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신타나 2020. 6. 30. 07:31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우리는 불교 인드라망처럼 얽혀 있다. 그러나 얽힌 것에도 순서가 있는데, 가장 밝은 사람 위에 신이 있고 가장 어두운 사람 밑에 신이 있어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목걸이나 팔찌 등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 (부처, 알라도 똑같다)은 한쪽으로만 전지전능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신이, 부처가, 알라가 진정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그는 가장 높은 곳에도 있고 가장 낮은 곳에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는가. 이는 예수가 가장 높은 곳에도 있지만 가장 낮은 곳에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것이지 그가 가장 높은 곳에만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조금 더 나은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처를 보는 게 아니라 부처가 곧 나임을 보아야 한다. 또한 부처가 곧 중생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중생이 곧 부처라는 말은 자주 듣고 따라 되뇌면서도 부처가 곧 중생인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부처와 그리스도는 처음이자 끝, 이 모두를 포함한다.

또한, 우리는 모두 신의 소유이다. 즉 신에게 속해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자칫 우리가 신의 종이나 소유물인 것으로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의미에서의 소유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신의 품안에서 신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의미에서 신의 소유라느니 신에게 속해 있다느니 하는 표현을 한 것이지만, 우리는 신의 품안에서도 자유의지를 갖고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신의 품안을 벗이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도 있다. 아니 한때 신의 품안을 벗어나야만 한다. 그리하여 고통과 시련 끝에 신의 품안으로 다시 찾아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의 품안으로 우리가 돌아왔다고 해서 신이 우리에게서 자유의지를 도로 빼앗는 것도 아니다.

자유의지는 우리가 신의 품안을 벗어났거나 품안으로 다시 돌아왔거나 관계없이 신에 의해서 우리에게 영원히 부여된 권능 중 하나이다. 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우리 인간에게도 부여할 수 있는 게 바로 신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에 의하여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자신의 자유의지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유의지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대가 어린 자식이든, 배우는 학생이든, 직장에서 부하 직원이든,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젊은이든 말이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타인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때,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라는 기독교 경전 구절처럼 영적 세계에서 이루어진 것이 육적 세계에서도 이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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