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48

속울음

속울음 / 나신타 얼마만큼 눈물이 쌓여야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얼만큼 외로워해야 속으로 우는 울음 울 수 있는 걸까 어릴 때나 나이 들어서나 한결같이 가벼운 눈물 놀림받을까봐 참으려 해도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온통 구름에 지친 여름날 마른장마와도 같이 쏟아지지 않는 눈물은 무감각한 것인지 심지가 깊은 것인지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다 슬퍼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느껴질 때 때론 걷잡을 수 없는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나로서는

신작 詩 2023.04.29

흐트러진 봄

흐트러진 봄 / 김신타 세상이 왜 이런가요 활짝 핀 꽃이 있고 시들어 가는 꽃이 있으며 이제 봉오리 진 꽃도 있습니다 다르기에 같기를 바라지만 같을 땐 다르기를 바라겠죠 세상 모든 꽃이 하나뿐이거나 한날한시에 피었다 진다면 아름다움과 추함 역시 우리 앞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만일 악이 없다면 선도 있을 수 없는 것처럼요 엉망진창으로 피고 지기에 지금 여기가 아름다운 것이며 모두 하나 되는 황홀함의 세상 또한 죽음 너머에 펼쳐질 우리의 삶입니다

신작 詩 2023.04.22

청춘이 청춘에게

청춘이 청춘에게 / 나신타 60대 중반 어느 날 내게 젊은 날의 내가 생각났다 투명한 감옥처럼 다가왔던 사십여 년 전 내 스무 살 시절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게 한 마디 남기련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걸어갈 수 있단다 갇힌 것처럼 보일지라도 세상은 늘 열려있단다 알 수 없어 답답할지라도 때가 되면 알 수 있단다 우리에겐 옛날도 앞날도 아닌 언제나 오늘 지금일 뿐이기에, 과거이거나 미래라는 이름보다는 현재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기에 지금 네 앞에 있는 현실이 지금의 네게 가장 찬란한 시간임을 다른 모든 건 네 앞을 밝히는 등불임을 알라 부디 네 앞에 있는 절망조차 사랑할 수 있기를

신작 詩 2023.04.13

살구꽃 핀 날

살구꽃 핀 날 / 김신타 가로등 환한 불빛 아래 길을 나서다가 집 앞에 살구꽃 피었다고 전화합니다 함께할 수 없는 그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삼월 중순의 봄밤 어둠의 고요와 함께 천변길 걷습니다 어쩌면 그대와 내가 함께 걷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화할 수 있는 그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밤중에도 얘기 나눌 수 있는 그대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365일은 날마다 살구꽃 활짝 핀 봄날입니다

신작 詩 2023.03.30

감사함의 기도

감사함의 기도 / 신타 삶의 현실에 저항하는 것은 신에게 저항하는 것이다 신에게 저항하면 할수록 삶에서의 고통이 지속된다 우리가 염려하는 게 옷과 식량이 아니므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보다 몸과 생명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라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에서 생각을 멈추라 그리고 필요하면 믿어라 필요한 모든 게 이미 내 안에 있음을 내 손에 들려져 있음을 필요할수록 굳게 믿어라 고통을 주고자 함이 아니라 보물찾기 같은 것일 뿐이다 그냥 주는 것보다 숨겨놨다가 찾는 기쁨을 느끼기 위함이다 그러니 믿어라 감사함을 느껴라 감사함을 노래하라 감사함의 기도를 하라

신작 詩 2023.01.26

흰 눈 쌓인 겨울 햇살 아래

흰 눈 쌓인 겨울 햇살 아래 / 신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아무런 흔적 남김없이 돌고 도는 회전목마 계절이 늘 새롭다 기후 변화 때문일까 내가 변하는 때문일까 지구라는 회전목마를 타고 우리는 저마다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어느덧 봄이 새싹 거리고 여름이 해변에서 출렁거리며 가을이 노을처럼 물들고 나면 바람 없는 날 오후 한때 냇가에서 잔물결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어 간다 계절이 바뀌어도 내가 변해갈지라도 하나로 이어지는 소망 흰 눈 쌓인 겨울 햇살 아래 그대 안에 내가 함께하길 내 안에서 그대 따스하길

신작 詩 2022.12.23

내면의 생명은 오늘도

내면의 생명은 오늘도 / 신타 꽃 진 자리에 열매 맺는 것처럼 청춘이 꽃핀 뒤에 삶이 익어간다 아침은 아침대로 붉고 노을은 노을대로 아름답다 열매가 묻혀 씨앗이 되는 것처럼 노을은 다시 동녘에서 타오르며 태양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지구의 회전은 오늘도 멈춤이 없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같다고 느껴지지만 몸이란 오감의 대상인 외부 세계일 뿐 내면이 외려 오감을 감싸 안는다 보이지 않으며 다만 느낄 수 있는 내면이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로서 존재하며 진화한다 몸으로 꽃필 때가 있고 열매로 익어갈 때가 있으며 씨앗으로 몸을 버릴 때도 있지만 내면의 생명은 오늘도 타오르는 불씨

신작 詩 2022.11.25

남도로 가는 기차

남도로 가는 기차 / 신타 섬진강 변 어느 안개 자욱한 마을을 지난다 나로서는 모처럼의 일이라 서기 瑞氣 어린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동네 사람에게는 불편한 일상이리라 어느 하나만이 아닌 내 느낌도 옳고 그들의 생각도 옳은 모두를 품은 삶이고 싶다 차창 밖 풍경은 이미 그러한데 내가 그렇지 못할 뿐이다 아침을 비추는 강물처럼 조용한 안개로 피어나리라 생겨났다 덧없이 사라질지라도 그조차 기적 같은 일 아니겠는가 섬진강이 흐르고 전라선 기차가 흐르고 내 마음도 따라 흐르는 곳

신작 詩 2022.11.20

너 없는 섬에서

너 없는 섬에서 / 신타 횡단보도 건너면서 어쩌다 올려다본 하늘 네 얼굴이 가득했다 놀라우면서도 부정하고픈 보고 싶은 마음과 애써 지우고 싶은 마음 길을 건너면서도 도리질 치는 아니야 이건 아니야 너 없는 섬에서 한 달만 살고 싶다 한 달 두 달 석 달 지나 파도에 묻힌 무인도이고 싶다 홀로 서는 시간 견디기 힘들지라도 아무도 없는 섬에서 너 아닌 나를 잊고 싶다

신작 詩 2022.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