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52

쓰레기에게

쓰레기에게 신타 청소하면서 문득 든 생각 하나 그대 모습 그대로 고맙습니다 그대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 내가 지금 모른다 해도 그대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귀찮게 하려는 게 아닌 나를 돕고자 하는 것임을 그게 그대 안에 있는 뜻임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듯합니다 육십이 넘은 철부지가 말이에요 내가 그동안 청소하기 싫어했던 이유가 이제 보니 그대를 사랑하는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혼자만의 자위일까요 어쩌거나 그대와 내가 어쩌다 오늘 이렇게 만난 사건 희거나 검은 옷차림의 그대 깊은 뜻을 알게 된 것은 내게 큰 기쁨입니다

신작 詩 2021.01.31

나 죽거들랑 차라리

나 죽거들랑 차라리 신타 이다음에 나 죽거든 엄마 아부지 하며 울지 말 일이다 차라리 생전에 가끔은 찾아와서 얼굴 마주할 일이다 부음을 접하고 난 뒤 아쉬움 남거든 차라리 먼 산 보고 웃을 일이다 회한이 북받친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슨, 차라리 허탈하게 웃을 일이다 병문안 와서 외려 제 설움에 흘리는 눈물 환자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듯 망자인 내 앞에서 회한의 눈물짓는 모습 내 가슴 짓이기는 짓이다 나 죽거들랑 차라리 그대 가슴으로 읽었던 시 한 편 들려줄 일이다 이다음에 우리 또 만날 날 있으리니 웃음 띤 얼굴 보일 일이다 나를 위해서라도 울음과 눈물 애써 참고 기쁜 얼굴로 인사할 일이다 언젠가 우리 더없이 환한 빛으로 다시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신작 詩 2021.01.21

허튼소리

허튼소리 신타 젊은 시절 서울서 건설회사 대표였고 시조도 사업처럼 머리 싸맸던 그는 일찍이 신춘문예로 등단시인 되었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가 뵐라치면 노구에 말끝마다 거시기 타령이다 이제는 비아그라도 끄덕이지 않을 텐데 하기사 옛말에도 남자라는 물건은 지푸라기 하나 들 힘만 남아 있어도 여색을 밝힌다는 말 허튼소리 아니다 *** 어느 한 시인을 모독하는 내용이 아니라 입으로라도 양기를 올리기 때문에 절창의 시조가 탄생한다는 칭송의 시조입니다.

신작 詩 2021.01.19

밤꽃

밤꽃 신타 전생에 밤나무였는지 몸 한 가운데 밤꽃 향이 난다 한 이삼일 샤워라도 미루면 진한 장미 향이 나기도 한다 그곳에 성스러운 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이다 「인간의 치부, 그것이 부끄러워서 꽁꽁 가리고 살기에 밝은 햇살 아래 온통 드러내놓고 환히 웃는 그 꽃이 바로 생식기라는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태초엔 자웅동체였다고 하는데 밤나무에서 은행나무를 거쳐 이제는 남녀가 유별해졌다 철 따라 피는 꽃이 아닌 날 때부터 바위 틈에 꽃 한 송이 달린 「 」문병란 시인의 시 '꽃의 생식기' 부분

신작 詩 2021.01.15

청소기 돌리면서

청소기 돌리면서 신타 하얀 티 하나 남김없이 빨아들이면서도 나는 그들이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끔씩 청소하곤 한다 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적군을 향해 총을 쏘면서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쏠 것이다 공상일 뿐이며 막상 전쟁터에서는 꿩처럼 머리를 처박고 총을 쏘아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더러움이 보기 싫고 앞에 보이는 적이 두려워 청소하고 총 쏘지는 않으리라 내가 그렇듯이 먼지도 존재 이유가 있고 적군도 자신과 가족과 조직을 위해 전쟁터에 총을 들고나왔을 터이니 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 그 모든 것을 사랑하며 비록 청소하고 죽이더라도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리라

신작 詩 2021.01.14

진주

진주 신타 평안과 방황 사이를 오고 가며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밤 사랑 때문에 번민하지 않으리라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시절 인연이 닿았는지 나 역시 인연의 사랑 때문에 흔들린다 수직이 아닌 수평이라는 뜻으로 도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녀는, 우리가 더는 연인 사이가 아닌 도반일 뿐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는 전화도 안 받고 카톡 글에 겨우 호칭을 도반님이라며 빈정댄다 도반님 소리 하지 말라고 해도 자꾸만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불편함도 이 괴로움도 진주와 같은 아픔이리라 돌아보면 영롱하게 빛날 아름다운 상처가 되리라

신작 詩 2021.01.08

지난 일

지난 일 신타 "소식이 없길래 오늘 강의 없는 줄 알았더니 늦게 연락이 왔네요 반갑게 만납시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요" 그렇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기억났다고 해서 지금, 일어난 일로 착각하지는 말자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교육문화센터에서 행하는 '주민 시네마 스쿨' 실습 시간 우리끼리 영화를 찍는데 도움 주시는 젊은 선생님 모든 게 처음인 내가 시나리오도 처음으로 썼고 주연배우 역도 맡았으며 감독까지 억지로 떠맡았다 모든 게 처음인 나에게 젊은 선생님 건건이 지적한다 첫날은 힘들어도 그냥 넘어갔으나 이튿날이자 촬영 마지막 날 연거푸 세 번의 잔소리에 나는 그만 폭발하고야 말았다 이거 그만 때려칠 거다 싸가지 없이 계속 잔소리네 내가 뭐 직업으로 하는 거야 돈 받고 엑스트라 뛰는 것도 아니고 젊은 놈이 ..

신작 詩 2021.01.07

웃고 싶은 날

웃고 싶은 날 신타 울고 싶은 날이 아니라 오늘은 마냥 웃고만 싶은 날이네요 친구 만나러 올라갔다가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져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도 힘들었지만 나도 힘들었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감정에서 한참 동안을 벗어나지 못했고 나는 쉽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괘씸하거나 분한 생각이 며칠 지나야 없어지지만 예전처럼 수십 년씩 또는 죽을 때까지 남아있진 않지요 이게 나의 기쁨입니다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파문이 일었다가도 쉽게 가라앉는 호수가 바로 내 안에 있기에 나는 더없이 기쁩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 여행 떠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가 언제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잔잔한 호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작 詩 2021.01.04

마스크 맨

마스크 맨 신타 지하철 좌석 양옆으로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 모두가 마스크 맨이다 저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수나무 아래 깊은 묵언수행 중이다 삶의 애환 말로라도 풀고 싶지만 은연중 침묵을 강요받는다 휴대폰의 한 지점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한결같이 명상 중이다 어느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받아들이면 나쁜 것일 뿐

신작 詩 202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