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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사랑과 신에 대한 두려움

신의 사랑과 신에 대한 두려움 저멀리 따로 있는 존재가 신이 아니라 신을 포함한 우리가 모두 하나입니다. 즉 우리는 신과 함께하는 하나입니다. 종교에서의 분리된 신에 대한 사랑은 사랑이 아닌 신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감정 느껴지는 것이지 두려움 속에서 무엇을 사랑한다 함은 언제 물려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뱀을 사랑한다고 부르짖는 꼴입니다. 뱀한테 물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신한테서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신은 결단코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어떠한 잘잘못도 받아들이는 신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사랑입니다.

깨달음의 서 2020.07.13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기억을 되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을 받아 태어나면서 스스로 지워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입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무엇을 깨닫거나 또는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해내는 게 아니라, 단지 스스로 기꺼이 잊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 게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라는 게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고요.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씀이 바로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보물을 찾는 놀이를 하는 것이죠. 기억을 잃어버린 후 다시 기억을 되찾는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기억을 되찾게 되면 처음으로 돌아갈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만큼 달라지는 것입니다. 유형으로서 달라지는..

깨달음의 서 2020.07.13

나를 바꾸는 기쁨

나를 바꾸는 기쁨 오늘은 사랑의 힘, 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셀린 디온의 목소리가 더욱 아름답게 들리는 날이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나라는 존재가 있음 또한 무척이나 기쁘다. 밖에는 지금 장마철임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빗속에서 출근길을 걷고 있으며, 누군가는 카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일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집에서 백수인 자신을 돌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무슨 상관이랴. 내가 처한 사정과 위치만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사정과 위치 또한 옳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옳으며 그들의 언행에 대한 나의 반응 또한 모두 옳다. 다만 서로 부딪힐 때 내가 상대방을 바꾸고자 하는 힘든 길보다는, 나 자신을 스스로 바꾸고자 하는 쉬운 길..

깨달음의 서 2020.07.12

바퀴벌레도 선을 지향한다

바퀴벌레도 선을 지향한다 선과 악으로 나누고 정의와 불의로 나누는 것, 등등이 바로 부정적인 생각이다. 선을 지향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게 긍정적인 방향 같지만, 마음속에서 선악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이원적으로 분별하는 잣대인 자기규정 (또는 정체성.identity, 신념)을 없애는 게 바로 긍정적인 자세이며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자기규정, 정체성(identity), 신념 등을 처음부터 거부해서는 안된다. 처음에는 이게 바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뼈이거나 살과도 같다. 그리고 자기규정이나 정체성, 신념 등은 하나의 실체를 각기 다른 측면에서 보고 붙인 이름이며, 무엇이라 이름하든 이 모두는 아침이슬과 같다. 영롱하게 맺히는 이슬을 처음부터 거부하거나 염려하는 게 아니라, 밤새 즉 자신도 모르는 ..

깨달음의 서 2020.07.09

부처가 곧 중생이다

부처가 곧 중생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절에서든 불교 관련 책이나 영상에서든 중생이 곧 부처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부처가 곧 중생이라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이 곧 부처인 게 아니라 부처가 곧 중생입니다. 이는 우리의 근본이 중생이 아닌 부처라는 말입니다.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할 때 우리는 중생에서 부처가 되기 위한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부처가 곧 중생이라고 할 때 우리는 부처인 자신을 되찾는 것일 뿐입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을, 그것도 일부러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입니다. 이는 '왕자와 거지'라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과 같습니다. 다만 우리는 소설에서처럼 실수로 어쩌다 거지가 되는 게 아니라, 일부러 거지..

깨달음의 서 2020.07.04

존재와 인식

존재와 인식 우리는 빛이 있으려면 어둠이 있어야 하고 어둠이 있으려면 빛이 있어야 한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어둠이 없어도 빛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그걸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인식과 존재는 상관관계는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즉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해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상대성이 있어야 비로소 그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의 연기법을 흔히 존재론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이는 존재론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인식론에 대한 내용이다. 존재한다면 당연히 인식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우리는 얼핏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는 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비유처럼, 어떤 것에 대한 상대성이 없는 경우에 물고기뿐만 아니라 우..

깨달음의 서 2020.07.03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우리는 불교 인드라망처럼 얽혀 있다. 그러나 얽힌 것에도 순서가 있는데, 가장 밝은 사람 위에 신이 있고 가장 어두운 사람 밑에 신이 있어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목걸이나 팔찌 등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 (부처, 알라도 똑같다)은 한쪽으로만 전지전능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신이, 부처가, 알라가 진정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그는 가장 높은 곳에도 있고 가장 낮은 곳에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는가. 이는 예수가 가장 높은 곳에도 있지만 가장 낮은 곳에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것이지 그가 가장 높은 곳에만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평범한 사..

깨달음의 서 2020.06.30

완전함이란

완전함이란 신타 신의 섭리 또는 완전함이란 불완전을 포함하는 것이거늘, 안타깝게도 우리는 완전함만을 생각한다. 그것은 불완전이 빠진 반쪽짜리 완전임에도… 이처럼 완전이란 불완전을 포함하는 것임에도 이를 간과한 채 완전함만을 완전으로 착각하기에 주변에서 불완전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 또는 신을 원망한다. 어리석게도!

詩-깨달음 2020.06.29

지동설 학당

지동설 학당 우리는 통상적으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감각 즉 오감을 내 몸이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나 감각은 내 몸이 느끼는 게 아니라 내 몸을 통해서 무형의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이 믿겨지지도 않고 사실로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우리가 믿고 더 나아가 알고 있지만, 우리의 시각을 비롯한 오감으로는 지구가 아니라 오히려 태양이 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천동설을 믿고 있는 상황에서 지동설을 배우고자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실제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가 아닌 태양이 도는 것처럼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지..

깨달음의 서 2020.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