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존재와 인식

신타나 2020. 7. 3. 06:58
존재와 인식


우리는 빛이 있으려면 어둠이 있어야 하고 어둠이 있으려면 빛이 있어야 한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어둠이 없어도 빛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그걸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인식과 존재는 상관관계는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즉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해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상대성이 있어야 비로소 그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의 연기법을 흔히 존재론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이는 존재론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인식론에 대한 내용이다.

존재한다면 당연히 인식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우리는 얼핏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는 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비유처럼, 어떤 것에 대한 상대성이 없는 경우에 물고기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도 그 어떤 것의 존재를 알 수 없다.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고로 인식은 언제나 존재의 부분집합이다. 존재가 앞서 달려가면 인식은 늘 뒤따라갈 뿐이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공유하는 분들 중에 일부는, 인간의 인식이 있기에 우주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우리의 인식이 없어도 우주는 여전히 존재한다. 오히려 우주에 존재하는 유형. 무형의 것 중에서 일부만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 따름이다. 깨달음을 공유하는 일부 유튜버들의 주장처럼 인식이 존재를 앞서는 게 아니라 존재가 인식을 앞서는 것이다.

정확히 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존재란 신의 영역이고 인식은 인간의 영역인 셈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형의 개념과 유형의 물질 중에서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부이며, 지금도 우리는 새로운 대상을 인식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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