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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관념 그리고 언어

감정과 관념 그리고 언어 선악미추 빈부귀천이 말이거나 이름일 뿐이고 실체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한테나 선악미추와 빈부귀천에 대한 감정과 관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는 없던 말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인간들의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지금과 같이 광범위한 지역에서도 모두에게 소통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다. 즉 선악미추 빈부귀천라는 감정이나 관념이 먼저 생겨났으며 나중에 어렵사리, 그러한 감정이나 관념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지, 언어 때문에 그런 감정이나 관념이 생겼다는 소위 깨달았다는 분들의 주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다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고자 만든 언어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나 관념이 안 좋은 쪽으로 더욱 고착되는 ..

깨달음의 서 2020.08.27

희망과 절망을 넘어

희망의 끈 끊어진 다음엔 절망의 끈조차 내려놓아라 1.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울에 비유하는 글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란 단순히 형상만을 비추는, 즉 흔히 보게 되는 유형의 거울이 아니라, 내면의 기억을 담아내는 무형의 거울이죠. 기억에는 시각적인 상은 물론 이려니와 청각, 후각, 미각, 촉각적인 상 그리고 기억된 상 등등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불교적으로 접근하면 '색성향미촉법'이 되며, 여기서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이를 '인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안이비설신의'에서의 '의'를 나는 '뇌'라고 해석합니다. 지금부터 2천5백 년 전인 석가모니 생존 시에는 뇌라는 지식도, 개념도 없었을 것이므로 당연히 그러한 단어도 없..

깨달음의 서 2020.08.24

기억이라는 거울

기억이라는 거울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을 거울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형상만을 되비추어 주는 유형의 거울이 아니라, 기억을 담아내는 무형의 거울인 것이다. 기억에는 시각적인 형상은 물론이려니와 청각, 후각, 미각, 촉각적인 상 그리고 기억된 기억까지 모든 게 포함된다. 이를 불교적으로 접근하면 색성향미촉법이 되며, 여기서 마지막 '법' 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로 분분하지만, 나는 이를 기억으로 해석한다. 오감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기억이 없다면 오감이라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하긴 오감이라는 감각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에 있어서 기억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태초에 말씀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태초에 기억이 존재해야 한다. 기억이라는 에너..

잠언 2020.08.19

나다움 또는 정체성

'나답다'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면 '자아 정체성'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런데 나다움이든, 자아 정체성이든 표현하는 단어와는 상관없이 나다움이라는 건 산봉우리라고 저는 비유합니다. 등산할 때 정상에 오른 다음에는 다시 산을 내려가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는 애써 찾은 나다움이나 정체성을 다시 버려야만 합니다. 어느 한때 정해진 나다움이라든가 정체성을 자기 자신으로 믿고 이를 고집하면 그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인 거죠. 여기에서부터 고해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다움은 계속 흘러가는 것입니다. 나다움이란 언제나 여기 있지만, 항상 변하는 강과 같은 것이죠. 강물은 흘러가지만, 강은 늘 그대로인 것처럼 말입니다. 나다움을 애써 잡으려 하지 않아도 그건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랍니다. 흘려보내도..

깨달음의 서 2020.08.01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네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네 / 김신타 내가 원하는 사랑만을 찾느라 지금 이대로 사랑받고 있음을, 사랑이 사랑인 줄 나는 몰랐네 내 생각대로 영원하지 않을 뿐 사랑이란 사랑으로 영원함을, 사랑을 사랑할 줄 나는 몰랐네 사랑이란 생각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움직여지는 것임을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네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일지라도 사랑은 언제나 내 곁에 있음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네 내가 행한 잘하고 잘못한 일들 나는 빠짐없이 모두 사랑하리 잘했으며 잘못했기에 말이네 남이 행한 모든 일도 사랑하리 잘한 일과 잘못한 일 그 모두가 내게 고마운 일 아닐 수 없다네

신작 詩 2020.07.28

환상

환상 환상에 대하여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환상이란 없는 것이거나 또는 없어야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다. 아니다. 환상이란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 뻔히 존재하는 것이다. 환상이란 없는 것이거나 없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감각 즉 오감으로 느껴지므로 우리는 평소에 환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오감으로 분명히 느껴지지만, 사실은 없는 것일 뿐이다. 이걸 예전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으니 꿈으로 비유했으나 지금은 이걸 VR(가상현실) 체험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스운 사실은 우리가 날마다 VR 체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 현실 세계가 바로 꿈이거나 VR 체험이라는 말이다. 실재하는 현실인데 이게 무슨 꿈이거나 VR 체험이냐고..

깨달음의 서 2020.07.24

신과 나눈 교감

명심하라, 신이 하는 모든 이야기에 대해 그러하듯, 너희가 읽는 것을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전혀 오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진 마라. 자신의 최고 출처는 본인 자신이다. 그러니 탈무드를 읽든, 성서를 읽든, 바가바드 기타를 읽든, 코란을 읽든, 팔리 경전을 읽든, 몰몬교의 성경을 읽든, 외부에서 권위의 출처를 구하지 마라. 차라리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발견한 진실이 자기 가슴속에서 찾아낸 진실과 일치하는지 살펴보라. 그리고 그것이 일치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이 진리"라고 말하지 말고, "내게는 이 책이 진리"라고 말해라. 닐 도날드 월시 「신과 나눈 교감」에서

영위零位

암벽 등반하다가 맞게 된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던 자신의 체험담이 들어있는 아디야샨티의 「가장 중요한 것」 이라는 책을 읽다가 쓰게 된 일기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 우리는 잘 되리라는 희망을 놓음과 동시에, 잘 안되리라는 절망을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절망적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희망을 놓는 것과 똑같이 잘 안될 것이라는 그 절망도 포기할 수는 없는 걸까요? 희망이 사라졌을 때 절망마저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그 순간 영감과 함께 자신의 몸에서 새로운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만한 믿음이며 신의 사랑이고 붓다의 자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가 설파한 중도이기도 한 것입니다.

잠언 202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