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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광야

시간의 광야 우리는 흔히 시간을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더욱이 현재는 장구한 과거와 안갯속 같은 미래 사이에 있는 아주 짧은 순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그랬다. 그러나 60대에 들어서면서 내게는 현재가 찰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현재라는 순간을 스치듯 지나가면 과거가 되는 게 아니라, 벌판처럼 펼쳐진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어느 한 지점의 기억을 과거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과거라고 부르는 현재와 미래라고 부르는 현재가 있을 뿐, 과거와 미래란 있을 수 없다. 지평선이 보이는 현재라는 광야에서, 저 멀리 기억나는 한 지점을 과거라고 여기지만, 그 모든 곳은 하나도 빠짐없이..

도 道

도 道 / 신타 오줌의 어머니는 샘물이며 똥의 아버지는 진수성찬이다 더러움과 깨끗함은 내 몸에서 들고 난 것 내가 분별하는 것일 뿐 어떤 때는 몸 안에 있기도 한 구더기가 바로 내 몸일 수 있다 가까이하지 못하는 귀함이 아니라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는 천함이리라 나는 오줌똥도 아니며 샘물과 진수성찬도 아닌 바람처럼 보이지 않을 뿐 분별이자 또한 받아들임인 꿈속 같은 없음의 있음일 뿐

詩-깨달음 2022.04.07

어떤 문상

어떤 문상 / 신타 망자 앞에서 터지는 통곡 제 슬픔에 겨운 후회일 뿐 병실에 누운 환자 앞에서 눈물짓는 것과 같은 몸짓 아픔조차 안으로 삼키는 슬픔조차 먼 산 바라보는 통곡조차 바다에 뿌리는 마지막 헤어짐이고 싶다 가벼움과 황홀함에 잠긴 위에서 바라보는 영혼은 왜 우는지 알지 못하는데 지상에 남은 자만 슬프다 소리 지르고 울어대는 게 천명을 알지 못하는 거라 부인상에 노래 부른 장자 '장자' 외편에 나와 있단다 장자처럼은 아닐지라도 기쁨으로 배웅하고 싶다 고통과 시련 다 벗어버린 망자와 함께 축배를 들며

신작 詩 2022.04.04

바람의 온도

바람의 온도 / 신타 사월의 환한 빛과 부드러운 바람의 온도 유리창 통해 바라보는 풍경 스쳐 가는 기차 안으로 밀려온다 화사한 한복 차림의 벚꽃 멀리서도 웃음 띤 여인이다 턱없이 나선 남도로 가는 길 간간이 핀 진달래꽃처럼 붉다 풍경은 스쳐 갈지라도 나는 언제나 지금 여기 바람의 온도를 따라가는 한 그루 나무로 흔들린다 봄날의 새싹이었다가 뜨거운 폭풍의 여름 지나 지금쯤 가을로 익어가는 시절 언제라도 눈 내리는 겨울일 수 있는 현재라는 여기에서 한 생을 회오리치고 있는 한가득 끌어올린 잡동사니 내려놓고 사라질 바람이거나

신작 詩 2022.04.02

판단이 없는 세상

판단이 없는 세상 / 신타 판단이 없는 세상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운가 판단이 없다고 해서 억지로 눌러버리지 않으며 저절로 일어나는 판단조차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는 세상 생멸도 증감도 없으며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는 오감을 통해 보이고 들리며 느껴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세상 판단이 없는 삶이란 잡아 둘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오는 판단 막지 않고 가는 판단 잡지 않는 없음의 세상

詩-깨달음 2022.04.02

믿음으로부터의 자유

믿음으로부터의 자유 / 신타 눈에 보이는 믿음과 믿지 않는 믿음조차도 모든 게 착각일 뿐이며 다만 착각임을 깨닫게 될 때 믿음의 둥지를 벗어나는 새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 믿음도 믿지 않음도 모두가 믿음일 뿐이며 믿음 없이 살 수는 없지만 환상임을 알고 믿을 때 하늘에서 눈송이 쏟아지듯 믿음대로 소망이 이루어지리라 보이고 들리는 세상의 모든 것 환상임을 아는 바로 그 자리에 믿음 따라 피어나는 소망의 꽃

詩-깨달음 2022.04.01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 신타 구름이 무상한 까닭은 멀리서 보기 때문이며 안에서 바라본다면 치열한 삶일지도 모른다 눈이 눈을 볼 수 없듯이 나는 나를 보지 못한다 스스로 나를 알기 위해 이 세상 태어났음에도 내가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살다 보면 남이 나를 더 잘 들여다볼 때도 있다 멀리서 보기 때문에 안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늘 함께해도 나를 알지 못해 여전히 답답하다 여태껏 함께 살아오면서도 내가 나를 모르는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바로 나다

詩-깨달음 202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