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48

둘이 아니다

둘이 아니다 / 김신타스쳐 가는 풍경은 모두 아름답다먼 곳이든 가까운 곳의 풍경이든 우리는 모두 운이 좋은 사람이다그대가 지금 웃거나 울거나 간에세상은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스스로 원하는 것만이 나타날 뿐빛과 어둠이 나뉘어 있지 않으며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음을 안다어둠을 멀리하고 저주하기보다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존재하라마치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추되보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는 빛

신작 詩 2022.10.13

파도치는 바다처럼

파도치는 바다처럼 / 신타 어떤 시는 기가 막히고 대부분의 시는 시들하다 내가 쓴 시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누가 쓴 시인가 싶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그렇다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기는커녕 내 마음도 울리지 못하는 그냥 그런 시를 쓰면서 시상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오늘도 세상을 살아간다 고마움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살아있다는 게 말이다 글자로 써놓고 보니 갑자기 궁금해진다 살아있다는 게 무엇일까 스스로 존재함을 의식하는 것일까 아무튼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원망과 감사가 혼재하는 내 안에서 지금은 감사함 쪽을 선택하지만 어느 때 또 원망을 선택할지 모르는 그렇다 하더라도 또한 선과 악이 혼재하는 내 안에서 악을 멀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 모두를 기꺼이 수용하는 동시에 다만 선의 길을 택하고자 한..

신작 詩 2022.10.04

뱀사골에서

뱀사골에서 / 신타 물빛 파도치는 한여름 계곡이거나 눈부신 가을 단풍 아니어도 그대와 함께 걷는 길 어느새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은 아직 물들지 않은 그대와 손잡고 걸었던 길 모처럼 다시 걸어봅니다 맑은 날에 소낙비 쏟아지고 태풍 불어닥치던 날 있었지만 이제는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알밤을 주워 그대 손에 건네는 노을이 물드는 저녁 한때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나와 그대 모습 변해 갈지라도 계곡은 여전히 푸르게 빛납니다

신작 詩 2022.09.23

긍게 사램이제

긍게 사램이제 / 신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와 "긍게 사램이제"라는 구절에선 동감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말씀이 어느 경전 구절보다 성스러웠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와 "긍게 사램이제"라는 간격을 오늘도 나는 걷고 있다 지나가 버린 애증의 기억도 아직 오지 않은 상상도 아닌 나 자신과 그리고 타인을, 실수하고 배신하고 살인하는 우리를 이제부턴 더욱더 용서하고 사랑하리라 감각 속의 사람도 아니며 기억 속의 사람도 아닌 보이지 않는 알 수 없음 무형으로 존재하는 감각 자체와 기억 자체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바로 우리 자신이므로 ★ 겹따옴표는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

신작 詩 2022.09.17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 신타 시가 없었다면 나는 사람을 만난 기쁨을 사람이 떠난 슬픔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술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과 함께하던 기쁨을 사랑이 떠나버린 시간을 홀로 기억하기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내겐 내가 있어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는 시를 쓰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도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원고지 아닌 휴대폰을 들고 떠오르는 생각과 말을 담아 시를 쓰는 밤의 시간이 있다 지금 이대로 내 안에 머물리라 이미 소망이 이루어진 것처럼 원하는 걸 이미 이룬 사람처럼 꿈을 꾸고 새 아침을 맞이하리라

신작 詩 2022.09.09

징검다리

징검다리 / 신타 내려놓는 게 아니라 줄이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랑도 집착도 욕심을 조금만 내도록 해볼 게 맘 찜찜하게 해서 미안해 살면서 미안하단 말 여태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도 안 하고 싶은데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아 눈물이 나와 태풍과 함께 쏟아진 비에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은 엊그제 함께 건너던 징검다리 소용돌이치는 냇물은 세상 살아가는 마음이겠지 흐려졌다가 맑아지고 흘러넘쳤다가 가라앉는 사랑하다가 미워하고 밉다가도 사랑스러워지는 건 냇물처럼 흘러가는 마음이겠지 불어난 물에 사라진 징검다리 여전히 넘쳐흐르는 냇물 가두거나 남길 것 하나 없어도 흘러가고 있음 거기에 아무것도 없는 내가 있겠지

신작 詩 2022.09.06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을 때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을 때 / 신타 빗물이 고인 위에 연달아 떨어지며 파문을 만들어내는 빗방울 창문 밖 당연했던 풍경이 당연하지 않을 때 귓가에 들려오는 빗소리 언제 어디서 처음 들렸을까가 문득 궁금해지는 능소화에 매달린 주황색은 어떻게 처음 생겼을까 하는 부질없음 속에서 피는 한 편의 시 가지 끝에 나란히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는 이파리들 예전부터 보아온 모습이지만 새삼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맑게 갠 한낮에도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이는 감각의 오류 지식으로는 알아도 오류를 깨닫지 못한 채 감각을 하늘처럼 섬기는 여전히 낮은 자세 늘 함께하는 식탁 위에 놓인 풍경들 앞에 놓인 빨간 머그잔이 내 몸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때 비로소 몸에서 벗어나고 있음이다

신작 詩 202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