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설 학당
우리는 통상적으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감각 즉 오감을 내 몸이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나 감각은 내 몸이 느끼는 게 아니라 내 몸을 통해서 무형의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이 믿겨지지도 않고 사실로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우리가 믿고 더 나아가 알고 있지만, 우리의 시각을 비롯한 오감으로는 지구가 아니라 오히려 태양이 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천동설을 믿고 있는 상황에서 지동설을 배우고자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실제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가 아닌 태양이 도는 것처럼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을 배우고자 지동설 학당을 찾아온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감각적 느낌과, 감각적 느낌에 바탕을 둔 지식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새로운 학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 선사들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자기들도 다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생각하는 의식 상태가 다릅니다. 고로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바탕인 의식 상태를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배우는 학생은 천동설을 믿는 의식 속에서 지동설을 이해하려 애쓰기 때문에 지동설에 대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반면 지동설을 가르치는 선생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도는 것으로 느껴지는 감각적 현실을 무시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격이기 때문에 서로가 답답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생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무시하라고 학생에게 강요해서도 안 되고, 학생은 천동설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내려놓기를 거부해서도 안 됩니다. 두 가지를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태양이 도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다른 무엇이 아닌 몸이 감각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동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즉 몸이 감각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 자신을 자각하는 일이 지동설에 대한 수용과 이해보다 어려운 이유는, 나 자신은 몸과 늘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무형의 나와 유형인 내 몸이 늘 함께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지동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불에 타 죽고 종교재판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졌듯이, 나 자신을 깨닫는 일도 이와같은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감각 즉 오감을 내 몸이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나 감각은 내 몸이 느끼는 게 아니라 내 몸을 통해서 무형의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이 믿겨지지도 않고 사실로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우리가 믿고 더 나아가 알고 있지만, 우리의 시각을 비롯한 오감으로는 지구가 아니라 오히려 태양이 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천동설을 믿고 있는 상황에서 지동설을 배우고자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실제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가 아닌 태양이 도는 것처럼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을 배우고자 지동설 학당을 찾아온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감각적 느낌과, 감각적 느낌에 바탕을 둔 지식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새로운 학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 선사들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자기들도 다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생각하는 의식 상태가 다릅니다. 고로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바탕인 의식 상태를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배우는 학생은 천동설을 믿는 의식 속에서 지동설을 이해하려 애쓰기 때문에 지동설에 대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반면 지동설을 가르치는 선생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도는 것으로 느껴지는 감각적 현실을 무시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격이기 때문에 서로가 답답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생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무시하라고 학생에게 강요해서도 안 되고, 학생은 천동설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내려놓기를 거부해서도 안 됩니다. 두 가지를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태양이 도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다른 무엇이 아닌 몸이 감각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동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즉 몸이 감각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 자신을 자각하는 일이 지동설에 대한 수용과 이해보다 어려운 이유는, 나 자신은 몸과 늘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무형의 나와 유형인 내 몸이 늘 함께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지동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불에 타 죽고 종교재판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졌듯이, 나 자신을 깨닫는 일도 이와같은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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