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237

전체 안에서 하나

내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지 또는 내가 어느 나라에 살든지 하나도 자랑스러울 게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끄러울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분리된 개별자가 아니라 전체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몸에 비유한다면 팔을 구성하는 세포와 다리를 구성하는 세포가, 서로 자신의 팔 또는 다리에 대하여 우월의식 또는 열등의식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다같이 세포일 뿐인데 어디 부위에서 생성되어 활동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자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지의 극치일 뿐입니다. 그보다 더 어리석을 수는 없습니다.

깨달음의 서 2024.02.18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내 안의 나'라는 제목의 책에 나오는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라는 구절에서 '고요히 있으라'는 말은 '신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말라'라는 뜻임이 오늘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몸과 마음이 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나아가 우리의 자유의지조차 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신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이 가진 능력과 신에 대한 충성심 등등을 신 앞에서 내세우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소심하게 살라는 게 아니라, 내면적으로는 당당하되 외부적으로는 겸손하라는 얘기다. 왜냐? 우리는 개별적인 단독자가 아니라 전체 안에서 단독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전체 안에서 '나'이기 때문에 전체 ..

깨달음의 서 2024.02.06

무상 고 무아 (無常 苦 無我)

무상 고 무아 (無常 苦 無我) 불교 경전에서는 석가모니가 '무상 고 무아'를 설파했다고 합니다. 저는 예전에 '무상'과 '무아'를 설파했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고'라는 것은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알 수 있는데 이걸 뭐 설파할 게 있느냐고 질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아래 연결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이 세상(此岸)이 아닌 저 세상(彼岸)은 '고 苦'가 아닌 '낙 樂'이기에, 이 세상은 일부러 고생스런 세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고생만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밀물이 있고 썰물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즐거움도 있는 세상으로 말이죠. https://youtu.be/Q6IMcVWkVUg (참고로 예전에 올렸던 글을 복사해서 여기 다시 ..

깨달음의 서 2023.07.02

무아 無我

무아 無我 오늘 문득 내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내려놓음이자 내맡김이라는 생각과 함께. 구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마음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나란 내 생각 안에 있는 나를 말함이다. 어쩌다가 나를 내려놓고 보니 (즉 나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보니), 그동안 내가 나를 붙들고 있었음이 느껴진다. 이 모든 게 신의 뜻이자 신의 사랑이다. 나의 자유의지가 바로 신의 뜻이요 신의 사랑이니 말이다. 내가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신의 뜻이요 신의 사랑이라면 내가 내세울 게 무엇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두려워할 게 무엇일까? 무엇도 나를 내세울 게 없고 무엇도 내가 두려워할 게 없다. 그저 기쁘면 기뻐하고 기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으면 될 ..

깨달음의 서 2023.05.22

나를 안다는 것

한마디로 우리의 삶이란 '나를 알아가는 것'이며 따라서 삶의 목적은 '나를 아는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 청년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으나,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굳이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 흔히 얘기하는 이른바 깨달음이라는 단어도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아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깨달음이란 마라톤 완주 테이프를 통과하듯이 어느 한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고 깨달아지는 게 아니라 평지에서 높이를 더해 봉우리가 되고 산이 되며 얕은 물이 깊이를 더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그렇게 깨달음이 쌓여가는 것이다. 깨달음이 쌓여갈수록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하여 ..

깨달음의 서 2023.05.22

나의 스승들

한밤중에 나와 별 관계 없이 지나가는 차와 운전자에게는 무관심하면서도, 나와 관계있는 사람에게 나는 무관심을 지나 때때로 분노하곤 한다. 그러나 나와 관계있는 그 사람들 모두가 내게 고마운 분들이다. 나를 기쁘게 하기도 하고 분노하게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것이 지구상에서 그들의 역할임을 나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를 화나게 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한다. 그들이 모두 나를 깨닫게 한 스승들이기 때문이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두가 나의 스승임을 깨닫는 지금 이 시간, 기쁨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흐른다.

깨달음의 서 2023.04.30

깨달음의 소리

1. 소리라는 게 사실은 귀에 있는 고막을 지나야 소리로 변하는 것이지 그 이전에는 공기의 진동일 뿐이며, 형상과 색상도 빛이 눈에 있는 망막을 지나야 비로소 형상과 색상으로 인식되는 것이지, 그 이전에는 빛의 반사일 뿐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시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을 우리가 능동적으로 보거나 듣는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보이거나 들리는 것이라는 사실이 시일이 지나면서 문득 자각되었습니다. 생각이나 감정조차도 저절로 생기거나 일어나는 것이지, 우리가 능동적으로 생각하거나 감정을 일으키는 게 아닙니다. 2. 우리는 흔히 자신 앞에 펼쳐진,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몸을 비롯한 현실의 물질세계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실제로 벗어나야 할 대상은 보이지도 않고 감각되지도 않는 관념의 세계입니다. 달..

깨달음의 서 2023.04.22

수용이란

수용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이든 좋아하지 않는 것이든, 모두를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자세이다. 그리고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악은 멀리하고 선은 가까이하는 게 아니라,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과 악이란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 바깥 즉 세상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객관이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진리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객관이란 역사를 통틀어 결코 없었다고 나는 알고 있다.

깨달음의 서 2023.04.11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표현을 이제는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싶다. 똑같이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한자로 된 문장을 한글로 다시 바꾸어 해석해야 하는 부담은 덜 수 있을 것이다. 있음의 없음과 없음의 있음!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기에 한자보다 오히려 더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천천히 음미해 보라. 우리는 지금까지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고정관념에 젖어 생활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감각되는 유형의 것들은 모두가 변하고 언젠가는 모습조차 사라진다. 이게 바로 '있음의 없음'이다. 또한 없다는 것의 개념을, 없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없다는 것 즉..

깨달음의 서 2023.02.24

텅 빈 기억

텅 빈 기억 '기대라는 희망'을 포기하고, '포기라는 절망' 또한 포기하는 것.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 즉 양변을 여의는 것이며, 내려놓음이자 내맡김이다. 자신이 무엇을 한다거나 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바이블에 나오는 다니엘 이야기에서 다니엘이 사자굴에 넣어졌을 때 그가 희망을 가졌겠는가? 그 순간 그는 희망을 버리고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긴 것이다. 다만 평범한 우리들처럼 희망 대신 절망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절망조차 기꺼이 내려놓고 오직 신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긴 것이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말이다. 희망도 절망도 모두 버릴 때 즉 포기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대라는 희망을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포기라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포기..

깨달음의 서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