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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그릇

유리그릇 신타 그녀와의 만남은 그녀와 함께 쌓는 사랑의 모래성은 석양에 유리처럼 빛나고 금빛 모래처럼 반짝인다 어렵사리 입성한 그녀의 보금자리 하룻밤을 보낸 뒤 마지막 성문은 결국 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앞으로 자주 놀러 올게, 라고 인사를 하는데 내 허락을 받아야 해, 라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사이로 그녀의 불안이 밀려온다 아무렴 여전히 유리그릇 같은 우리 사랑 내가 어찌 깨버릴 수 있겠는가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서니 그녀가 들고 있는 유리그릇을 땅에 떨어뜨려 박살을 내겠는가 떨리는 두 손에서 식탁 위에 놓일 때까지 식탁 위에서 마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빛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기다리리라 기다림이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되게 하리라

신작 詩 2020.10.25

아라비아 숫자

아라비아 숫자 신타 숫자야! 고맙다 동화 속 신비로 가득한 이름조차 아름다운 아라비아 낙타가 사막에 줄을 긋고 야자수 잎 하늘 덮으며 신기루처럼 피어나는 지하철 7호선 3번 출구 고속도로 옆으로 이어지는 가을 들판 바라보며 새로움을 여행하던 내가 고속 터미널 지하에서부터 문자로 된 미로를 더듬어 3번 출구를 따라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고마운 숫자야! 요술램프 연기처럼 태어나 온 세상 가득한 0에서 9까지 네 변신 덕분에 우리 이렇게 서로 만나는구나 지하철 7호선 상봉역 3번 출구

신작 詩 2020.10.23

잠 / 신타 책을 읽다가 유튜브를 듣다가 문득 빠져든다 깨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무얼 하다 왜 깨는지 모르지만 잠들 때의 거대한 중력은 사라지고 달에 온 듯 가볍다 도대체 얼마를 잔 것일까 아직 밤 열한 시 전이다 불과 두세 시간의 잠이 졸음의 블랙홀을 통과해서 나를 낯선 별에 데려다 놓는다 다만 무대 세트는 그대로다 여전히 켜져 있는 스탠드 불빛이며 옆에 놓여 있는 스마트폰이며 어느 우주 어느 이삿짐센터 소속의 무대 감독인지는 몰라도 완벽한 솜씨다 거의 날마다 새로운 별로 여행 중임에도 언제나 내가 잠들기 전 무대 풍경 그대로다 잠이라는 거대한 중력장 블랙홀을 통과하는 우주적인 이동임에도 [2020년 춘향문학 제 3집 상재]

나비처럼

나비처럼 신타 햇살 가득한 가을날이면 식은 몸은 길을 나선다 밤새 젖은 날개를 아침 햇살에 말리는 한 마리 나비처럼 밖으로 나가 따가운 햇볕을 느낀다 차가워진 마음도 몸과 함께 용광로 쇳물처럼 한 줄기 되어 흐른다 우리 삶이 꿈을 꾸는 것이라든지 장자의 호접몽 얘기든지 간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일 뿐이다 스스로 자신을 좋은 부분과 싫은 부분 선하거나 악하거나 옳거나 그르다며 오른팔로 왼팔을 자르고 있을 뿐이다 안팎이 없고 오직 하나인데 둘로 나누고 셋으로 가르고 있음이다 내가 있지만 없는 세상과 내가 없으면서도 있는 세상! 전자는 꿈을 깬 장자가 사는 세상이고 후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된 또 다른 장자가 사는 세상이다 천 개의 장소에서 천 가지 모습으로 천의 장자가 살고 있다 해도 장자인 나는 언제나 ..

신작 詩 2020.10.21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 김신타 생각지도 않게 뜬금없이 인연이 나타났어요 세상이 그런가 봐요 애타게 찾아다닐 땐 냉정하더니만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막걸리 한병의 인연으로 그녀와 나는 언제라도 되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건넜어요 사랑도 사람의 일인지라 다시 징검다리를 두드리는 중입니다 물에 빠질 듯 빠지지 않는 징검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어쩌겠어요 사람의 일이 다 그런 것 아닌가요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제 갈 길이 있을 테니까요

신작 詩 2020.10.15

사랑의 힘

사랑의 힘 / 김신타 하루 이틀 밤을 지새운 번민의 끝자락 헤어지기로 작정했다 더는 그를 믿을 수 없다 이렇게 증거가 있지 아니한가 이젠 혼자이고 싶다는 그럴듯한 이유 내세워 이별을 통보했다 그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를 그리 사랑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물어볼 것도 없이 스스로 단정했던 사실을 하루 만에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유치한 짓이라는 생각이 뒷덜미를 잡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은 탁월했다 굳이 전화를 안 해도 되는 몇 자 툭툭 두드려 놓으면 제 알아서 배달되는 세상이어서 좋다 10여 분쯤 지나니 답장도 온다 보라! 나의 유치함이 아니라 그의 뻔뻔함을 명확한 근거자료를 들이대며 청문회장에 앉혀놓고 그를 추궁했으나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다 분명 근거가 있는데도 보라! 거짓이 거짓을 낳고 있음을 그..

신작 詩 2020.10.15

하나로서의 사랑

하나로서의 사랑 / 김신타 괴롭지 않다고 해도 괴로운 건 서로가 사랑했었기 때문일까? 생각할 누군가가 있음에 나도 한동안은 일상이 기쁨이었다 그러나 잠시의 기쁨은 그녀가 혼자 있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속절없이 강둑이 터져버렸다 논밭은 남김없이 물에 잠기고 온 동네 사람 망연한 모습이다 생각지도 않은 일은 아니건만 어찌할 바 모르고 바라보는 건 그래도 미련이 남은 때문일까? 기쁨이 사라진 때문일까? 외려 무에서 무로 돌아간 기쁨일까? 슬픔과 기쁨, 둘이 아니라지만 슬픔은 슬픔, 기쁨은 기쁨대로 나누어 체험할 수 있음이 바로 하나로서의 우리 사랑이리라 슬픔과 기쁨이 하나가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 하나가 되듯 괴로움도 하나의 사랑이리라

신작 詩 2020.10.13

소망

내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대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어떠한 소망도 포기하지 않으리라. 기대도 하지 않으며 포기도 하지 않는 것이 내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사실 지금부터 체험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이다. 기대가 없을 때 실망도 없고 포기가 없을 때 절망도 없음을 우리는 이미 깊이 알고 있다. 고로 실망이 아닌 담담함, 절망이 아닌 희망 이 모두가 우리에게 열정을 가져다 주리라.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잠언 2020.10.13

돈과 부와 풍요

돈과 부와 풍요 / 김신타 호주머니에 그리고 통장에 들어있는 돈이 내 것이 아닌 모두의 것임을 다만 내가 관리하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돈을 쓸 때마다 불치병 환자의 생명이 줄어드는 양 아까워하고 불안해하던 나날들 나는 지금 눈물로 깨달음의 기쁨을 느낍니다 내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내게 들어와도 좋고 내게서 나가도 좋은 돈과 부와 풍요가 언제나 내 안에 있음을 나는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2020년 춘향문학 제 3집 상재]

테스 동생에게

테스 동생에게 신타 자네의 낡은 수첩을 들여다보다가 새로 산 물감처럼 빠레트에 질질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없어 길거리에 서서 편지를 쓰오 어쩌면 나는 친구 자네를 테스형이라 부르고 싶소 자네 형을 모독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친구가 테스형으로 읽히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지만 인간이 아닌 인간 몸이 그러하며 생각하는 동물이 아닌 생각하는 물질이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오 약한 자의 간담을 샅샅이 핧아간 바람* 주근깨처럼 핏방울이 튀겨진 낡은 수첩* 기쁨과 즐거움뿐만 아니라, 물질인 몸으로 슬픔과 고통도 함께 느끼는 것 아니겠소 가을 하늘 올려다보며 그 이름 나직이 불러본다오 친구의 시를 통해 알게 된 자칭 테스 동생 자네를 나는 테스형이라 부르오 테스형! 테스형! 소크라테..

신작 詩 202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