人間史)이다. 전체란 크기가 없다. 따라서 전체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한..

깨달음의 서 2024.10.10

색즉시공이 맞는 얘기일까?

몸 마음이 나라고 믿어오다가 깨달음을 얻어 내면에 있는 '허상의 나'로부터 벗어났을 때, 세상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외부 현실이 아니라 내면 의식일 따름이다. 그것을 우리는 내면 의식에서만이 아니라 외부 현실인 물질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것처럼 '색즉시공'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인 색 色이 공 空한 게 아니라, 내면에서의 현상만이 텅 빈 공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나'라는 존재가 개체이며 따라서 전체와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오다가, 자신이 개체가 아닌 전체임을 깨닫고는 개체로서의 자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허상의 울타리(=나)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즉 분리된 개체란 없고 전체만이 있다는 ..

깨달음의 서 2024.10.09

깊이 있는 바다, 노년의 삶

깊이 있는 바다, 노년의 삶 나라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물리적인 몸이 아니다. 나는 내면에 있는 무형의 존재이다. 겉으로 보이는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몸일 뿐이다. 몸이란 내가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에 존재하기에,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나와 함께하는 몸을 나 자신으로 오인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왔다. 그러나 내가 많은 시간을 몸과 함께 보낸다고 해서 몸이 곧 나인 것은 아니다. 내면에 있는 무형의 내가 주인이며 몸과 마음은 하인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깨달음이고 거듭남이다. 나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를 일부러 망각한 채 지구상에 태어나, 몸과 함께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깨달음의 서 2024.10.09

일심동체 一心同體

일심동체 一心同體 깨달았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나'라는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다. 깨닫고 나면 내 몸이 없어지고 늘 오르내리던 산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몸 마음과 일심동체라고 믿어왔던 허상의 내가 없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허상의 내가 없어지더라도 실재하는 무형의 나는 여전히 그대로다. 몸 마음과 일심동체라고 믿어온 허상의 나는 눈에 보이고 오감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즉 실재하는 무형의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감으로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에, 허상의 내가 사라지고 나면 몸을 비롯한 모든 물질적 대상 역시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착각을 다른 사람도 아닌, 허상의 나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즉 무아를 깨달은 선각자들이 예전부터 해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

깨달음의 서 2024.10.09

깨달은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깨달은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깨달았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또는 구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한테 닥쳐온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자신이 행복하다거나 또는 불행하다는 등의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물리적인 구분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구분을 하지 않음이다. 자기한테 이익이 되고 안 되고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살아온 자기 경험이나 기억 등에 따른 두뇌 작용에 의해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울림에 따라 의사를 결정한다. 지금 당장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것 같은 일이 있어도 내면의 울림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이것이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이일 뿐 그 나머지는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 행•불행을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깨달음의 서 2024.10.09

시작이 있을 뿐 끝은 없다 2

시작이 있을 뿐 끝은 없다 2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끝이 없을 뿐 시작은 있다. 시작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무언가를 깨닫게 되면 그 깨달음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깨닫기 이전에는 없었던 세계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세계가 기존의 세계와 중첩되어 새롭게 시작된다. 기존의 세계와 중첩되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이다.그리고 깨달음 중에서도 가장 큰 깨달음인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나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듭남과 다르지 않다. 이 물질계에서 오감으로 느껴지는 몸, 그리고 의식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깨달음의 서 202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